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 음식물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됨에 따라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주방용 오물분쇄기(디스포저·disposer) 사용이 일부 지역에서 허용될 전망이다. 다만 정부가 디스포저 사용에 내세운 조건이 까다로워 일부 신도시에서만 디스포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디스포저 도입 방안을 찾기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고 1995년부터 18년 동안 금지해온 디스포저를 일부 지역에 한해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디스포저란 각 가정의 주방 싱크대에 설치해 음식물쓰레기를 갈아서 하수처리장으로 바로 흘려보내도록 한 장치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았다가 운반·수거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정부는 그동안 하수처리장의 여건과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정책 등을 고려해 디스포저 도입을 금지해 왔다.
환경부, 분류식 하수관 갖춘 지역 한해 설치 허용 방침정부 측 발제자로 나선 환경부 홍동곤 생활하수과 과장은 "하수도 여건이 양호한 지역에 한해 지자체의 신청을 받아 디스포저 허용 지역을 정할 방침"이라며 "디스포저 설치작업도 환경청에 등록된 업체만 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의 디스포저 허용 조건에 따르면 우선 하수관이 '오수관'(하수가 흐르는 관)과 '우수관'(빗물이 흐르는 관)으로 나뉜 분류식 지역이어야 한다. 또 음식물찌꺼기가 섞인 고농도 하수를 처리할 수 있는 하수처리장 여건을 갖춰야 한다.
홍 과장은 "세종시와 같이 최근에 건설된 도시는 디스포저 허용 조건을 만족할 가능성이 크지만 판교·평촌·산본 등 신도시는 하수관을 개·보수 할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음식물쓰레기 문제로 홍역을 겪는 대도시인 서울시에 대해서는 "하수관 분류식 지역이 17%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합류식 지역이기 때문에 디스포저 허용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디스포저 시범사업을 담당한 중앙대 오재일 교수는 "서울과 경기 일부지역에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디스포저 시범사업을 한 결과 허용조건을 만족하는 지역은 전국적으로 10% 이내일 것"으로 예측했다.
오 교수는 "여러 조건과 시범사업 결과를 반영하면 디스포저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주로 신규 개발지역"이라며 "경남 진주 같은 혁신도시, 강원 원주 같은 기업도시 등에는 설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기 성남시 분당, 안양시 평촌 등 1기 신도시의 경우 분류식 하수관이 대부분이지만 노후한 상태"라며 "앞으로 하수관을 개·보수하면 디스포저 사용허가 지역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허용지역 이외 지역에서 디스포저를 설치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불법 설치 업체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고 이를 사용하는 가정도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고 강조했다.
환경의식 후퇴 vs 기술력 충분...세종시 등 전국 10%선 허용 전망디스포저를 수입·생산·판매하는 업체는 국내에 약 50개 정도가 있다. 이 가운데 40개 안팎의 업체 제품이 환경부 인증을 받았다. 환경부는 디스포저 설치업 등록제를 도입해 불법 설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시판 중인 디스포저의 가격은 60만 원 정도로 시범사업 지역에선 주민의 90% 이상이 디스포저 사용에 만족했다.
그러나 업체와 소비자가 서로 동의해 불법 설치하면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환경부 홍동곤 생활하수과 과장은 "불법을 가리기 위해 일반 가정의 싱크대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며 "그 대신 설치 업체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음식물 쓰레기를 자원화 하는 시설이 부족하다보니 디스포저의 허용은 현재 생활과 환경을 보다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환경부가 내놓은 디스포저 허용 방침에 대한 반대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다.
반대 측 전문가들은 디스포저 사용으로 음식물쓰레기가 퇴적하면 하수관의 흐름이 정체되고 가스 폭발이 일어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재활용쓰레기의 분류 배출에 대한 의식도 후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국대 정승헌 교수는 "환경부 안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나 디스포저 사용자와 비사용자를 차별화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디스포저를 신규 개발 지역에 허용한다고 하는데 정작 수요는 대도시 고층아파트에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수 있고 불법 설치가 늘어날 개연성이 높다"며 "현실적으로 단속이 불가능해 이런 지역에서는 하수관이 막히거나 가스 폭발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사무총장은 "다른 폐기물에 비해 음식물쓰레기는 분류 배출 의식이 매우 높은데 자칫 '무조건 버려도 된다'는 인식이 생길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이은영 사무총장도 "음식물쓰레기 감량은 중요하지만 정책만 갖고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며 "개별 소비자, 업체, 정부 주체들에 행동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디스포저로 인한 불법유통과 그에 따른 관리, 감시에도 막대한 비용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해 퇴비 사료 등으로 재활용하는 업체들도 반대하고 있다. 한국음식물류폐기물자원화협회 이석길 사무실장은 "디스포저를 허용하면 기존의 재활용 시설은 무용지물이 되고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실업자가 된다"며 "자원을 재활용하지 않고 버리는 것은 국가적으로 낭비"라고 말했다.
반면 찬성 측 전문가들은 현재 하수 시설과 기술력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한양대 배우근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국내 하수관로와 하수처리장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며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한 것은 과감하게 허용해야지 계속 시민들에게 불편을 감내라하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중앙대 오재일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도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디스포저를 주방용품의 하나로 여길 정도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며 "디스포저를 허용하면 주민들이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까지 법제화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올 하반기 확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법제화 후에는 디스포저를 쓸 수 있는 지역을 공고하고 지자체의 신청을 받아 최종 허가를 내리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김태환(pigletkth@onkweather.com) 기자는 온케이웨더 기자입니다. 이 뉴스는 날씨 전문 뉴스매체 <온케이웨더(www.onkweather.com)>에도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