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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학원 선생은 돈 벌기 위해 지들을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학생들에게 학원 선생은 돈 벌기 위해 지들을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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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을'이라는 신분을 유지하는데도 힘이 들지요. 물질적 불이익을 당하는 을들, 특히 정서적으로도 불이익을 당하는 을들의 사연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물질도 물질이지만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당연한 것입니다.

더럽고 치사함을 견뎌내야 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밥줄 문제, 돈과 관련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사회에서 스스로 '갑'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을 누가 대놓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제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가 속한 조직에 의해 얼마든지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파트타임 학원 강사로 두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극성인 어머니들이 많은 학원은 피곤합니다. 수시로 상담전화를 걸어옵니다. 간식을 사들고 찾아옵니다. 청소를 해주는 어머니도 있고요. 밥 먹자, 술 마시자는 어머니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원장은 그 어머니들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더 봐주라 당부합니다. 같이 밥 먹어라, 술 마셔라 은근히 압박도 하고요. 정작 '을'이 되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순간은 아이들에게서 옵니다. "학원 끊을 거예요"라는 말을 협박처럼 하는데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학생들에게 학원 선생은 돈을 벌기 위해 지들을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시험 잘 보라는 말에 "잘 못 보면, 선생님 월급 깎이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시험 못 보면 환불해 달라"는 말도 합니다. "청소 하시는 분 힘드니 교실 깨끗이 쓰자"고 하면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요"라고 합니다.

그들 앞에서 나는 '병'이 되고 '정'이 됩니다

게시판에는 '친구 한 명을 학원에 소개할 때마다 문화상품권을 주겠다'는 글이 떡하니 붙어 있습니다. 그 앞에서 나는 '병'이 되고 '정'이 됩니다.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애들 머리에도 돈이 가득한 겁니다. 공자가 살던 때에도 요즘 아이들 버릇없다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저런 말은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책임이지요. 이 아이들이 자라 만드는 사회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저들도 커서 갑이 되고 을이 되겠지요. 학교나 학원이라는 시멘트 건물 안에서 이미 갑과 을로 견뎌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판에 박힌 꿈을 가진 아이들, 혹은 그것조차 모르겠다 하는 아이들이 저마도 갑이 되고 을이 되어 을은 갑이 되기 위해 갑은 더 확실한 갑이 되기 위해 버둥대야 할 텐데.

김애란의 소설 <서른>에는 전공을 속인 채 학원에서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쳐 살아가는 불문과 학생이 등장합니다. 그녀가 학원에서 만나는 자신의 '제자'들을 보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갑'이지만, '갑' 같지 않은 원장님

판에 박힌 꿈을 가진 아이들, 혹은 그것조차 모르겠다 하는 아이들이 저마도 갑이 되고 을이 되어 을은 갑이 되기 위해 갑은 더 확실한 갑이 되기 위해 버둥대야 할 텐데.
 판에 박힌 꿈을 가진 아이들, 혹은 그것조차 모르겠다 하는 아이들이 저마도 갑이 되고 을이 되어 을은 갑이 되기 위해 갑은 더 확실한 갑이 되기 위해 버둥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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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4년째 일하고 있는 학원이 있습니다. 아이가 학원에 빠지지 않았나 정도만 확인하는 부모님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단한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단과 학원에서 영어나 수학 한 과목을 듣는 돈으로 국어, 사회, 과학을 함께 공부하는 종합 학원입니다.

아이들이 가끔 어느 학원에는 입구에 사람(데스크의 상담선생님을 말합니다)이 앉아 있다더라, 어느 학원은 학원비가 한 과목에 얼마라더라 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고시 공부 하다 그만두고 10년째 학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은 우리 학원도 상위권을 휩쓸던 아이들이 많았던 때가 있었노라 자주 회상하십니다.

공부 좀 한다하는 아이들, 집이 좀 산다 하는 아이들은 학원 밀집 지역에 있는 프랜차이즈 학원이나 단과학원으로 가고 우리 학원은 중하위권 아이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게 원장님의 진단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니기 시작해 지금 중학교 3학년인 아이들도 꽤 됩니다.

원장님의 삶은 그냥 학원입니다. 학원이 작다 보니 초중등부 수학 수업은 직접 하십니다. 주말도 없이 학원에 매여 있지요. '나머지'에 걸려 주말에도 학원에 나와야 하는 아이들은 원장님 욕을 랩처럼 해대는데(저도 격하게 맞장구를 쳐주지만,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야"로 마무리 해주지요), 그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최대한 좋은 성적을 만들어 좋은 학교로 진학시키는 것이 아이들 미래를 위한 최선을 방법이라 생각 하시는 분이지요. 오로지 그것 밖에 몰라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맞다 믿고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분입니다. 셈을 안 하시기야 하겠냐만 아이들을 돈으로만 보는 분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열심히 챙겨 준다 하더라'는, 순전히 부모들 입소문으로 아이들은 꾸준히 있는 편입니다.

나는 을이면서 갑인 존재입니다

온갖 '갑' 원장들이 다 있다지만 저는 좋은 원장을 만나 급여 미뤄지는 일이 없었고 시험기간에는 보충비까지 받아가며 일합니다. 자식 나이쯤 되는 저에게 슬쩍이라도 한 번 말을 놓으신 적도 없지요. 간혹 옆 교실에 앉아 제 수업을 엿듣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정도야 '원장님 귀엽네' 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입시경쟁을 부추긴 정부가 사교육을 사회악으로 칭하는 사회입니다. 진짜 갑들은 따로 있을 텐데요. 그들은 사교육 종사자 전체를 '을'로 만들어 들었다 놨다 합니다. 사교육 안에도 분명한 양극화가 있습니다. 사교육 종사자들이 엄연한 현실에 대책 없이 때려 잡자니요.

어느 학원이 문을 닫았다더라, 선행학습 금지법 이야기가 나오더라 하면 원장님은 속이 타지요. 이제와 다른 어떤 일을 하실 수 있겠어요? 저는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원에서 나온 선생님께 과외를 받았습니다. 방과 후에 학교 교실에서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연결해 준 것이지요.

의식하든 안 하든 나는 을이면서 갑인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 조금씩은 '갑'일 거예요. 직장에서 을이던 사람이 퇴근 후에는 제대로 갑 행세를 해대기도 하지요. 친구들이 일하면서 '고객'들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들으면 다음부턴 나도 조심하게 되죠. 내 돈 낸다고 '갑' 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오늘 사람 하나 '을' 만드는데 한몫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그 정도지요. 내 테두리 안에서 단도리.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거 아니겠어요?

덧붙이는 글 | '나는 을입니다'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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