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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개성공단 출입제한 조치가 진행된지 3주, 가동이 중단된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입주기업은 고사 직전이라며 아우성이지만 개성공단 정상화는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남한 탓만 하는 북한이나 마냥 정상화를 외쳐대는 남한이나 모두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 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 글을 쓴 직후인 25일 통일부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장기화 사태로 인한 근로자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취한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 개최를 북한 당국에 공식 제의했다.)

관심에서 멀어진 개성공단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하고 북한노동자들을 출근시키지 않아 공장 가동이 전면중단된 가운데 9일 오후 개성공단 직원들을 태운 차량들이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고 있다.
▲ 개성공단 전면 가동중단, 귀환하는 직원들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하고 북한노동자들을 출근시키지 않아 공장 가동이 전면중단된 가운데 9일 오후 개성공단 직원들을 태운 차량들이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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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 언론들은 사건 초기 만큼 개성공단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개성공단 출입제한으로 정점을 찍었던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개성공단이 이슈의 중심에서 멀어진 탓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개성공단 소식을 단신으로 내보내는 언론들. 그나마 그들에게 개성공단과 관련된 주요 관심사는 개성공단 폐쇄가 현실화 되었을 경우 이에 따르는 경제적 파급효과 등이다. 개성공단을 그 동안 좋은 실적을 냈지만 악화된 외부환경으로 인해 폐쇄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공단 중의 하나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에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아직도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는 한반도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분단의 모순이 사회 전반을 내리누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것은 무책임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과연 개성공단을 단순히 경제적 수치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비록 일부 보수 세력들은 개성공단의 폐쇄가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이라며 차라리 잘됐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국민들에게 개성공단 폐쇄는 매우 불안한 조짐이다. 우리에게 개성공단이란 6.15 정상회담의 결과물이자 남북공존, 남북경협의 상징이다. 또한 한편으론 현재 그나마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지역질서의 결정체였던 만큼 개성공단 사태는 한반도의 안위와 관련된 구조가 예전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계속되던 북한의 불바다 운운에도 덤덤했던 여론이 개성공단 출입제한에는 크게 술렁이지 않았던가.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직관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개성공단을 경제적인 가치 이상으로 자신의 실존과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들 개개인에게 개성공단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내가 처음 개성공단의 이름을 들었던 건 2000년 여름, 군대에서였다. 당시 난 통일대교를 지나 판문점, 개성으로 뻗어있는 1번 국도의 DMZ 섹터를 지키는 수색중대원이었는데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분위기에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1년 전만 해도 연평해전 이후 곧 전쟁이 난다며 실탄에 수류탄까지 보급받은 뒤 DMZ에서 한 숨도 자지 않고 매복을 섰었는데, 이제는 대통령이 북으로 넘어간다고 아스팔트마저도 물걸레질을 했던 것이다. 수색이나 매복할 때 들어야만 했던 대북방송이 회담 이후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그 헛헛함이란.

더욱 황당한 일은 DJ가 북한을 다녀온 뒤 벌어졌다. 개성공단 조성의 일환으로 경의선 연결을 위해 1통문 주변과 녹슨 철로 주변이 모두 개발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장 몇 개월 전 새로 부임하려 했던 수색연대장이 지뢰를 밟아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던 바로 그 지역에 말이다.

'결국 정부는 DMZ에 일반 노동자 대신 군인을 투입시킬 텐데, 지뢰를 밟으면 어떻게 하지?'

이런 사병들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군대는 DMZ 수색이나 제초작업 시 지뢰를 밟아도 끄덕 없다는 텔레토비 비슷한 모양의 미국산 탐지복을 제공했지만 그 역시 해프닝으로 끝났다. 장비가 너무 덥고 무거워 지뢰탐지병이 100m도 가지 못해 뻗어버린 것이다. 결국 장비를 벗어버리고 발목지뢰는 찾을 수 없는 금속탐지기로 지뢰를 탐지해야 했던 우리들. 그런데 경의선 연결을 위해 그 넓은 지역을 모두 이와 같이 수색하라는 건가?

이후 내게 개성공단은 하나의 두려움이자 절실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개성공단을 통해 50년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감수했던 사실을 새삼 깨달았으며, 따라서 개성공단 자체가 남북 모두에게 소위 인계철선임을 절감했다. 다행히 경의선 연결 사업은 내가 제대한 이후 시작되었고, 실제 지뢰 탐지는 병사가 아닌 전차가 하게 되었지만 내게 개성공단의 함의는 여전했다. 그것은 남과 북 많은 이들의 노력이 투여된 만큼 현재의 분단구조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결정적인 상징이었으며, 냉전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인 원동력이었다.

남과 북은 개성공단을 통해 그 동안 서로 신뢰를 쌓음으로써 군사적 긴장도 이완시켰는데 이는 결국 그와 같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물론 그후 연평도 포격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현실적인 부담 외에 개성공단으로 대변되는 일말의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MB정권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개성공단이 폐쇄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는 지난 10여 년 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헛수고로 만드는 일이며, 곧 과거 냉전으로의 퇴행을 의미한다. 지난하게 걸어왔던 10년의 세월을 한 번에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 이것이 현재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개성공단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는 하나의 이유이다.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싶었던 '꿈' 좌절됐지만....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한 가운데 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사용할 자재와 연료를 실은 화물차량들이 북한측의 통행 허가에 대비해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출입사무소 차량출입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들 차량은 8시 30분경 출경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뒤 되돌아갔다.
▲ 개성공단 출입허가 기다리는 차량들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한 가운데 4일 오전 개성공단에서 사용할 자재와 연료를 실은 화물차량들이 북한측의 통행 허가에 대비해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출입사무소 차량출입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들 차량은 8시 30분경 출경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뒤 되돌아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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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성공단과 또다시 직접적으로 조우하게 된 것은 대학원 졸업과 함께 취직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대학교 졸업 후 난 군대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북한학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대학원 졸업 이후 첫 번째 목표를 개성공단 근무로 잡았다.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현실에 적용시켜 남과 북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내가 지원한 업종은 물류업이었다. 당시 물류업은 개성공단을 갈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기도 했으며, 금강산 관광으로 대표되는 관광업보다 더 큰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남북 간의 교류가 지속되는 이상 물류의 필요성은 점점 증가할 것이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부산 발 유럽 행 대륙횡단 열차도 조만간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갇힌 반도를 넘어 대륙을 향해 내달리는 꿈. 개성공단은 그 원대한 꿈의 시작이자, 그 실현 가능성의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개성공단 진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취업을 준비하던 2006년, 차기 정권으로 한나라당이 유력했던 만큼 개성공단의 확장은커녕 현상유지 혹은 축소가 예측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일자리가 없을 수밖에. 다행히 난 물류업체에 취업하여 개성공단을 가겠노라며 번쩍 손을 들었지만 결국 내가 발령받은 곳은 '북한'과 한끝 차이라는 인천 '북항'이었다. 그래, 그래도 인천은 개성과 가장 가까운 항구이니 여기서 열심히 일을 배우다 보면 또 기회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이런 나의 꿈은 2007년 MB정권의 등장과 함께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3000과 함께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남북교류마저도 퇴보했다. 일련의 총격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과 달리 개성공단은 그나마 유지되었지만 그 역시 존속을 낙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역사의 시계바늘은 분명 거슬러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2013년. MB정권이 끝나면 그나마 나아질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되었으며, 이제는 개성공단 폐쇄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언젠가 개성공단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나의 꿈이 기약 없이 연기될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개성공단의 폐쇄. 그것은 결코 눈앞의 경제적 이득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자원, 노동력이라는 도식을 떠나 개성공단의 유지는 한반도 이남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꿈과 미래와도 직결된다. 대륙으로부터 격리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언제든지 광활한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의 호연지기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직관적으로 개성공단 문제에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꿈이 거세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개성공단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지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5월로 예정되어 있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때까지 고사 직전의 개성공단이 버텨줄 지 역시 알 수 없다. 설사 개성공단이 정상화가 된다 하더라도 무너진 신뢰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기존보다 갑절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부디 정부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한반도 구성원들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


태그:#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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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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