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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한반도를 종횡무진 날으며 인민군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미 공군 전투기다. 이 제트기가 비행할 때 '쌔익~' 하는 귀청을 찢는 비행소리와 하얀 비행운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래서 이 전투기에 붙여진 별명이 '쌕쌕이'였다. 특별히 '쌕쌕이'라는 말을 모르는 젊은 세대를 위하여 미국동포가 이 전투기 이미지를 보내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귀한 사진자료를 보내주신 그분께 감사드린다.
▲ 일명 '쌕쌕이'로 불렸던 미 F-84 제트전투기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를 종횡무진 날으며 인민군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미 공군 전투기다. 이 제트기가 비행할 때 '쌔익~' 하는 귀청을 찢는 비행소리와 하얀 비행운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래서 이 전투기에 붙여진 별명이 '쌕쌕이'였다. 특별히 '쌕쌕이'라는 말을 모르는 젊은 세대를 위하여 미국동포가 이 전투기 이미지를 보내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귀한 사진자료를 보내주신 그분께 감사드린다.
ⓒ 한 재미동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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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보급로

야전병원에서는 부상자 후송 숫자로 그날 전투의 강도를 판가름했다. 초기 전투에서는 후송 환자들이 대부분 경상자로 그 수도 적었다. 그러나 천생산, 유학산, 수암산 등에서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펼쳐지자 많은 부상자들이 후송돼 왔다. 그 가운데는 팔다리가 잘려나가거나 가슴에 총상을 입은 중상자가 속출하자 야전병원은 간이병동조차도 부족했다.

다행히 여름이라 야전병원에서는 수풀 속에 천막을 친 뒤 가마니를 깔아 임시병동을 만들었다. 부상자들이 부지기수로 넘쳐나자 야전병원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보급선이 유엔군 공습으로 끊어지는 바람에 의약품도, 심지어 환자 급식용 식량조차도 부족했다.

전투의 시작은 인민군과 유엔군이 달랐다. 인민군은 대포소리로부터 시작했지만, 유엔군은 L-19 정찰기 비행소리가 전투개시의 전주곡이었다. 유엔군 측은 포격에 앞서 먼저 정찰기를 띄워 적정부터 살폈기 때문이다. 양측은 보병의 공격에 앞서 포병들이 적 진지에 포탄을 30분 내지 한 시간씩 마구 퍼부었다.

그런 뒤 인민군 측은 탱크를 앞세워 적 진지로 돌진했고, 유엔군 측은 폭격기로 적진을 초토화시킨 다음, 뒤따라 보병들이 공격했다. 대체로 인민군은 야간 전투에 강했고, 화력이 앞선 국군과 유엔군은 주간전투에 강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린 날은 유엔군 측 비행기가 뜰 수 없기에 그런 날은 인민군 측에서 더욱 바짝 공세를 취했다. 그래서 전방고지는 밤낮으로 주인이 바뀌거나, 그날 날씨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도 했다. 한 차례 전투가 끝나면 최전방 야전병원에는 의료진이 미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숱한 부상병들이 몰려왔다. 

유엔군 측 L-19 정찰기, 전투 전에 이 정찰기가 적정을 살핀 뒤 야포의 포격 이어 폭격기 투하 등으로 이어졌다. 때로는 적진에 삐리를 살포하기도 했다.
 유엔군 측 L-19 정찰기, 전투 전에 이 정찰기가 적정을 살핀 뒤 야포의 포격 이어 폭격기 투하 등으로 이어졌다. 때로는 적진에 삐리를 살포하기도 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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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병원의 수술

김준기는 최순희 위생병 조수로, 주로 병원장 문명철 중좌의 수술을 도왔다. 문 중좌는 베테랑 외과전문의로 주로 생명이 위독한 중상자 수술을 전담했다. 야전 부상자 대부분은 대포의 포탄이나 폭격기의 폭탄, 수류탄의 파편, 소총이나 기관총 총상 등에 따른 외상이었다. 이들 상처는 세균감염으로 금세 살이 푹푹 썩어 들어갔다. 그래서 썩은 부위는 곧장 절단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초기에는 야전병원에 의약품 구색이 갖춰져 수술 전 마취제로 환자의 고통을 덜어줬다. 하지만 미군 전투기의 공습으로 의약품 보급이 끊어지자, 마취 없이 수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 환자들이 팔이나 다리 절단 수술을 할 때는 비명을 지르거나 그 공포와 고통에 못 이겨 몸을 뒤틀기 마련이었다. 그때마다 준기는 환자의 상체를 붙드는 역할을 맡았다. 이럴 때는 환자도, 집도의도, 위생병도 죄다 홍역을 치르기 마련이었다.

"김 동무, 소(Saw, 수술용 절단기) 가져 와!"
"……"

전입 초기 준기는 문 중좌가 말하는 의료기구를 몰라 멀뚱히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러면 순희가 외과용 의료기구함에서 날렵하게 절단기를 찾아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순희는 준기에게 주요 의료기구 이름을 몽땅 수첩에 적어준 뒤 외우게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준기는 문 중좌가 지시하는 의료 기구를 아주 적확하게 갖다 줄 뿐 아니라, 곧 문 중좌 지시 이전에 미리 의료 기구를 들이밀 정도로 숙달됐다. 어느 하루 수술이 끝난 뒤 쉬는 시간이었다.

"김 동무, 엄마 젖은 떼고 입대했소?"
"메라구요? 내레 티꺼워서…."

김준기 전사가 화를 벌컥냈다.

"잘못했어요. 근데 김 동무, 머리 회전이 빨라요. 어찌 그리 많은 기구이름을 빨리 외웠소?"
"머, 이 덩도야…."

최순희의 칭찬에 금세 화가 풀렸다.

"김 동무, 어느 학교 다니다 입대했소?"
"펭안북도(평안북도) 넹벤(영변) 농문둥(용문중)학교입네다."

"그 약산이 있다는 그 영변 말이에요?"
"어드러케(어떻게) 최 동무가 우리 고향 넹벤 약산을 아십네까?"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 꽃'으로 알지요. 영변에 약산 / 진달래 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
"와, 최 동무는 문학소녀구만요."

"그저 워낙 좋은 시라 저절로 외워지대요."
"시를 외는 위생병은 환자에게는 천사디요. 게다가 얼굴두 마음씨조차두 이뿌면…."

부상병을 후송하는 국군(1950. 7. 29.)
 부상병을 후송하는 국군(1950. 7. 29.)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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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언제 뗐소

"좋게 봐줘 고마워요. 그런데 김 동무, 젖은 언제 뗐소?"
"메라구요?"
"아직도 엄마 품을 찾는 막둥이 같아요."
"기런 말 하디 말라요. 내레 동생이 자그마치 셋이야요."

"그래요? 내 보기에는 아직도 응석꾸러기로 보이는데."
"내레 김만돌 맏아들로 악바리라구 동네에서 거(그) 아바지(아버지)에 거 아들이라구 소문이 자자하디요. 우리 아바지는 넹벤 읍네 덩미소에서 쌀 한 가마를 지게에 디믄(지면) 한 번도 쉬디 않구 십리나 되는 집으로 곳당 돌아오신 분이야요. 왜정 때는 독립군 군자금을 운반하다가 왜놈 순사한테 붙잽혀(붙잡혀) 인두루(인두로) 허벅디(허벅지)를 지지는 고문에도 끝내 동지를 불디 않았다구 하더만요."

"대단한 혁명가입니다."
"뭘요. 지금은 농문(용문)탄광에서 책임비서로 일하고 있습네다."

"출신 성분이 좋은 대단한 집안이구먼요."
"뭘요."

"앞으로 우러러 볼게요."
"고맙습네다."

오뉴월 하루 볕도 무섭다

야전병원 의료진들은 하루 종일 환자를 돌보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해졌고 저녁이면 몸이 끈적거렸다. 어느 하루, 후송자가 많아 밤늦게야 부상병 수술이 겨우 끝났다.

"김 동무, 낙동강에 멱 감으러 가는데 같이 갑시다."
"메라구요?"

준기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

"끈적거려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요. 내가 멱 감을 동안 김 동무가 보초 좀 서주시오."
"쳇! 내레 최 동무 몸종이오?"

"김 동무, 사수의 지시명령을 조수가 거부한 것은 상관에 대한 명령 불복종이오."
"메라구, 기것두  멩넝(명령) 불복종이라구?"

"군대에서 조수는 사수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하오."
"참! 티꺼워서(더러워서)…."

"그렇다면 먼저 군에 입대하지 그랬소."
"일주일 앞선 입대두 선임이라구."

"군대에선 '오뉴월 하루 볕도 무섭다'는 병원장 동무의 말을 듣지 못했소."
"……"

'좋소. 그럼 나 혼자 가지요. 대신 내일부터 조수를 바꿔달라고 병원장 동무에게 건의하겠소."
"알갓시오. 앞장 서라요."

그들은 야전병원 후문을 통해 낙동강으로 내려갔다. 참 아름다운 강마을이었다.

낙동강(1) (2004. 5. 21. 안동 도산서원 어귀)
 낙동강(1) (2004. 5. 21. 안동 도산서원 어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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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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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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