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꼭 12년 전이다. 제자의 소개로 만난 아내와 결혼하면서 혼인서약과 함께 여러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게 있다. 부부교사로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승진에 뜻을 두지 않고 '평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겠다는 다짐이었다. 일단 교사가 승진을 염두에 두는 순간 아이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마음가짐과 교사로서의 열정이 없었다면 '중매쟁이' 제자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 지금도 확신한다. 그를 서로 각각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을 내리 가르친 인연으로 부부가 되었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적어도 아이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교사가 되리라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곤 한다.

갑자기 우리 부부의 케케묵은 옛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충남을 비롯해, 인천, 경남 등 전국 곳곳에서 교육계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어서다. 심지어 교육감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다는 충격적인 소식에도 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시험문제 유출과 같은 위법 행위로 물의가 됐을 뿐, 승진을 위한 비리가 어디 그곳뿐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학교마다 승진에 목 맨 교사들이 적지 않다.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되기 위해, 카드 포인트 적립하듯 승진 점수에 연연하고, 근무 평정을 잘 받기 위해 교장에게 '충복'을 자처하는 교사들이 정말 많다. 아이들이 예쁘고 가르치는 일이 좋아 교직을 선택했을 텐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너도 나도 아이들이 있는 교실을 뛰쳐나가지 못해 안달이다.

지역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까지 비리에 연루된 건, 그만큼 승진에 대한 욕구, 곧 장학사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교육계의 '꽃'이라고 할 만큼 장학사는 엄청난 특혜를 누려왔다. 장학사가 되어 교육청에서 몇 년간 '의무 복무'하면 곧장 일선 학교의 교감으로 영전하게 된다. 학교마다 교장과 교감이 각각 한 명씩이니 다음 코스가 바로 교장인 것은 불문가지다.

많은 교사들이 장학사를 꿈꾸는 건 그래서다. 꼬박꼬박 점수를 쌓아 천신만고 끝에 교감으로 승진하는 경우는 대개 빨라야 40대 후반이다. 거기에 비하면 장학사 시험은 가히 '로또'다. 일찌감치 30대 중반에 장학사로 승진하는 교사도 더러 있다. '포인트'를 쌓든, '로또'를 긁든 그 종착역은 교감과 교장이다. 그들이 즐겨 쓰는 '전문직'이라는 용어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교사가 '전문직'으로 갈아타려는 진짜 이유는 뭘까

솔직히 말하자. 교사가 '전문직'으로 갈아타려는 진짜 이유가 뭘까. 금전적인 인센티브야 그렇다 치자. 그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장학사님'으로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하물며 선생님이라는 호칭 앞에 '교감'이나 '교장'이라는 두 글자가 덧붙여진다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흔한 말로 명예욕이다. 그러나 그것까지는 사회 통념상 수긍할 수 있다.

문제는 교실에서 아이들 만나기가 버거워, 곧 수업하기가 힘들어 전문직으로 '도피'하려는 교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교감이나 교장도 평교사와 마찬가지로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는 학교를 왜 우리는 상상조차 못할까. 그들은 교사들의 수업을 지도, 감독, 평가할 뿐 평생 수업을 하지 않는다. 대놓고 표현하진 않지만, 그들에게 이만한 혜택은 찾기 힘들다.

모름지기 그들이 교육을 연구하고 수업을 지원하는 전문가라고 자처한다면, 그들의 명령에 따라 교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지도하고 감독할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곧 교사로서, 자신들의 노하우를 쏟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승진 자체가 목적일 때, 그 어떤 노력이든 '반교육적'일 수밖에 없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린다.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할라치면 그 날은 어김없이 대청소 날이었고, 교사들은 교무실에 도열하듯 모여 '귀한 손님'을 맞이했다. 어린 마음에 장학사는 교장과 도 맞먹는 높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을 뿐, 정작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와서 교장실에서 차 마시고, 밖에 나가서 함께 식사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졌을까.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마다 순회하는 건 예전과 다를 바 없다. 대개 교육청의 시책 사업이 무엇이고 사안에 따라 어떤 서류를 챙겨야 하는지 알려주고 돌아간다. 수업발표대회 등에 참석해서는 평가 차원에서 다양한 수업 이론과 방법을 소개해주곤 하는데, 실효성은 거의 없다. 정작 자신들도 교사 시절 시행해본 적이 없는 '이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서, 예나 지금이나 '전문직'들이 꾸준히 늘어났지만, 그들은 학교 현장의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름만 번듯할 뿐 교육적으론 '존재감'이 없다. 장학사라고 하면, 한때 그들의 동료였던 교사들조차 그저 교육청으로 출퇴근하며 공문 내리고 서류 수합하고 여기저기 출장 다니는 행정직원 정도로만 여기고 있을 따름이다.

부디 오해마시라. 오직 승진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공교육 붕괴의 책임을 물으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오매불망 꿈꿔온 '장학사'라는 자리가 그 제도의 취지야 어떻든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수많은 교사들의 자존감을 허물어뜨리고 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전문직'이란 이름 다시금 떠올려 보니... 진정 교육이 살려면?

얼마 전 교육청에서 실시된 연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관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의 업무 담당 교사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짧은 국민의례 직후 진행을 맡은 장학사는 곧장 연수를 시작하지 않고 참석한 '내빈'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는 관행적인 절차다보니 별 생각이 없이 박수를 쳤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가 말한 '내빈'이 누굴 가리키는 말일까. 수업시간을 어렵사리 바꾸고 시간에 맞춰 멀리서 찾아온 수많은 교사들이 손님이지, 국장, 과장, 장학관, 장학사로 이어지는 교육청 내 '벼슬아치'들에게 굳이 박수를 보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더욱이 그들을 소개하면서 이름과 직급 앞에 붙이는 '수식어'들은 낯 뜨겁기까지 했다.

강의를 하는 사람도 현직 교사이거나 다른 기관에서 온 강사이니, 박수를 쳐도 교육청의 '전문직'이 아닌 그들에게 쳐줘야 맞다. '바쁜 와중에도 자리를 빛내기 위해' 참석한 그들은 많은 교사들 앞에서 얼굴 한 번 비추더니 이내 자리를 떴다. 비록 잠깐 동안이었지만, 직급 순서대로 앉았다가 그 순서대로 소개받고 나가는 모습에서 순간 권위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겼다.

비서인 양 굽실거리며 '상관'들을 뒤따르는 장학사의 모습을 보노라니 '전문직'이라는 이름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됐다. 고작 교육청에 들어와 저런 일 하려고 장학사 됐나 싶었다. 많은 교사들의 선망의 대상인 장학사가 무척 초라해 보였다고 했더니, 아내는 '몇 년 만 고생하면 아랫사람들로부터 저런 대접을 받을 텐데 뭐가 불쌍하냐'고 되레 반문했다.

평교사로 남겠다는 서약을 한 초임 시절이나 15년이 지난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생각이 있다.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서열'이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 바로 그것이다. 교사와 전문직의 구분은 마치 절의 이판승과 사판승처럼 담당 분야가 다를 뿐, 서로 협력하고 정기적으로 자리를 바꿔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단 장학사만 되면 교감과 교장 자리가 보장되고 수업으로부터 '해방'됐다고 기뻐하는 현실은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 장학사로 일하며 전문적인 식견을 갖게 됐다면 이내 교실로 가서 아이들과 나눌 수 있어야만 비로소 '전문직'으로서 의미가 있다. 나아가 교장과 교감도 학교 경영자로서 일한 경험을 살린다면 수업을 더욱 내실 있게 꾸릴 수 있을 것이다.

교사가 자기 전공 교과목을 가르치며 각종 행정업무를 담당하듯, 교장과 교감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학교 경영자라는 게 자기의 교육철학을 교사와 학생들에게 관철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그들의 뜻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역할일진대, 소통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마치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승진의 정점에서 군림하려는 기존의 자세로는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킬 뿐이다.

장학사도, 교감도, 교장도, 심지어 교육감까지도 넓은 범주에서는 엄연히 교사다. 아이들과 직접 부대낄 마음이 없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옳다. 아이들 곁에서 늘 함께 하려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교육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들 모두의 '존재 이유' 아닌가.

진정 교육이 살려면, 매일 아이들을 만나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는 교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승진에 눈이 멀어 장학사가 되겠다고 곁눈질하기보다, 교실과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 보람을 찾고 동료교사들과 더불어 교육을 고민하는 열정적인 교사들이 인정받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명함에 장학사나 교감, 교장을 새기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은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다.


태그:#충남 교육감, #장학사 제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