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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민주당 의원은 국회 안팎에서 'EMS 박사'로 통한다. 사진은 11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기술조사 결과 보고대회.
 전정희 민주당 의원은 국회 안팎에서 'EMS 박사'로 통한다. 사진은 11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기술조사 결과 보고대회.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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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은 EMS 잘 모를 테니 전정희 의원에게 배우세요!"

전정희(52) 민주당 의원은 국회 안팎에서 'EMS 박사'로 통한다. 정부와 한국전력거래소를 상대로 EMS(전력계통운영시스템) 문제를 1년 넘게 제기하다보니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다.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 위원장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전 의원에게 배우라고 호통쳤을 정도였다.

"전력계통 관련 교수들, 마피아처럼 카르텔 형성"

지난 11일 오전 그 오랜 '투쟁'의 결과물인 'EMS기술조사보고서'를 발표하는 전 의원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기술조사위원회를 꾸려 3개월 넘게 현장 실사를 벌였지만 정부쪽 위원들의 강한 견제로 결론이 둘로 갈린 어정쩡한 개선책만 내놨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전력계통 마피아 세력 막강... 산업부도 한통속" )

"일말의 기대도 걱정도 있었지만 걱정했던 대로 결과가 나왔어요. 정부쪽과 국회쪽으로 갈려 전쟁 상태이다 보니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직 한계가 있네요."

공교롭게 이날 국회 산자위에선 EMS와 함께 밀양 송전선 보고서도 도마에 올랐다. 주민쪽 보이콧으로 한국전력 쪽 전문가들만 단독으로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 문제로 논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이날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전 의원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신고리 3, 4호기를 위해 밀양 송전선이 필요하다는 건 '팩트'예요. 하지만 고리에서 생산된 전력을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는 데 밀양 765kV 고압 송전선이 필요했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죠. 송전선 설비 계획 자료를 전력거래소 EMS에서 가져와야 하는데 지금처럼 EMS가 제 역할을 못하면 신뢰를 얻기 어려운거죠."

지난 1년 EMS 문제를 조사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이른바 '전력(전기) 마피아'였다. 산업부와 전력거래소를 중심으로 학계와 산업계가 똘똘 뭉쳐, '원전 마피아' 못지않은 폐쇄적인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EMS와 밀양 송전선 문제에서 국회나 주민 편에 선 김영창 아주대 교수(에너지학)나 김건중 충남대 교수(전기공학)는 예외적인 인물이다. 

"밀양 송전선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교수 자문을 구하려고 해도 거의 모두 산업부나 전력거래소 용역을 해서 그 그늘을 벗어나기 어려워요. 계속 용역을 맡아야 하니 그쪽과 척지는 일을 못하고 끼리끼리 카르텔을 형성하는 거죠. 마피아처럼. 김영창 교수는 전력거래소에 있을 때 EMS 문제를 주장하다 쫓겨났고 김건중 교수도 K-EMS(한국형 EMS) 연구하다 문제를 느껴 탈퇴했어요. 이렇게 극소수 교수만 제대로 얘기하고 나머지는 그쪽 입맛에 맞추는 거죠."

전 의원의 '내공'은 이 분야를 30~40년 전공한 교수들도 쩔쩔매게 만들 정도다. 정작 전 의원은 정치학과 교수 출신 정치 신인으로, 지난해 4월 총선 뒤 지식경제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맡기 전까지 전기의 '전'자도 몰랐다. 

"당시 전력 분야에 워낙 문외한이어서 입법조사처에 설명을 부탁했는데, 마침 유재국 입법조사관이 9·15 정전 사태가 EMS을 사용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어요. 저도 그 내용에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지난 2011년 9월 15일 전국적으로 돌아가며 전력 공급이 끊기는 '순환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갑작스런 무더위에 발전기 고장까지 겹쳐 발생한 '인재'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유재국 조사관은 지난해 6월 전력거래소가 EMS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제 2003년 미국 동북부 '블랙아웃' 역시 EMS 상태추정 기능 고장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산업부는 9·15 사태 이후 정확한 원인은 찾지 않고 전력거래소 말만 믿고 예비력을 확보하는 데만 주력했어요. 그러다보니 국민에겐 절전만 강요하고 한전도 과다한 예비력을 확보하느라 적자가 늘어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게 된 거죠. EMS를 돌렸더라면 이런 악순환은 없었을 거예요."

EMS는 전국 송전·발전 상태를 실시간 감시해 연료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사고 발생시 부하를 조절해 대규모 정전사고(블랙아웃)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력거래소는 지난 2002년 220억 원을 들여 EMS를 도입했지만 2003년 민영화(전력산업구조개편)를 염두에 두고 도입한 시장정산시스템(MOS)과 합치면서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게 이번 기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전 의원은 EMS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낭비한 연료비만 매년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 규모가 8000만kW인데 지금까지 별 탈 없었던 게 놀라울 정도예요. 그동안 거래소 급전원들의 경험이나 감으로 잘 버텨온 거죠. EMS는 사람으로 치면 뇌에 해당하는 전력 운영 핵심 기능이어서 제대로 작동하면 급전원들 어려움도 줄여줄 수 있어요. 사람 감에만 의존하다보면 순간 실수로 9·15 같은 정전 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거죠."

전정희 민주당 의원이 11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기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전정희 민주당 의원이 11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기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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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만 지적했어도 개선? 전력거래소도 EMS 문제 인정"

그동안 전력거래소 EMS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심지어 지난 9·15 사태 직후에도 EMS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 전기학회 교수들조차 이번 기술조사에서 처음 접했을 정도였다. 이에 전 의원은 그간 전력거래소 사이에 있었던 막전막후도 털어놨다.

"얼마 전 전력거래소 이사장(남호기)을 만났는데 내년에 EMS가 폐기된다면서 '의원님이 5년 전에만 지적했어도 개선했을 텐데'라고 털어놨어요. 자기들도 EMS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전력거래소는 내년 전남 나주로 본사를 옮긴 뒤 EMS를 폐기하고 지난 2009년 자체 개발해 현재 천안에서 시운전 중인 K-EMS를 가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 의원은 이 K-EMS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다.  

"애초 EMS와 MOS를 무리하게 합친 것부터 잘못이에요. EMS도 제대로 활용 못 하는 사람들이 K-EMS는 제대로 만들었을까 의구심이 드는 거죠. 이미 개발을 끝내놓고 2012년까지 상용화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안 되고 있잖아요. 돈만 들인 고물단지인지 알 수가 없는 거죠. 김건중 교수도 K-EMS 개발 과정에 참여했다 자기가 개발하던 거 다 가지고 나와 누군가 보충을 했어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발을 끝냈다고 발표했다는 거예요. 이러니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을 거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죠."

사실 전 의원이 그동안 전력거래소나 전력 마피아를 상대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무관심한 언론을 대할 때였다.

"국회에서도 저 말고 이 문제를 파는 의원이 없는데 국민은 말할 것도 없죠. 언론도 (전기공학을) 전공한 기자가 없어 쓰기 곤란한지 관심을 잘 안 가져요. 사실 이 문제는 전력거래소 직원이 아니라 경영진들 문제여서 언론이 많이 다뤄 압력을 넣어야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어요. 저도 국회의원이라 겉으로만 쩔쩔매지 속으로는 '네가 알면 얼마나 알아' 이런 식예요.(웃음)"

사실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의원이 이렇듯 산업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당장 산업부가 지역구 예산을 상당 부분 쥐고 있고 산업단지가 있는 익산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부에 미움 받아 지역사업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국민들도 절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한전 적자가 개선되면 전기요금 인상도 막을 수 있잖아요."

한발 더 나아가 전력거래소가 EMS 운영을 정상화할 의지가 없으면 한전과 다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전 의원은 "지난 9·15 사태 직후 전력거래소(전력계통운영)와 한전(송배전사업)을 다시 통합하는 전력산업구조개편 방안이 논의됐지만 18대 국회가 마감되면서 자동 폐기됐다"면서 "앞으로 진행 추이를 봐서 전력거래소가 개선 여지가 없으면 다시 검토할 생각"이라고 거래소에 '경고'했다.

"이제 겨우 한 막이 끝났을 뿐"이라는 전 의원은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혼자 싸우기 버거워요. 다른 의원들도 동참하면 무게가 더 실려 압박 강도가 더 세지겠죠. 사실 문제만 확인했지 아직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했어요. 산업부나 거래소도 인정하지 않아요. 외국 전문가에게 컨설팅 받게 해서 EMS를 제대로 활용하게 해야 해요. K-EMS는 자체개발해 외국 눈치 볼 필요도 없어요. LS산전 같은 개발업체만 유지보수로 큰돈을 벌 텐데 누구도 감시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태그:#전정희, #EMS, #전력거래소, #한전,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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