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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6일, 전재숙씨가 용산참사 철거민 김재호씨가 지은 <꽃피는 용산>을 들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지난 1월 16일, 전재숙씨가 용산참사 철거민 김재호씨가 지은 <꽃피는 용산>을 들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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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씨는 오랜 시간동안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온 사람이라 잘 알아요. 그 순박한 사람에게 '테러리스트'라니…. 당치도 않지요. 이 책을 통해서 그 사람의, 우리들의 억울함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한 권의 책을 그러안은 전재숙씨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전씨는 '용산참사' 당시 사망한 고 이상림씨의 아내이자, 용산철거민 대책위원장으로 일하다 구속된 이충현씨의 어머니다. 지난 1월 16일, '용산참사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가 추모콘서트 '꽃피는 용산'을 연 자리였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 재개발 4구역 남일당 건물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를 벌였다. 그날 새벽, 경찰의 진압과정 중 농성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가 기억하는 '용산참사'의 대략이다.

전씨가 품에 안은 책은 <꽃피는 용산>(김재호 지음·서해문집 펴냄). 이 책을 지은 김재호씨는 '용산참사' 당시 구속됐다가 지난 10월에 가석방된 철거민이다. 추모콘서트의 이름과 동일한 책 제목은 "용산이 좋은 결말로 피어나길 바라"는 김씨의 염원이 담겼다.

딸을, 가족을 사랑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옥중 그림편지

<꽃피는 용산> 책표지.
 <꽃피는 용산> 책표지.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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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안 4년의 긴 세월 동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만화편지에 담아 세상 밖으로 보냈습니다. 너무도 억울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지난 4년 동안 세상과 고립된 또 하나의 세상이 돼 출소한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가족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과 또 딸을 사랑했던 아빠의 애절한 마음을 담아 딸아이에게 주 2~3번 보냈습니다."(<꽃피는 용산>, 책을 내면서 중)

김재호씨가 구속될 당시, 외동딸 혜연양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김씨는 가족을 향한 애틋함이 담긴 내용을 어린 딸이 끝까지 읽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 동안, 수백 통이 넘는 그림편지가 모였다. <꽃피는 용산>은 이를 묶어낸 책이다.

책은 김재호씨와 아내 심연씨의 만남에서부터, 세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우리들의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다. 삶의 터전을 성실하게 가꾸고, 외동딸의 재롱에 미소 짓는 가족의 풍경이다. 외동딸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고, 성적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위험한 밤길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재개발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뭉그러트렸다. 그래서 철거민들은 망루에 올랐다. 철거민들이 지켜내고자 한 것은 '돈의 논리'에 사그라져가는 그들 일상의 불빛이었다. 책은 독자들에게 어느새 '테러리스트'라 불리게 된 사람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근본적인 책임은 우리들의 무관심에 있는지 모른다"

"아빠는 혜연이가 말을 다 못하고 갔다 해도 얼굴 보여주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돼. 얼마나 네가 보고 싶었으면 잠깐만 널 봐도 기분이 좋았겠니…."

1월 16일, 추모콘서트 무대에 오른 김재호씨가 <꽃피는 용산>에도 실려 있는 편지 하나를 읽어 내려갔다. 곧바로 관객석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철거민, 그 유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시민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재개발을 비판하는 논리를 담아내지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는 편지인데도 그랬다. 오히려 그 단순함이 부서져버린 철거민의 삶을 사람들에게 아로새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철거민을 비롯해 길거리에서 밀려난 노점상, 농성 중인 노동자 같은 '낮은 목소리'에 무감각해져 가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들의 끌탕이 언론을 메우고 있지만, 그 익숙함만큼 수긍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이가 김재호씨처럼 평범한 일상을 가꿔나가던 사람들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꽃피는 용산>의 미덕은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짐짓 외면하거나, 잊고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멀리 떨어진 세계의 것이 아니라고 알리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그 '낮은 목소리'에 관심을 지녀야만 하는지를 공감케 한다. 잘 짜인 논리보다 강한, 가슴을 울리는 사람의 이야기로 드러낸다. 추모콘서트에 참석했던 한 관객의 "어쩌면 근본적인 책임은 우리들의 무관심에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 와 닿도록 만든다.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끝'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막바지인 1월 31일에서야, 이충현씨 등 5명의 '용산참사' 구속자에 대한 사면을 실시했다. 사면 명단에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 이른바 '비리측근'도 포함됐다. 하지만 철거민과 함께 구속된 남경남 전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이나, 정리해고에 저항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등은 빠졌다. '용산참사' 구속자를 비난 여론에 대한 방패막이로 이용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철거민을 비롯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추모콘서트를 찾았던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의 말이다. 용산참사 철거민은 사면됐지만, 정확한 원인규명이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재개발에 밀려 보금자리를 잃은 또 다른 철거민,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철탑 위에 오른 노동자, 생계의 보루마저 부서진 노점상 등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끝'이 아니다.

이번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추위와 눈이 매서웠다. 하지만 늘 그렇듯, 시간이 흐르고 봄은 찾아왔다. 하지만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겨울이 이어지고 있다. <꽃피는 용산>은 그들의 겨울을 끝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관심이라고 웅변하는 책이다. 모두가 다 함께,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꽃피는 용산>의 평범한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 때다.

덧붙이는 글 | <꽃피는 용산>(김재호 | 서해문집 | 2013.01. 1만6000원)



꽃피는 용산 - 딸에게 보낸 편지

김재호 지음, 서해문집(2013)


태그:#<꽃피는 용산>, #서평, #용산참사,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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