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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에 지금의 시골마을(안성 흰돌리마을)로 이사 왔다. 봄이 되니 아내의 몸이 근질근질 해진다. 텃밭에 대한 애정이 봄과 함께 살아난다. 어디에다 밭을 얻어 텃밭을 할까. 이번 집은 지난 집과 달리 집 마당에 텃밭이 없다. 고민을 하다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여보, 우리 마당 보도블록을 일부 걷어내고 텃밭 만들까?"

"어라. 그거 좋은 생각이네."

 

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아내가 맞장구친다. 그때까지만 해도 텃밭공사에 그렇게 여러 사람이 참여 할 줄 미처 몰랐다. 쉽게 될 줄 알았다.

 

아내와 내가 일주일 전에 마당에 보도블록을 걷어냈다. 하나둘 걷어내니 흙이 드러났다. 두 평 남짓 걷어내는 데도 한참 걸렸다. 그렇게 걷어 내고 있으니 옆집 전 이장님이 한마디 했다.

 

"그거 걷어 내면, 기계로 내가 밭 갈아줄 텐 게 열심히 혀봐."

 

겨우 걷어내고 나니 약속대로 갈아준다.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해놓고 나니 마을 어르신들이 신기한 듯 다들 보고 간다. 농사 베테랑들은 농사초보자들의 낮 간지러운 움직임이 귀여우신가보다. 한마디씩 한다.

 

"밭 만든 겨? 근디, 고작 두 평 만드는 디 기계로 간 겨? 허허허."

"그러게 말여유. 우리 밭이 너무 넓어서 사람 손으로는 어림도 없시유. 하하하."

 

내 너스레에 마을 어르신들도 배꼽을 잡으신다. 그러고 일주일이 지났다. 아마도 마을 어르신들은 그랬을 게다. "저거 언제 밭을 만드는가 보자"고.

 

오늘(4일) 드디어 밭을 만들기로 했다. 보도블록만 걷어낸다고 밭이 되는 게 아니란 걸 마을 어르신들의 조언을 통해 알았다. 외부에서 흙을 가져와서 거기를 돋우어야 밭이 된다는 거다. 세상에 쉬운 일 없다는 걸 또 한 번 깨우치는 순간이다.

 

옆집 전 이장님 아들에게 부탁했다. 쾌히 승낙해준다. 그가 경운기를 가지고 우리 집으로 출동했다. 어디에서 흙을 퍼올까 서로 고민했다. 시원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앉아 계신 평상으로 가서 고민을 털어놨다.

 

"우리 집에 흙이 모자라는 디 어디 흙 퍼올 때 없시유?"

"아따. 자네 집 뒤에 흙 쌓인 거 있자녀. 그거 일부를 퍼다 쓰면 되것구먼."

 

역시 우리 마을 어르신들 짱! 어르신들은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다 보고 계셨던 거다. 우리 집 상황을 말이다. 이사 올 무렵 집 뒤에 퍼다 놓은 흙을 말하는 게다. 나는 그 흙이 모자랄 거라 판단했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충분하다고 판단하신 거다. 한 할머니가 말을 한다.

 

"근디 그 집에 누가 텃밭 가꿀 겨. 그 집 안주인은 직장 다니느라 늘 바쁘던디. 설마 자네가 하실 겨. 옛날에 장마 때 지붕이 세고, 담이 무너져도 선비는 글만 읽는다 했는디. 그 집 남정네가 누군지 몰라도 그런 스타일 아녀. 호호호"

"네 맞아유. 지가 좀 그런 스타일이죠. 그래도 아내가 부지런 혀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린 웃음바다가 된다. 복안은 섰다. 이제 실행만 남았다. 옆집 총각과 함께 뒤에 있는 흙을 삽질했다. 경운기에 퍼 올렸다.

 

"영차, 영차!"

 

옆집 총각은 평소 일하는 농촌총각이고, 난 평소 글 쓰는 샌님이다. 당연히 삽질 실력이 딸린다. 아내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옆집 총각 5삽 뜰 때, 당신은 2삽 뜨는 거 같네."

"당신은.... 아픈 델 그렇게 꼭 찔러야 하는 겨. 하하하."

 

그렇게 모두 세 경운기를 날랐다. 오랜만에 한 삽질에 땀이 비오 듯 한다. 역시 삽질은 힘들다. 그렇게 퍼내고도 흙은 남았다. 그것도 충분히. 어른들 말 들으면 자다가 떡 생긴다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었다.

 

그 총각을 보냈다. 골을 낼 차례다. 우리 마을 부녀회장님이 어느새 옆에 와 계신다.

 

"여기 몇 골을 내면 되것시유. 퇴비는 이 정도면 되것시유. 비료는유?"

 

농사에 무식한 나는 이것저것 묻는다. 부녀회장님은 "이래라 저래라" 잘도 훈수를 해주신다. 아내와 나는 "아, 네 고마워유"를 연발하며 시킨 대로(?) 열심히 밭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고 있으니 이번엔 뒷집 할머니가 오신다. 지나가다 보신 게다. 밭은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며 또 한 수를 두신다.

 

"내가 다리만 안 아프면 다 만들어 주겠는디 말여."

 

할머니는 아예 시범을 보여준다. 아내와 나는 무슨 조교 앞에 훈련병처럼 고분고분 잘 따라한다. 고랑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 치는 것까지 지도를 해주신다. 

 

"얘기 엄마는 잘 하는디, 얘기 아빠는 한참 더 배워야것구만."

 

또 내 실력이 들통 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다. 밭을 만들어 주시니 말이다. 금방 신부화장하고 나온 새색시마냥 밭이 예쁘게 만들어졌다. 아내의 얼굴이 그저 '싱글벙글'이다. 아내는 밀린 방학 숙제를 해치운 초등학생 같다.

 

그 할머니가 떠났다. 우리의 고맙다는 말을 등 뒤로 하고.

 

아내가 씨를 뿌린다. 아내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먼 곳이 아닌 집안 마당에 텃밭이 생겼다는 기쁨, 그것보다도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거기에 마음을 써 줬다는 기쁨까지. 무엇보다 멀쩡한 마당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텃밭을 만드는 걸 마을어르신들이 뭐라 하지는 않을까. 이런 아내의 걱정이 기우가 되어 더 기쁜 게다. 두 평 남짓한 텃밭을 만드는데 우리 마을 어르신들 모두(거짓말 약간 보태서)가 동참한 꼴이 되었다.

 

아내에게 말했다. "역시 시골 마을 살려면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어야 한다. 인심을 얻으니 인심을 주신다."고. 어쨌거나 정말 고마운 일이다.

 

막바지에 아내가 씨를 넣고, 나는 카메라로 '인증샷'을 찍었다. 아내는 일을 하는데, 남편이 카메라질만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옆집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또 말씀하신다.

 

"얘, 너는 지금 뭐하니?"


태그:#텃밭, #송상호목사, #송상호, #더아모의집,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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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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