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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곰세(고갯마루에 선 곰 세마리)는 청소년을 키우는 세 명의 엄마들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 누군가에게 물 한모금 건네고 서로 길을 물어 보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고곰세의 좌충우돌 인터뷰'는 청소년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심한 40대 엄마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학력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년과 대학, 꿈과 일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지금 하고 있는 세금 관련 업무는 향후 사업가가 되려는 그의 꿈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세금 관련 업무는 향후 사업가가 되려는 그의 꿈에 도움이 될 것이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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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빌 게이츠는 벤처 사기꾼, 스티브 잡스는 중국산 MP3 수입상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유머가 수년 전에 있었다. 이 유머와 비슷한 동영상에서 앞치마를 두른 엄마들은 게임을 좋아하는 빌 게이츠의 컴퓨터를 내다버리고, 대학을 자퇴하는 스티브 잡스의 뒤통수를 때리고 피카소에게는 그리고 싶은 추상화 대신 정물화를 그리라고 강요한다.

엄마들은 왜 그럴까? 나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은 자식들이 대학 나오고 직장에 취업해서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은 불확실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고 말하는 젊은이, 옥은찬씨가 있다.

545일 세계여행 후 대학 대신 직장에 간 이유

옥은찬씨는 온 가족이 직장과 학교를 그만두고 545일 동안 배낭을 메고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 옥패밀리의 막내이다. 또 3월이면 대학 새내기가 되는 또래와 달리 3년차 직장인이기도 하다. 그는 1년 반 동안 가족들과 세계여행을 하였다. 현재의 교육제도에서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한 부모의 제안으로 1년여 동안 준비를 하고 2008년 9월에 출발해서 2010년 2월에 돌아왔다. 17살이 되던 해에 돌아온 그는 남들처럼 다시 학생이 될 수 있었지만 일을 먼저 하기로 했다. 일하면서 기술과 감각을 터득한 다음에 학문적 지식이 필요하면 대학공부를 하겠단다.

학벌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떤 꿈을 가지고 있어서 일부터 해보고 나서 대학을 가겠다고 하는 것일까?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고 싶어요. 여행을 하면서 본 남미와 아프리카는 우리나라의 과거, 유럽과 미국은 우리나라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런 차이를 통해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함께 여행을 한 형과 누나와 달리 저는 돈의 흐름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부모님도 잘 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옥은찬씨는 돈에 관심이 많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버지께 돈을 달러로 바꿔놓으면 환율이 변동되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가족의 여행 경비는 예상보다 3000만 원이나 더 들었다. 여행 중에도 숙소를 정하거나 시장을 볼 때 그는 유난히 비용과 효율성을 꼼꼼하게 따지는 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페루 여행 중에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자전거를 처음 샀던 가격을 그대로 받고 시골마을에 되판 적이 있는 그를 협상의 달인이라고 한 어머니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가족과 온갖 이야기를 다 했어요. 다양한 경험도 했고요. 그러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고 꿈을 꾸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목표도 세웠어요."

검정고시를 본 뒤 입사한 세무회계사무소

이승재 팀장은 많은 부모들이 옥은찬씨를 보면서 무조건 대학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바꾸기를 기대했다.
 이승재 팀장은 많은 부모들이 옥은찬씨를 보면서 무조건 대학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바꾸기를 기대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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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은찬씨는 귀국 후 검정고시를 보고 부산 청년 뉴스타트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공부를 하였다. 세금 관련 업무를 알고 있으면 사업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세무회계관련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딴 뒤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이 무관이라고 한 세무회계사무소 40여 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이 온 것은 지금 다니고 있는 곳, 딱 한 곳이었다.

세계여행,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사실과 취득한 자격증이 이력서에 쓴 내용의 전부였다. 졸업장도 없는 미성년자가 면접을 보고 취업을 했다는 것은 실력보다는 행운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는 짓궂은 질문에 일손이 많이 부족해서 입사할 수 있었다면서 웃었다.

면접관이었던 이승재 팀장은 옥은찬씨와 같은 인재를 만난 회사가 도리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면접 당시 그가 보여준 책임감과 긍정적이고 예의바른 성격이 아주 인상 깊었다고 한다. 졸업장보다는 가능성을 믿고 노원구의 한 세무회계사무소는 그를 직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옥은찬 주임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요. 돈을 다루는 일에 꼭 필요한 덕목이죠. 게다가 남들과 소통할 줄 알고 순발력도 있어요. 옥 주임을 보면서 무조건 대학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으면 해요."

부족한 기술은 일을 하면서 배우면 되기 때문에 인성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회사는 어린 직원을 받아들였고 옥은찬씨는 열심히 그리고 다른 직원들과 어울려 신나게 일하고 있다. 대표자 이름을 사명으로 쓰는 일반적인 세무회계사무소와 달리 회사 이름에서부터 진취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회사는 남과 다른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옥은찬씨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군대, 패션, 연애 등등 고민은 친구들과 똑같아요"

일할 때는 모르지만 예쁘게 꾸며진 그의 키보드를 보면 스무살 그의 나이가 실감난다.
 일할 때는 모르지만 예쁘게 꾸며진 그의 키보드를 보면 스무살 그의 나이가 실감난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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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먼저 선택했지만 공부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요즘 일하면서 영어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물건을 사는 영어는 아주 쉬워요. this, this 몇 번만 하면 다 되거든요. 그런데 돈을 버는 영어는 아주 잘해야 해요. 고객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게 하려면 공감하고 유대감을 형성해야 하는데 말을 더듬거리면 아무래도 힘들죠. 그러니 일단 말을 잘해야죠."

옥은찬씨는 부모님을 졸라서 여행 중에 스페인어를 배웠다. 자원과 환경이 풍부한 남미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페인어를 배워두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배웠다. 부모님은 스페인어 공부를 하라고 시키지 않았고 세무회계와 영어공부도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하는 공부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시켜서 하는 공부와 다르게 알아서 착착 하게 되었다.

"가족 여행도 처음에는 반대할 정도로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공부는 잘하지도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제 꿈을 위해서 하니까 공부가 지겹고 힘들어도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철이 들대로 든 그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회사 근처에 혼자 살고 있다. 워낙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해서 불편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월급은 어머니께 통째로 맡기고 용돈을 받아쓴다는 그가 비로소 스무 살 제 나이처럼 보였다. 게다가 얼마 전 받은 신체검사 통지서 때문에 입대가 가장 고민이라는 그를 보니 영락없는 대한민국 보통의 젊은이다. 연애도 하고 멋진 옷을 보면 사고 싶고 홍대 클럽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그는 또래와 별다르지 않다. 친구가 없을 것 같은 예상과 달리 또래 친구도 많다.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면 어릴 때 같이 놀았던 친구들을 꼭 만나서 놀고 온다.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친구들이 수학여행 다녀온 사진, 체육 대회 사진 등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어요. 가끔씩 일이 너무 힘들면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에 후회를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거죠. 꿈을 이루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친구들은 친구들의 길이 있는 거고 제가 가는 길이 남들과 똑같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가족 여행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이의 꿈을 찾기 위해서 엄마인 내가 세계 여행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일을 해줘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가 대학 졸업장에 대한 집착과 편견을 버리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와 기업에서 고졸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IMF이후 처음으로 고졸채용을 확대했다는 금융권, 응시자들의 실력이 뛰어나서 예상 채용 인원보다 100명을 더 채용한 삼성, 고졸로 입사해도 사내대학 양성교육을 거치면 대졸자와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는 대우조선해양 등등 최근에는 고졸 채용에 대한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기사 제목만 들으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특목고 학생과 일반고에서 전교 1~2등을 하는 학생들이 대거 지원했거나 지원자들의 평균 수준이 전문대학 졸업자 수준은 되었다는 내용을 보면 기가 꺾인다.

옥은찬씨를 만나기 전에도 편견은 있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당당하게 걷고 있는 이 청년은 얼마나 잘난 사람일까? 학교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니 오죽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보통의 청년이었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일까? 가족의 격려와 여행, 옥은찬씨 본인의 확고한 삶의 계획과 어린 직원의 가능성을 믿고 받아 준 회사가 큰 역할을 했다.

꿈과 삶의 방향이 확실하면 남들처럼 대학 나오고 취업하지 않고 일부터 해보고 필요하면 대학을 가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면 학력에 상관없이 일할 곳이 많다면 남들처럼 대학에 굳이 가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닭과 달걀의 문제와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2년 2월 23일과 2013년 2월 20일, 두 번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태그:#고곰세, #옥은찬, #고졸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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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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