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국악대학에는 노래연극과라는 학과가 있다. 이 과목은 수강하는 학생이 작곡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졸업 전에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는 학과다. 한데 이 과목에 한 뮤지컬 배우가 강사로 있다. 오늘 소개하는 홍륜희 배우다. 노래하며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학생에게 강의하며, 무대에서는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일인 이역의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다.

<날아라, 박씨!>에서 홍륜희는 1막에서 무대의 애환을 연기하고 노래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무대만 신경쓰는 게 아니다. 배우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고른 연기를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연기를 맡고 있다. 한데 상당히 촉박한 동선 가운데서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 대극장 무대 위에서 다양한 배역으로 단련된 내공이 묻어나는 배우여서다. 이런 홍륜희를 대학로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홍륜희 <날아라 박씨!>의 홍륜희

▲ 홍륜희 <날아라 박씨!>의 홍륜희 ⓒ 쇼앤라이프


- 다른 뮤지컬 배우에 비해 경력이 특이하다. 바로 뮤지컬로 진출하지 않고 극단에서 활동을 했다.

"몰라서 그랬다. 알았다면 진작 오디션을 보고 뮤지컬에 진출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입단한 극단이 유씨어터다. 극단 대표가 저를 캐스팅할 때 '너는 노래는 되니까 연기랑 몸 푸는 걸 배워라'고 말씀하셔서 유씨어터에서 3년 동안 활동하다가 극단 사계로 갔다. 극단 사계를 통해 뮤지컬 <라이온 킹>에 데뷔할 수 있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을 하면서 차지연을 만났다. 극단 사계로 일본에 있을 때 차지연과 윗층과 아래층에 있었다. 차지연과는 공통점이 많다. 생일과 혈액형이 똑같다. 차지연은 무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배우다. 본인이 공연하는 날에는 공연장에 와서 워밍업을 위해 줄넘기를 20분 동안 뛴다. 무대를 위해 철저하게 워밍업을 하고 그 에너지를 무대로 발산하는 배우가 차지연이다."

- 바로 뮤지컬로 진출하지 않아서 속상하진 않았는가.

"억울한 게 없었다면 거짓말이다.(웃음) 2007년에서 2008년 동안 억울한 감정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든 건, 뮤지컬 무대에 서 본 경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좀 더 일찍 뮤지컬에 입성했더라면 앙상블을 하기 보다는 조연이나 주연을 맡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2007년 당시에 많이 했다. 하지만 역할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하지만 홍륜희에게 극단 생활은 돌아서 가는 길이 아니었다. 본인에게는 돌아서 가는 길처럼 보였겠지만 극단에서 갈고 닦은 연기 실력은 뮤지컬 무대에서 반짝반짝 드러나고 있었다.

- <날아라 박씨!>의 주인공은 꿈을 먹고 사는 캐릭터다. 홍륜희를 이끄는 꿈의 원동력이 궁금하다.

"내년에 뭘 해야지, 몇 살 때엔 어떤 배역을 해야지….하는 구체적인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꿈은 없더라도 다른 꿈이 하나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딸 뭐해' 라고 묻는다면 '우리 딸 뮤지컬 배우야'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정체성에 관한 꿈이다. 뮤지컬 배우라는 나의 정체성이 꿈을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까."

홍륜희 <날아라 박씨!>의 홍륜희

▲ 홍륜희 <날아라 박씨!>의 홍륜희 ⓒ 쇼앤라이프


- 조연 생활이 길었다. 주연을 맡고 싶은 꿈이 없었나.

"작년 9월에 주연을 맡고픈 바람이 있었다. 바른 말 잘 하기로 유명한 배우가 몇 있다. '넌 주인공을 못 맡아' 이런 직언을 날리면 '왜'라고 반문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너는 색깔 있는 조연이 되어야 해'라는 답변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반감이 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니 '할 수 있었다면 진작 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아 선생님에게 이런 말씀을 들었다. '홍륜희는 배우로 살아가는 게 너였는데 왜 쓸데없이 귀 팔랑거려 다른 거 욕심내니, 그건 너랑 안 어울려' 충격적이었다. 내가 몰랐던 나를 이렇게 보는 구나 하는 생각에 펑펑 울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인공 욕심을 내기 보다는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주연의 나래를 펼치려 기를 쓰기 보다는 저 자신이 색깔 있는 조연으로 나아가자 맘먹고 있던 차에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 그간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는데 특별하게 욕심나는 배역이 있다면.

"<몬테 크리스토>의 메르세데스 역이다. 메르세데스의 넘버는 평범한 난이도의 노래가 아니다. 부르기에 어려운 넘버라 탐이 난다. 차지연이 부른 그 톤이 욕심이 나더라. 차지연의 톤은 제겐 없는 톤이다. 그 톤으로 메르세데스의 넘버를 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두 번째로 맡아보고 싶은 이유는 여자다운 여주인공이라서다. 사랑 받는 여주인공 역을 해보고 싶다."

- 정체성이 두 개다. 하나는 무대 위 배우고 다른 하나는 강의하는 자리에 있다는 점 말이다.

"뮤지컬 오디션 현장에서 가르치는 학생과 만날 때가 있다. 그네들도 뮤지컬에 발탁되고 싶어서 오디션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게다. 그리고 강의실에서는 선생님이지만 밖에 나가서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혼난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내 정체성을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나는 배우다. 선생님 이전에 배우다' 이 표현은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역할보다 배우라는 정체성이 나에게 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일주일 전에 했던 과제를 학생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하면 '했던 이야기 또 하게 만들지 말라'고 따끔하게 말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밖에 나가서 배울 것을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빠릿빠릿하게 배우도록 만들기 위한 사랑의 질책이다. '내가 하는 걸 가르치자'가 강의의 자우명이다. 말한 것을 내가 실행하고 가르치는 게 중요하지, 내가 실행하지 않는 걸 강의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홍륜희 <날아라 박씨!>의 홍륜희

▲ 홍륜희 <날아라 박씨!>의 홍륜희 ⓒ 쇼앤라이프



홍륜희 날아라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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