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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내건 3.1절 태극기
 우리집에 내건 3.1절 태극기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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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94주년 3.1절이다. 한창 꿈나라 여행 중인 6학년 손자 녀석을 깨웠다. "도영아! 오늘이 3.1절인데 태극기 달아야지"라고 말하면 '네, 할아버지'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녀석은 "할아버지가 다시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나, 참 기가 막혀... 요즘 세상 '핼애비' 노릇 해 먹기 정말 어렵네요. 그 옛날 우리 어려서는 부모님께서 한마디하면 감히 어딜 군소리할 수 있단 말인가? 좋든 싫든 '예 알았습니다'하고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이 도리인데, 이 녀석은 내가 제 아비보다 한 계급 높은 할아버지가 태극기 달라는데 '토'를 단다.

"이 녀석아 할아버지가 태극기 다는 것이 힘들어 안 달았겠느냐?" 우리 집에 하나뿐인 손자 너에게 '태극기의 소중함과 3.1절'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며 태극기 달려한 것인데... 하기 싫은 일을 할아버지가 시키니 마지못해 하려다 그만 할머니가 겨우내 고이고이 키워낸 예쁜 봄꽃 화분을 깨고 말았다.

휘날리는 태극기
 휘날리는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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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역광에 비친 태극기 모습
 오후 역광에 비친 태극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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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룻마닥은 물론 베란다 창틀에 온통 화분 깨진 흙으로 난장판이 되었으니 할머니 들어오기 전 사태수습을 하려면 할아버지 개고생은 받아놓은 당상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침 할머니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계셨으면 어휴 상상하기도 싫다. 하여간 할아버지 잔소리 몇 마디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으니, 손자 녀석 오늘 운수대통한 날이다.

그렇게 사고 친 손자 녀석은 제가 저지른 죄가 있으니... 깨진 화분 뒤처리하는 할아버지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난 내친김에 겨우내 꽁꽁 닫아두었던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집안 공기도 환기를 시키고 대청소 하는데 세상에 오늘이 분명히 '3.1절'인데, 150세대 아파트에 태극기 단 집은 고작 너덧 집이 채 안 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국민의식이 지나치게 '편의 위주 간소화'를 선호하는 바람에 오늘같이 중요한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안 달고 경시하는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아마 많은 국민이 3.1절 의미엔 관심 없고, 3.1절이 휴일인 것에만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이른 아침 우리집에 내건 태극기 쓸쓸히 외로운 모습이다.
 이른 아침 우리집에 내건 태극기 쓸쓸히 외로운 모습이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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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가 바람에 펄러깁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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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웃기는 일은 3.1절 태극기 달다 본의 아니게 아침들이 대형 사고를 친 손자 녀석은 '호랑이 할아버지'께 한바탕 된통 호되게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순순히 그냥 넘어가는 것이 불안했던지 평소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공부해라.' 할 땐 온갖 핑계를 다 대며 '요리조리 빼기 적'거리며 딴전을 부리던 녀석이 할아버지 대청소 2시간 내내 군소리 없이 자리 지키며 문제집을 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침 운동 나갔다 귀가한 도영 할머니는 화분 깬 것은 까마득히 모르고 뜻밖에 남편은 집안 대청소를 하고 있고, 손자 녀석은 공부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는지... '오늘 점심은 외식합시다.' 하더니 식구들을 데리고 소문난 칼잡이(갈 국수 +수제비)를 한 그릇씩 사 주었다.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길에 손자 녀석이 사고 친 화분 이야기를 했더니 뒤늦게 야단도 치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표정이 깨가 쏟아지도록 재미있다.

▲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그날까지 제 94주년 3.1절을 맞아 올해 6학년 손자 아이와 태극기 달며 생긴 이야기를 기사로 썼습니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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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태극기, #3.1절, #대한민국,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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