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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3일 '극우총리'로 불리는 아베 일본 총리는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 국가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했다. 우리는 분노했다. 특히 그가 괴뢰국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패전 후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 외손자이기에 분노는 더 컸다. 하지만 일본 극우 세력들의 망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

"일본인이 강제로 종군위안부로 끌고 갔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가난한 시대에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나는 장사였고 (위안부는) 이를 피하지 않고 그 장사를 선택한 것이다."(2012년 8월 24일,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 있다면 한국이 내놨으면 좋겠다"(2012년 8월 21일,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난징 대학살은 허구...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저지하려고 하는 배은망덕한 패거리들은 도덕교육을 논할 자격이 없다."(이나다 도모미 의원)

'극우총리' 아베 "천황 폐하 만세!"... 일본 선불교 '천황 숭배'

급기야 지난 4월 28일에는 도쿄 시내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주권회복·국제사회복귀 기념식'에서 일본 극우세력들은 "천황 폐하 만세"를 삼창했다. 그 자리에는 일왕 부부가 참석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망 후, 일본 총리가 참석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천황 폐하 만세'가 울려퍼진 것은 처음이었다.

일본군국주의가 부활을 노래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천황 폐하 만세'였다. 아베에게 '천황'('일왕'으로 표기해야지만, 이 글 특성을 살리기 위해 천황으로 표기함)은 숭배대상이다. 오로지 일왕을 중심으로 한 절대 복종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요, 방식인셈이다. 이는 파시즘(Fascism)이다. 파시즘은 국가의 절대 우위로 개인의 뜻을 굽혀 국가가 명령하는 대로 국민은 따라야 한다. 곧 나라를 상징하는 지도자에게 완전 복종이다. 비록 파시즘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이탈리아 무솔리니에게서 시작된 것이지만, 천황제 중심 사고를 지향하는 일본 극우는 일본식 파시즘이다.

그런데 일본식 파시즘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이, 아베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같은 정치인만 아니라 불교가 단단히 한몫했다는 사실이다. 자비와 깨달음, 무아, 업, 열반, 정토왕생, 생사일여가 핵심 가르침인 불교와 파시즘이 함께 했다는 것은 충격이다. 하지만 일본 선불교는 "자비심으로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더 나은 보살행은 없다"는 말로 파시즘과 결탁했다.

<불교 파시즘>
 <불교 파시즘>
ⓒ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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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불교 파시즘>은 일본제국주의 불교(선불교)가 석가모니 자비사상 핵심인 '불살생의 기본계율'을 왜곡하면서 군국주의에 동참해 그들과 함께 만행에 어떻게 동참했는지 철저히 패하친 책이다.

<불교 파시즘>은 "일본 선승들이 '검선일여(劍禪一如)'라는 이름하에 일본 군국주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면서 "이들은 자진해 군대를 찬양하는 '나팔수' 역할을 했으며 극우파와 손을 잡고 천황숭배를 외치며 전쟁에 나가 살생함을 정당시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불살생'과 '비폭력'의 종교인 불교가 철저하게 일본 군국주의의 꼭두각시가 됐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태도는 우리의 신체를 천황 폐하께서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중략) 우리는 누구나 생명에 매우 강하게 집착된다. 그러나 바로 그 집착을 버려야만 우리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고귀한 정신을 획득할 수 있다. 불도 실천의 핵심은 자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소아의 생각이 없을 때, 우리는 참된 일본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본문 213쪽)

불교 가르침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이 버림은 다른 이를 살리는 길이다. 하지만 일본 선불교는 국가 곧, 천황을 위해 버리라고 한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다시 태어나는 일이라고 강조하는 것에서 특정 종교가 세속 정권과 결탁할 때 얼마나 잔혹한 비극으로 이어지는지 일본제국주의 선불교가 보여주고 있다.

원래 불교는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곧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선불교는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기에 이른다. 천황을 신으로 숭배함으로서 수많은 이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천황을 위해 죽으라고 외친다.

일본 불교 "천황을 위해 죽어라"

"천황 폐하께서는 우주를 지배하는 신의 화신이시다. 삶의 목적은 폐하의 소망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다. (중략) 세계는 공산주의, 자본주의,무정부주의 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졌다. 우리는 일본인으로서 폐하의 소망에 따라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본문 73쪽)
"천항 폐하의 1억 신민은 모두 명예로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적이 보이면 죽여야 한다. 거짓을 타파하고 진실을 확립해야 한다. 이것은 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본문 249쪽)

천황 폐하를 위해 죽은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하지만 "살아서 포로로 잡히는 것은 치욕이었다, 내 생명이 중요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적의 생명은 훨씬 덜 중요해진다"며 "이런 철학으로 인해 우리는 적군을 경시했고, 이것은 결국 포로들의 대량 살해와 학대로 이어졌다"고 아즈마 시로는 말한다.

아즈마 시로는 일본제국 육군 제16사단 20연대 병사로 난징 대학살(1937년 12월)에 참여했던 이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도살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계속됐지만, 이런 식으로는 2천 명밖에 죽일 수 없었다, 다음 날 이런 식으로 죽이는 데 지친 일본군은 기관총을 설치했다"며 "일본군 두 명이 줄지어 늘어선 포로들을 향해 흝듯이 교차사격을 했다"고 말이다. 이렇게 죽어간 난징 사람들이 3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난징 대학살을 인정하는 일본 군인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국체를 손상하는 자를 죽여도, 부처님은 죄가 아니라 말씀하셨다"

이렇게 잔혹한 학살을 자행해도, 그것이 천황을 위한 것이라면 '영예로운 일'이고, 잔혹한 학살을 자행하다가 죽어도 그것이 천황 폐하를 위한 것이라면 다시 살아돌아 올 것이라고 승려 야마다 레이린은 가르쳤다.

"전사자들이 보여준 영웅 정신의 참된 형태는 그들의 충성과 용맹과 고결한 성품에서 비롯된 좋은 업의 힘이다. 그것은 결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이 업의 힘으로 만들어진 육체와 정신은 지금까지 존재해 온 것 이외의 것이 될 수 없다. '천황 폐하 만세!' 하고 외치며 죽은 장교와 사병들의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고귀하고 영웅적인 정신은 바로 여기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본문 279쪽)

이제 이들은 '적'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데 까지 나아간다. '초국가주의자'로서 '혈맹단'이란 암살단을 이끌었던 이노에 닛쇼'(1886~1967)의 스승인 야마모토 겐포는 이렇게 말한다.

"절대자인 부처님께서는 사회 화합을 해치고 국체를 손상하는 자들이 있을 때는 그들이 선량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그들을 죽이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언명하셨다. 불교의 모든 조각상은 부처의 정신을 나타내는데,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의 조각상 외에 칼을 쥐고 있지 않은 불교 조각상은 없다. 어린이들의 보호자인 지장보살조차 전쟁의 승리자로 나타날 때는 손에 창을 들고 있다. 따라서 참된 인간성의 완성에 기반을 둔 불교는, 사회의 화합을 해치려 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량한 사람이라도 죽일 수밖에 없다."(본문 383쪽)

선량한 사람도 그가 천황에 불경하고, 사회 체제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면 죽여도 된다는 주장이 충격적이다. 그것을 부처님은 죄가 아니라고 엄명하셨다는 말엔 아연질색할 뿐이다. 이렇게 일본 선불교는 일본제국주의 전쟁 학살을 정당화하는 정신이었고, 사상이었고, 신념이었다.

2013년 4월 극우총리 아베가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짖고, "침략에 대한 정의는 다르다"는 외침이 가볍지 않는 이유다. 지금 일본 극우는 과거 일본 선불교가 "천황 폐하를 위해 죽어라" "국체를 손상하는 자들이 선량할지라도 부처님은 범죄가 아니라고 하셨다"는 것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종교를 반성하라... 그렇지 않으면 학살에 동참할 수 있다

사실 일본 선불교 과거 모습은 그들 문제만 아니라 십자군 기독교와 2000년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 미군 그리고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 자들도 '성전'이란 이름으로 다른 종교와 나라 사람들을 죽였다. 저자는 <불교 파시즘>에서 "전 세계 여러 종교의 사려 깊은 신자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시작한 전쟁과 자신들의 신앙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다. 끊임없이 자신의 종교를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 선불교가 갔던 그 학살에 동행자가 될 수 있다. 그 비극을 되풀이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불교 파시즘>은 가르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불교 파시즘>(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ㅣ 박광순 옮김 ㅣ 교양인 펴냄 | 2012.04. | 2만2000원)



불교 파시즘 - 선(禪)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박광순 옮김, 교양인(2013)


태그:#불교파시즘, #일본극우, #선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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