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초연과 재공연을 거쳐 만들어진 활력과 진정성에 올해는 하나가 더 생겼다. 깊이다. 젊은 배우들조차 초연이나 재공연 때 했던 간단한 대사조차도 깊이가 만들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 정재은 "초연과 재공연을 거쳐 만들어진 활력과 진정성에 올해는 하나가 더 생겼다. 깊이다. 젊은 배우들조차 초연이나 재공연 때 했던 간단한 대사조차도 깊이가 만들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 신시컴퍼니


배우 정재은이 <푸르른 날에>서 연기하는 정혜는 분명 비극적인 인물이다. 정혜는 한 남자와 영원한 사랑을 나눌 것처럼 한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내야 했다. 여주인공이기에 더욱 비극적이다. 하지만 정혜의 사랑은 비극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혜가 겪은 운명의 비극은 딸의 세대에 이르러 화해로 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배우 정재은은 무대보다 브라운관에서 먼저 얼굴을 알린 배우다. 1989년 KBS 13기 탤런트 공채에서 발탁된 배우다. 남편인 배우 서현철은 요즘 뮤지컬과 브라운관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뮤지컬 <그날들>과 드라마 <출생의 비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이들 부부는 브라운관과 연극, 뮤지컬에서 삼각 공세를 펼치는 중이다. <푸르른 날에>서 여주인공 정혜 역을 연기하는 정재은을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나보았다.

- <푸르른 날에>는 약간 어려운 작품이다. 대본 분석에 있어 애로점이 있지는 않았나.

"원작은 보지 못하고(참고로 <푸르른 날에>는 원작이 있다) 고선웅 연출가가 각색한 대본만 읽었다. 원작은 난해한 걸로 알고 있는데 고선웅 연출가가 각색한 대본을 읽었을 때에는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아마 핵심만 추려내서 만든 대본 덕분일 듯싶다. 소재가 어둡다보니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가 궁금했다.

연출이 초연 때부터 배우들에게 당부하는 부분이 있었다. '대본을 분석하지 말라. 진정성을 갖고 집중해 달라'고 늘 당부한다. 연출가의 당부대로 대본을 분석하기 보다는 활력 있게 연기하고 있다."

정재은 "연출이 초연 때부터 배우들에게 당부하는 부분이 있었다. ‘대본을 분석하지 말라. 진정성을 갖고 집중해 달라’고 늘 당부한다. 연출가의 당부대로 대본을 분석하기 보다는 활력 있게 연기하고 있다."

▲ 정재은 "연출이 초연 때부터 배우들에게 당부하는 부분이 있었다. ‘대본을 분석하지 말라. 진정성을 갖고 집중해 달라’고 늘 당부한다. 연출가의 당부대로 대본을 분석하기 보다는 활력 있게 연기하고 있다." ⓒ 신시컴퍼니


- 연출가가 활력이 넘치게 연기해 달라는 당부를 배우들에게 했다. 그렇다면 초연부터 배우들의 활력이 어떤 방향으로 늘어가고 있는가.

"알다시피 저는 외부에서 영입된 배우이고 극단 마방진 소속의 배우가 많이 참여하고 있다. 고선웅 연출가와 마방진 배우들이 많은 연기 작업을 하다 보니 연출가가 어떤 걸 바라는가 하는 방법론과 무대에서 어떻게 활력을 쏟아내는가를 알고 있더라.

초연 당시 보름 전에 전막 시연을 해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호흡이 잘 맞아서 울기까지 했다. 공연하는 배우들도 치유가 되고, 연기하며 내면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배우와 연출의 합이 잘 맞았다.

두 번째 공연은 연기의 방향이 초연보다 약간 달랐다. 연출가가 초연과 똑같은 동선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의 컨셉을 약간 다르게 주문했다. 어떤 날은 드라마처럼 연기하고, 어떤 날은 모든 대사에 감정을 실어보고, 또 어떤 날은 반대로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연습하는 식으로 매일의 연습 방향이 모두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습 방식이 배우에게 먹히더라. 초연을 한 번 했으니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배우들에게 이런 연습 방식은 새로움을 불어넣었다. 분명 처음 하는 공연이 아니라 초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인 부분이 채워지더라.

활력에 감성까지 첨가되니 초연보다 관객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고 공연하는 배우도 활력과 감성 두 가지가 겸비되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초연과 재공연을 거쳐 만들어진 활력과 진정성에 올해는 하나가 더 생겼다. 깊이다. 젊은 배우들조차 초연이나 재공연 때 했던 간단한 대사조차도 깊이가 만들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 어떤 발라드 가수는 발라드의 감성을 실제 생활에도 유지해야 발라드를 부를 때 감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사려되어 코미디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혹 배우 정재은도 <푸르른 날에> 공연을 위해 실생활에도 감성을 절제하는 편인가.

"어떤 작품을 맡으면 실제로 감정을 실생활에서 절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푸르른 날에>는 작품의 정서가 하나의 톤이 아니라 둘로 나뉜다. 남자주인공이 고문을 받기 전과 후의 정서가 판이하게 다르다. 그래서 고문받기 전과 후의 두 정서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고문받기 전의 정서가 밝고 명랑한 정서라면 고문 받은 후에는 진지한 정서로 표현할 수 있다.

제가 맡은 역할은 남자주인공의 이러한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역할이다. 매번 공연할 때마다 여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매번 여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다보니 굳이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 실생활에서 감성을 절제할 필요가 없어진다."

정재은 "결혼 전에는 연극하는 남편을 만난다는 건 제 인생에 절대 없어야 할 철칙과도 같은 일이라 생각했지만(웃음) 같이 살면서 처녀 때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이 너무나도 고맙다."

▲ 정재은 "결혼 전에는 연극하는 남편을 만난다는 건 제 인생에 절대 없어야 할 철칙과도 같은 일이라 생각했지만(웃음) 같이 살면서 처녀 때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이 너무나도 고맙다." ⓒ 신시컴퍼니


- 남편인 서현철 배우는 요즘 뮤지컬 <그날들>과 드라마 <출생의 비밀>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남편 얼굴을 볼 시간은 있나.

"부부인데 얼굴을 보지 않겠나.(웃음) 따로따로 귀가하지 않고 만나서 집에 같이 들어간다. 드라마 촬영은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지만 공연이 있는 날에는 집에서 함께 나온다. 움직이는 시간대가 남편과 같아서 다행이다.

어떤 배우든 마찬가지지만 귀가해서 바로 잠드는 배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공연장에 갈 때도 이야기하지만 귀가할 때 차 안에서도, 집에서도 새벽까지 그날 있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남편과 함께 나눈다. 나눌 이야기는 모두 나누며 산다.(웃음) 너무 행복하다.

살면서 정서적인 공감을 나누지 못해 힘든 부부가 많이 있지 않나. 저희 부부는 정서적인 공감은 물론이고,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남편에게 조언도 많이 받는다. 설사 안 좋을 일이 있어도 공감을 통해 그 때 그 때 푼다.

결혼 전에는 연극하는 남편을 만난다는 건 제 인생에 절대 없어야 할 철칙과도 같은 일이라 생각했지만(웃음) 같이 살면서 처녀 때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이 너무나도 고맙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무대 일은 저 혼자 감당해야만 했을 것이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정서적인 안정감도 제공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남편은 제 인생에 있어 최고의 남편이다."

정재은 5.18 푸르른 날에 광주민주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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