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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산성(山城)의 도시다. '대전은 구릉이 있는 곳마다 산성이 있다'고 해도 가히 틀리지 않는 말이다. 대전의 지세는 분지형이다. 이같은 지세를 활용한 산성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대전에만 40개의 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여타 지역에서 찾기 힘든 현상이다.

삼국시대에 대전지역은 신라와 국경을 이룬 전략적 요충지였다. 대전은 옥천에서 신탄진으로 이어지는 금강의 천연 지형지물을 이용해 왕도 공주 웅진성, 부여 사비성의 위성 역할을 했다. 아직 곳곳에는 아직도 옛 백제의 전술적 가치를 말해주는 지명과 장소들이 단서로 남아 있다.

이는 백제의 지방행정제도가 성 단위로 조직되어 성주가 군현의 관할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백제의 행정구역인 우술군(현 회덕), 노사지현(현 유성), 소비포현(현 덕진), 진현현(진잠)은 모두 성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대전 대덕구 읍내동의 연축동산성(우술성), 유성구 구성동의 구성동산성(노사지현성), 유성구 덕진동의 적오산성(일명 덕진산성, 옛 소비포현성), 서구 봉곡동의 흑석동산성(진현현성)등의 유적들은 백제의 전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장소다.

특히 백제 23대 동성왕(479~ 501)은 신라 소지왕 때 이벌찬 비지(比智)의 딸과 혼인하고 나제동맹을 맺었으나, 신라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전 동쪽 부근에 많은 성을 쌓아서 동성왕(東城王)'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보문산(해발 406m) 정상 부분의 산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으로, 둘레는 300m
▲ 대전보문산성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보문산(해발 406m) 정상 부분의 산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으로, 둘레는 300m
ⓒ 한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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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山城)의 도시 대전은 교통, 군사적 전략 요충지

대전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 남반부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영남권이나 호남권에서 서울을 향하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교통의 핵심적 위치다.

반대로 서울지역을 장악한 세력이 남하하려면 역시 먼저 차지해야 할 곳이 바로 대전지역이다. 이런 교통과 군사적 전략 요충지인 대전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산성의 도시로 됐다.

예전에 한밭대 심정보 교수가 대전문화 13호에 게재한 '대전관내 산성의 축조와 성격'이란 논문을 통해 분석한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같은 내용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리적으로 대전은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 방면은 계족산-식장산계의 산령이 충북 옥천까지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계룡산을 중심으로 한 산계가 논산, 두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사이에 형성된 분지지형에 갑천이 계룡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계족산성은 6세기 중·후반 신라와 백제에 의해 번갈아 만들어진 산성으로, 당시 대전지방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 대전계족산성 계족산성은 6세기 중·후반 신라와 백제에 의해 번갈아 만들어진 산성으로, 당시 대전지방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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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최전방으로 신라 공격 대비

역사적으로 대전은 백제시대 우술군 관할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계족산-식장산계 산령은 역사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삼국시대 신라-백제간의 접경지로서 이 산맥이 백제군의 최전방 구실을 하였으며 우술군은 바로 이 접경지에 입지하고 있다.

계족산-식장산계 산령에는 33개소에 달하는 산성유적이 포진되어 있다. 즉 군사적인 목적으로 축조된 30여개소의 성과 보들은 모두가 깊은 계곡을 낀 높은 산령에 일렬로 분포되어 삼국시대 신라의 전초기지인 고리산군(현재 옥천지방)과 대치되고 있는 것이다.

계족산-식장산계 산령에는 계족산성을 비롯하여 성치산성, 노고성, 마산동산성, 견두성, 이현동산성, 장동산성, 질현성, 고봉산성, 백골산성, 능성, 갈현성, 삼정동산성, 계현성, 마달산성 등 15개소의 산성(山城)이 분포되어 있다.

계족산성과 질현성 사이에는 둘레 25m에서 150m까지의 크고 작은 성보(城堡) 6개소가 배치되어 있고 삼정동산성에는 둘레 50m정도의 보(堡)가 1개소 축조되어있다.

능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는 해발 310m인 '비름들고개' 산 정상부에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성둘레는 300m 정도이다. 식장산과 계현성 사이에 곤륜산보루가 축조되어 있어 모두 23개소의 성보가 축조되어 있다.

갈현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에 있다. 이 산성은 해발 263m로 산 정상부에 만들었으며, 용운동에서 세천동으로 넘어가는 '갈고개'에 있다.

마산동 산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에 있는 산성으로, 서북 방향으로 노고성, 서남쪽으로 이 지역의 전략적 거점인 계족산성과 연결되어 있다. 백제 때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정동산성은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해발 240m의 산꼭대기를 빙 둘러쌓은 산성이다. 이 산성은 옥천 방면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계현산성 (鷄峴山城)은 대전광역시 동구 삼괴동 닭재 위의 북쪽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220m이다. 계현산성은 충청남도 금산군 마전 방면의 추정리산성, 금성산성과 연결되어 있어 이곳에서 넘어오는 적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동으로는 성치산성, 서로는 소호동산성, 사정성, 보문산성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계족산-식장산 방어선은 신탄진에서 옥천에 이르는 금강과 그 도하점(渡河點)을 방어함과 동시에 신라의 전초기지인 보은 삼년산성(三年山城)에서 옥천-대전-공주 이르는 신라의 침입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백제에서 축조한 것이다.

보은 삼년산성은 <삼국사기>에는 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항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읍지>에는 오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800m이고 성벽은 납작한 돌을 이용해서 한 층은 가로 쌓기를 하고, 한 층은 세로 쌓기를 하여 고구려 성처럼 매우 튼튼하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조선시대까지의 토기조각과 각종 유물이 발견되어 성을 오랫동안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후반 신라의 성 쌓는 기술을 대표하는 산성이자, 우리나라에서 돌을 이용하여 쌓은 대표적인 산성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백제 성왕을 공격한 신라의 관산성 전투부대가 이곳 삼년산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가야 왕손으로 관산성 전투를 승리를 이끈 김무력장군이 바로 김유신의 할아버지였다.

태종무열왕이 당나라 사신을 접견한 것도, 후삼국시대 고려왕건이 패퇴해 물러간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보은은 신라 멸망 후 보령군이 됐다가, 조선 세조 때 보은군으로 개칭했지만, 이전까지는'삼년산군' 혹은 '삼년군'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모두 삼년산성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더라도, 삼년산성은 성광의 웅장함만으로도 감탄사를 터뜨리게 한다. 수직으로 선 성벽의 높이는 까마득하다. 조선시대 축조된 성곽들이 대부분 3m 정도에 불과한데, 삼년산성은 낮은 곳도 13m에 달하고 높은 곳은 20m를 훌쩍 넘어선다.

신라 삼국통일의 거점이자 전초기지.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으며, 소지왕 8년(486)에 고쳐 세웠다.
▲ 보은 삼년산성 신라 삼국통일의 거점이자 전초기지.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으며, 소지왕 8년(486)에 고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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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의 도시 대전, 백제를 사수하라

예전에 금강을 건너려면 가장 중요한 도하지점은 현재 동구의 내탑동이었다. 과거 대청호가 생기기 이전까지에는 이곳 금강변에 유원지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한양길도 인근의 미륵원과 이곳을 경유했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의 도로는 청주방면에서 문의를 지나 신탄진보다 상류쪽에 위치한 주안(周岸:동구 내탑동)이라는 곳에서 금강을 건너 현재의 동구 마산동 부근 지역을 지나 증약 역을 거쳐 옥천 또는 영동에 도달했다.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는 배치

갑천수계의 산성은 대전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갑천에 임하고 있으며 그 지역의 중심지인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전 인근에 입지하고 있는 산성들을 살펴보면 백제-신라간의 국경선상에서 웅진(공주) 및 사비(부여)로 가는 길목에 4중5중으로 배치되어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했다.

대전의 산성들은 계족산성 정상부에 설치되어 있는 봉수시설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경상도방면에서 도착한 긴급한 소식을 계족산 봉수를 거쳐 청주. 충주로 이어져 서울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테뫼식 구조인 대전지역 산성

지금도 대전 대흥동 대전고등학교 남쪽의 보문오거리에서 충남대병원으로 향하는 고갯길에 '테미고개'가 있다. 여기서 '테미'란 산의 능선을 따라 둥근 테 모양으로 거의 수평이 되게 한바퀴 둘러 축성한 산성을 일컫는 백제식 지명의 흔적이다. 옆에서 본 모습이 테를 맨 모양 같다.

실제로 테미고개 부근에는 해발 108m의 '테미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1956년에 상수도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수도산(水道山)으로도 불렸다. 배수지가 위치한 산 정상 부위에 옛 백제의 테미식 토성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백제 말기 신라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보문산성의 전초기지에 해당한다.

'테뫼식 산성'으로 대표적인 것은 남쪽의 보문산성과 사정성을 비롯해 동쪽의 계족산성과 갑천 부근의 월평동산성 등이다. 대부분 이 산성들은 산 정상부에 테를 두른 듯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테뫼식 구조를 이룬다.

테뫼식 구조인 대전지역 산성
▲ 계족산선 전경 테뫼식 구조인 대전지역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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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산성에 대한 관심을 높인 분들

우리 문화와 역사를 지키고 보존하려는 모임인 대전문화연대에서는 2009년부터 문화재로 지정된 대전 산성 24곳을 탐방하는 산성트레킹과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되새기는 '나는 성주(城主)다' 프로그램 활동을 하고 있다.

대전시민들로 하여금 각 산성의 주인인 '성주'를 정해 한해동안 산성과 그 주변지역의 생태 환경과 문화를 알아보는 활동이다

'나는 성주(城主)다' 프로그램은 대전이 산성의 도시로서의 명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하고 대전 산성을 시민들에게 다시 알리고 더 이상의 파괴와 훼손을 막아서 산성을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산성 지킴이의 활동이다.

이 프로그램 운영에 대전문화유산울림 안여종,박은숙님 등이 수고하고 있다. 대전의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해 온 모든 이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대전의 산성에 대한 조사는 해방 후 충남대학교 고 장암 지헌영교수가 선구적 역할을 했다. 지헌영(1911~ 1981)교수는 해방 전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고려가요와 향가의 해독과 해석을 시도하고 「향가여요신석」을 저술했다. 어문 연구회, 한국 언어 문학회를 창립하는 산파역을 했고, 국문학뿐만 아니라 국어학, 민속학, 지리학, 사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때부터 충남대학교에서 윤무병, 성주탁교수와 그 제자들에 의해 고대산성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었다.

그 후 민간자생 단체인 옛터를 생각하고 돌아보는 모임(회장 전 조선일보 기자 김세영, 사무국장 백남우)이 1985년 11월 처음 계족산성 탐방을 시작하여 대전지역의 고대 산성답사와 시민대상 산성학술강좌 산성탐방대회, 산성봉화제 등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냈고, 국가 및 대전시 지정문화재로 24곳을 지정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러던중 2004년 충남대 사회학과 김선건 명예교수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전둘레 산길 잇기 등으로 산길을 따라 시민들이 산에 오르면서 잊혀졌던 산성에 관한 관심들이 재점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같이 대전문화자산인 산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HD다큐멘터리 '산성의 도시 대전을 걷다'가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적도 있다.

'산성의 도시 대전을 걷다'는 대전지역 영상업체인 (주)오렌지나인 박종선 감독과 미디어뱅크 임항재 촬영감독이 지난 2010년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간 대전지역 산성을 촬영한 것. 대전지역 영상업체가 자체기획으로 공중파에 방영되는 첫 작품이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 HD다큐멘터리 내용은 대전지역에 산재한 산성을 중심으로 산성의 역사를 알고 현재에 이르러 관광의 휴식의 장소로 변모해가는 산성을 조명하는 것으로 대전 산성의 이야기를 통해 대전문화자원의 가치를 전달했다.

적오산성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원자력연구원 인근 해발 255.1m의 적오산 정상에 만들어진 산성으로 덕진산성이라고 불리운다.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다.
▲ 적오산성 적오산성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원자력연구원 인근 해발 255.1m의 적오산 정상에 만들어진 산성으로 덕진산성이라고 불리운다.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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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생.돌의 백남우 사무국장은 "대전 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고대 산성들을 잇는 둘레산길은 바로 고대 산성을 잇는 길로 시민들이 지킴의 역사와 자연을 체험하며 계절을 느끼며 걷는 최고의 산길이다. 지킴의 역사인 대전 고대 산성들을 잇는 이 길을 우리지역에 남아 있는 고대백제어인 '테미'의 의미를 살려 '백제산성 테미길'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또 "'대청호반 올레길'과 같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의미와 독창성도 살려내지 못하는 명칭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백제산성 테미길은 고대 잉카의 고산상의 유적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과 같은 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일리있는 주장이다. 대전지역의 수많은 산성들을 아우르는 역사와 스토리텔링의 발굴 노력이 필요하다.
대전지역의 산성현황과 둘레 산길
▲ 대전의 산성지도 대전지역의 산성현황과 둘레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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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전의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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