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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정말 건축가 맞아? 제 정신일까? 건축공부 한 사람 맞습니까?"

요즘 이탈리아 감사원과 관련 사건담당 판사와 검사들, 조사위 전문가들이 세계 최고의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62세)의  건축설계자료들을 검토하며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판결문에도 이 문구들이 등장한다.

특이한 디자인, 색다른 건축물을 선호하는 세태를 향한 경종을 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당사자인 건축가도 곤욕스럽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새롭고 독특한 건축물을 자신의 재임기간에 세워 과시하려던 이탈리아 공무원들은 과욕이 부른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스페인이 배출한 최고의 건축가, 칼라트라바가 요즘 이탈리아에 자신이 지은 건물 때문에 큰 낭패를 겪고 있다. 게다가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그간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다른 건축물 붕괴사건도 재조명되고 있다.(법원 판결에 따르면 붕괴된 건물들은 모두 설계상의 치명적 문제가 원인이었다.)

칼라트라바는 건축의 수학적 질서에 매료돼 건축학을 공부했고, 보다 완벽한 건축물은 건축학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스위스 취리히에서 토목공학을 더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칼라트라바는 그의 표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종류의 모습을 건축물로 '완벽'하게 이뤄내는"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교량건축을 시작으로 리스본의 오리엔트 기차역, 미국 밀워키 미술관,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경기장 등을 비롯해 전세계에 수없이 많은 독특한 구조건축을 설계했다.

특히 덴마크 코펜하겐 건너편 스웨덴 말뫼시에 세운 고층빌딩(작품명 : Twisting Torso, 뒤틀린 상체)은 비틀린 인체의 상체에서 영감을 얻어 빌딩을 설계함으로써 세계적 관심을 받았으며, 비대칭적으로 설계한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알라미요(Alamillo)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더블린,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테네의 다리 등을 건축해 교량건축가로 명성을 쌓았다. 이런 이유로 설계비 역시 최고의 비용을 청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 스타' 칼라트라바가 주목 받는 이유

 칼라트라바 설계한 이탈리아의 메디오파다나(Mediopadana)역 모습.
 칼라트라바 설계한 이탈리아의 메디오파다나(Mediopadana)역 모습.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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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국제적인 건축가 칼라트라바를 놓고 최근 이탈리아 언론과 건축계에서는 '건축 스타'라는 수식어를 붙여 그의 이름 앞에 사용하고 있다. 이는 칼라트라바가 건축계에서 튀는 설계를 하는 유명스타이지, 건축가가 아니라는 의미다.

도대체 칼라트라바가 지은 건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 8일,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지방의 새 기차역, 메디오파다나(Mediopadana)역 개장식이 진행됐다. 2시간이 소요되는 밀라노와 볼로냐 두 도시를 40분 만에 달리는 초고속열차의 개장날이었다. 7900만 유로(약 1200억원)가 투입된 이 기차역은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것으로 개장식 장면 사진을 보면 참석자들이 우비와 우산을 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황당하게도 완공된 기차역 천장에서 물이 새, 우비와 우산을 쓰게된 것. 칼라트라바가 고집한 특수단독업체에서만 공급되는 천장재질을 사용해 벌어진 일로 특별한 대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칼라트라바의 너울'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기차역은 밖에서 보면 살포시 내려앉은 면사포 너울처럼 멋지다. 그러나 기차역 안에서도 물이 새 결국 너울 같은(?) 우산을 쓰게 된 꼴이 됐다.

문제는 이 역이 공사 때부터 제기된 설계상의 문제점들로 인해 이미 감사원 수사대상에 올라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주위 반대를 무릅쓰고 칼라트라바에게 작품 의뢰를 고집, 공사를 강행한 공무원들도 당연히 수사대상이다.

이 기차역 외에 칼라트라바의 다른 건축물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베네토 지방위에서 칼라트라바를 재판에 회부한 사건이 바로 그것. 2008년 9월 완성된 베네치아 '헌법의 다리'(Costituzione)가 그 대상이다. 칼라트라바는 멋을 위해 독특한 비취 빛의 특수유리와 대리석을 깔고 LED조명이 다리 난간에서 뿜어져 나오게 설계했다.

개막식에는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이 직접 축사까지 했다. 또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베네치아에 들어선 현대적 다리였기 때문에 유럽의 많은 방송사들은 건설현장과 개막식 장면을 수시로 중계해 내보냈다. 그러나 이 '헌법의 다리'는 설계상  치명적 문제로 설계자인 칼라트라바를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총공사비 1130만 유로(약 170억)에, 노약자·장애인 전용 케이블카(아직도 공사중이고, 실제 작동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제작에만 180만 유로(약 27억)가 든 다리다. 원래 '헌법의 다리' 공사비는 600-700만 유로(약 90-105억)였다고 알려져 있다.

칼라트라바가 설계해 논란이 되고 있는 베네치아 '헌법의 다리' 모습.
 칼라트라바가 설계해 논란이 되고 있는 베네치아 '헌법의 다리' 모습.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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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다리의 계단 바닥의 유리는 너무 자주 깨져 교체하기 바쁘다. 이 바닥유리는 칼라트라바가 고집한 특수제작 독점업체에서만 생산하기 때문에 대체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그로 인한 비용과 시간낭비도 상당하다. 또한 유리바닥재질이 미끄러워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문제도 있다. 눈이나 비가 온다든지 습한 날에는 통유리 계단 바닥이 특히 미끄럽다. 이를 풍자해서 얼마 전에 시민단체들은 스키복을 입고 이 계단에서 스키를 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소재는 이탈리아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다. 칼라트라바를 한심한 건축가로, 그리고 자기돈 아니라고 거액의 비용을 쉽게 쓰는 공무원이 풍자의 대상이 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활처럼 휜 멋진 다리의 골격은 그 전체가 하나의 통강철로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연적인 곡선미를 살렸다. 반면 다리에 흔들림이 생겨 노약자·장애인 전용 케이블카 설치가 쉽지 않고, 설령 케이블카 설치를 한다해도 공모양의 2인용 케이블카가 다리 바깥쪽 허공에 매달려가는 형국이라, 그안에서 심신노약자들이 느낄 공포감이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의사협회에서 경고까지 해 둔 상태다.

2011년부터 감지된 다리의 흔들림 탓에 시민들은 가급적 이 다리의 통행을 삼가고 있다. 2008년 9월 개장부터 2012년 5월까지 이 다리에 사용된 보수, 재정 정비작업에만 400만 유로(약 60억)가 투입됐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몇 년 후에는 그 비용이 1000만 유로(150억)에 이를 전망이다.

미끄럼 다리가 된 '헌법의 다리'의 비극

설계자인 칼라트라바와 그의 동료인 3명 엔지니어에 대한 2년 여에 걸친 이탈리아 감사원과 검찰의 조사결과는 이렇다.

"설계에서의 심각한 오류가 단계별로 계속 발견되고 있다. 전적으로 설계 무능의 오류들이다. 또한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야심찬 설계의 복잡성을 이해해낼 만한 능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제작 소요기간과 작업 비용만 계속 투입됐다. 설계, 기술 모두 그 전문성을 찾기 힘든 무능한 오류가 발견됐다." ( 까를로 마스텔로니 차장검사 작성 )

2013년 2월 법원판결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미끄럼 다리(Scivoloso)가 되어버린 '헌법의 다리'는 전적으로 그 책임이 미숙한 설계가인 건축가와 책임 엔지니어들에게 있는 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는 346만 7000 유로(약 52억)의 피해보상금을 베네치아 시측에 지불할 것을 판결한다."

독특한 디자인도시 계획을 내세워, 당시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칼라트라바를 유치했고 그외에 대형유람선박사업 유치, 카지노 새사업장 인가, 페니체 오페라극장 운영사업 등 여러 정경유착형 사업을 강행한 당시 시장과 그의 부인은 이 사건과 관련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자신의 재임기간 중에 칼라트라바 '헌법의 다리'를 유치하는 등 디자인 도시형성으로 역사에 남고자했던 시장의 욕심이 결국 파국을 부른 셈이다.

이 사건들과 함께 지금까지의 칼라트라바의 다른 건축물의 사고도 주목받고 있다. 스페인 오비에도(Oviedo) 박람회 건물 계단들이 2006년 8월 모두 붕괴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한밤중 사고여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2000만 유로(300억)의 보상소송이 진행되었고, 판사의 중재로 칼라트라바측이 320만 유로(48억)를, 보혐회사측이 1050만 유로(163억) 를 보상하는 것으로 합의 됐다. 그외에도 칼라트라바의 건축물들은 스페인의 빌바오, 발렌시아 등의 지역에서 각종 붕괴 및 설계 착오로 인한 사고로 구설에 올랐다.

멋 지상주의가 부른 참담한 실패의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태그:#칼라트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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