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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는 1772년에 이르러서야 식용으로 공식 선언되었다. 재배품종은 무수히 많은데 철에 따라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으로 분류된다. 감자는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저장해야 하지만, 냉장고에 두면 절대 안 된다. (너무 낮은 기온은 감자의 전분을 당으로 바꾼다) 감자의 영양소(비타민 C, 비타민 B군, 칼륨, 칼슘, 철)를 최대로 유지하려면 껍질을 벗기지 말아야 한다. 감자의 귀중한 영양소는 대부분 껍질 바로 밑에 있으며, 껍질은 섬유질도 제공하기 때문이다.-<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속으로 뜨끔했다. 며칠 전에 좀 많이 구입, 손질하는 김에 모두 손질해 냉장고에 넣어둔 감자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말이다.

감자만큼은 반드시 껍질을 까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 겉표지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 겉표지
ⓒ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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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 생강, 연근, 당근, 단호박 등의 껍질에 영양소들이 많다는 것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지저분한 부분만 벗겨낸 후 껍질째 해 먹곤 했다. 음식재료로 보다는 쪄서 간식으로 먹는 고구마도 껍질째 먹으면 껍질의 영양소도 먹을 수 있고, 소화도 훨씬 잘 된다고 해서 최대한 깨끗이 쪄서 껍질째 먹곤 한다.

그러나 감자만큼은 반드시 껍질을 까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이제까지 어김없이 껍질을 까낸 후 음식을 만들거나 쪄 먹곤 했다. 그것도 껍질은 물론 감자의 살까지 훨씬 많이 벗겨져 나가버리는 감자칼로 쓱쓱 밀어서 말이다.

그런데 나만 그러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레시피들이 감자껍질에 특정 영양소가 있다는 것보단 감자 싹에 독이 있으니 도려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다가, 대부분 껍질을 벗긴 후 음식을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자가 비교적 많이 생산되는 늦봄이나 초여름에 감자를 박스째 사곤 하는데, 보관한 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싹이 나고 껍질의 색이 변하곤 해 김치냉장고를 산 이후부터는 먹고 남은 감자를 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해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놀랄밖에!

솔직히 적잖은 충격이라 검색(검색어:'감자,껍질')해 봤다. 책 속 내용이 틀릴 수도 얼마든지 있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자 껍질의 성분을 연구 보고한 전문자료들이 꽤 보인다. 암 발생을 억제한다거나 특정 암에 어떤 치유력을 발휘하는 성분이 있음을 보고한 학술자료들도 제법 보인다.

게다가 감자를 껍질째 삶은 후 껍질에 밥을 싸먹는 레시피까지 보인다. 이제까지 감자의 껍질은 당연히 벗겨 내야 한다고 알고 있었고, 때문에 나처럼 반드시 벗겨 낸 후 음식을 했다면, 게다가 맛은 좀 떨어지더라도 정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우선하는 사람이라면 껍질을 그대로 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는 감자처럼 우리가 오래전부터 먹어온 채소들(양파, 고추, 근대, 무, 콩 등)부터 우리의 밥상에서 보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외국 채소들(브로콜리,콜리플라워, 비트, 등)까지, 채소들의 역사와 제대로의 쓰임새 등을 알려주는 책이다.

여러 페이지마다 나오는 같은 채소 이야기... 그 산만함이 아쉽다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 고추 설명에서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 고추 설명에서
ⓒ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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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와 달팽이는 열광적인 맥주 음주가다. 그래서 어떤 재배자들은 잎채소들 사이에 싸구려 맥주를 담은 얕은 용기들을 묻어둔다. 탐욕스런 범인들이 마시다 빠져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오렌지색 당근은 17세기 네덜란드 묘목업자들이 애국 활동의 일환으로 육종한 것이다. 오렌지색은 독립국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이다.▲꿀에 잰 양배추는 목이 쉬거나 목소리가 안 나오는 증상을 완화시킨다.▲손에서 마늘 냄새를 없애려면 스테인레스 스틸로 된 물건으로 문지르면 된다.▲고대 그리스에서 콩은 심지어 정치에서도 사용됐다. 투표권 행사시 검은 콩은 '찬성'을 나타냈으며, 반면 하얀 콩은 '반대'를 표시했다, 고대 로마의 몇몇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콩과에서 땄는데, 키케로(병아리콩), 파비우스(파바빈), 렌툴루스(렌즈콩), 피소(완두콩) 가문들이 이에 포함된다.-<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에서

게다가 이처럼 그 채소와 관련된 세계 여러 나라의 풍습과 관련 역사, 재배방법이나 활용 요리법, 숨은 이야기 등까지 알려주고 있어서 꽤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이 독자로서 좀 아쉽다면 과일 하나를 주제로 정한 후 관련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 넣지 않고 여기저기에 흘려놓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21쪽부터 감자를 본격적으로 다루는데 감자 이야기를 한 후, '마늘에 대한 미신'과 '여름 스쿼시', '호박 씨앗'이란 소제목으로 이들 관련 이야기들을 조금씩 들려준다.

그리고 순무와 서양고추냉이, 콜라비와 양배추 편에서 각각 소제목으로 감자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다른 채소들도 마찬가지. 물론 여러 페이지마다 나오는 이야기들이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 가지 채소 이야기를 여기저기 늘어놓고 있어서, 그것도 특별한 기준이나 이유 없이 늘어놓은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좀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출판사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독자로서 좀 아쉽다.    

32~33쪽 로즈힙 편
 32~33쪽 로즈힙 편
ⓒ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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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재배되는 바나나에 사실상 씨가 없는 것은 이런 오래 잡종교배의 역사 때문인데, 주로 동남아시아, 그리고 특히 파푸아뉴기니에서 인간이 의도적으로 개입한 결과다. 바나나의 씨앗들이 과육 속의 미미한 작은 점들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야생 바나나 중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종류들은 야생답게 단단한 씨앗을 여럿 지니고 있다. 무게로 보면, 바나나 과육의 4분의 3은 물이다, 나머지는 주로 섬유질로, '줄'처럼 생긴 섬유 체관부에 둘러싸여 있고, 이는 다시 껍질과 연결되어 있다. 껍질 역시 날것으로, 혹은 익혀서 먹을 수 있다.-<세밀화로 보는 과일의 역사>에서

과일은 채소와 더불어 우리(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먹을거리이다. 어떤 과일들은 신화나 설화에도 나올 정도로 인류와 함께해온 역사가 길다. 과일이 인류에게 이런 비중인 만큼, 그 역사나 관련된 이야기들도 당연히 많을 것이다.

<세밀화로 보는 과일의 역사>(오브제 펴냄)은 복숭아나 수박, 사과, 자두 등처럼 우리가 오래전부터 먹어와 외국 과일이라는 생각을 못할 정도로 친숙한 과일부터 국제교역이 활발해지고 재배법이 발달하면서 흔해진 오렌지와 바나나, 키위, 멜론 그리고 로건베리, 브레드프루트, 잭프루트, 커런트, 로즈힙 등처럼 이름만으로 모양조차 쉽게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낯선 외국 과일 등 100여 가지 과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책이다.

가장 아름다운 책, 고급식기에서나 볼 만한 예쁜 그림 가득

<세밀화로 보는 과일의 역사> 겉표지
 <세밀화로 보는 과일의 역사> 겉표지
ⓒ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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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과일들을 인류가 언제부터 재배했고 먹기 시작했으며, 어떤 경로를 거쳐 세계 여러 나라로 퍼졌고, 몇 가지 종류가 있으며 어떤 품종들을 많이 먹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상식들은 물론 어떤 풍습이 얽혀있고 어떻게 재배하면 되는지, 어떻게 먹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 을 들려준다.

그런데 바나나의 이야기처럼 쉽게 접하지 못했던 내용이(내 기준에는) 상당한지라 우리에게 알려진 과일 이야기들은 그리 많지 않음을 <세밀화로 보는 과일의 역사>를 읽으며 자주 느끼곤 했다.

같은 저자가 쓴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앞서 소개한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와 <세밀화로 보는 과일의 역사>는 내용(주제)만 다를 뿐 형식과 글 쓴 방식 등이 모두 같다. 그 때문에 독자로서 느끼는 감동과 아쉬움도 마찬가지.

두 권 모두 18세기와 19세기 화가들의 세밀화(동판화와 석판화 등)들이 실려 있다. 액자와 같은 장식 소품이나 고급 식기나 찻잔에서 주로 봤던 그런 그림들. 이런지라 읽는 재미는 물론 보는 재미까지 남다른 책들이다. 덧붙이면, 이제까지 만났던 수많은 책 중 가장 아름다운 책을 꼽으라면 단연 이 두 권을 꼽을 정도로 예쁜 책이다.

외에도 ▲임신을 계획한 부부가 절대 먹으면 안 되는 파파야 ▲그린 올리브를 화학처리하면 블랙 올리브가 된다 ▲신종플루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과일은 ▲냉장보관 했어도 72시간 이상 지난 멜론은 먹으면 안 된다 ▲동남아 여러 지역의 호텔이나 공항, 대중교통 이용 시 절대 소지하면 안 되는 과일도 있다▲딸기와 석류에는 몇 개의 씨앗들이▲인간이 최초로 경작한 과일은 무화과▲미 해병들이 살구를 재수 없는 과일이라며 먹지 않는 이유는 등 오늘날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과일들의 역사와 얽혀있는 이야기와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정보 등 다양한 것들을 들려준다.

<엄청 큰 순무>ㅣ 어느 플랑드르 화가의 구아슈화(연대미상)
 <엄청 큰 순무>ㅣ 어느 플랑드르 화가의 구아슈화(연대미상)
ⓒ akg-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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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컬러 동판화ㅣ피에르 조제프 르두테(1759~1840)
 체리 컬러 동판화ㅣ피에르 조제프 르두테(1759~1840)
ⓒ 영국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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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목성 콩>ㅣ이른스트 베나리(1819~1893)
 <관목성 콩>ㅣ이른스트 베나리(1819~1893)
ⓒ akg-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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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 | 로레인 헤리슨 (지은이) | 정은지 (옮긴이) | 오브제(다산북스) | 2013-03-25 | 정가 13,000원
<세밀화로 보는 과일의 역사> | 마이크 다턴 (지은이) | 정은지 (옮긴이) | 오브제(다산북스) | 2013-03-25 | 정가 13,000원



세밀화로 보는 채소의 역사

로레인 해리슨 지음, 정은지 옮김, 오브제(다산북스)(2013)


태그:#채소, #과일, #감자, #바나나, #세밀 동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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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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