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 목 안에 혹이 있단 말입니까?"
육군 현역으로 복무하던 2007년, 병장이 되어 말년이 가까워진 내게 군의관은 충격적인 말을 했다. 목 안에 무언가 있는 듯한 답답한 느낌, 그리고 잦은 기침 때문에 고통받던 나는 군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진료를 보던 군의관은 내시경으로 나의 목을 들여다보고, '후두개 낭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후두개라는 생소한 기관. 혀의 뿌리 너머에 있는 신체부위로, 음식물을 먹다가 숨쉬는 통로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군의관은 내게 "그 쪽에 지름 1cm 내외의 종양이 보인다. 이물감이 느껴지는 원인이니 수술로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매우 당황했다. 이제 두달 남짓 지나면 전역일이 다가오는데 수술이라니, 전혀 뜻하지 않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군의관이 나에게 한 말은 나를 더 당혹하게 했다.
"양성종양이라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악성종양... 그러니까, 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으니 수술과 동시에 채취한 샘플로 임상병리과에 검사를 의뢰해야겠다."수술하는 것도 그런데 암일지도 모른다니,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스물 셋의 젊은 나에겐 한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서둘러 수술하지 않으면 점점 더 커져서 더 불편하고 아플 것이다'라는 재촉에 나는 지시에 따라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수술 일정, 혼자 누워서 들어간 수술실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던지라 수술은 갑작스럽게 잡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병원에선 현역 장병들에게 수술이나 입원·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일체 청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군병원에 입원한 후 수술날짜를 기다리던 나를 부른 군의관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김병장, 자네가 수술받아야 할 부위는 목 안 쪽이라서 내시경과 연결된 첨단 수술도구들이 필요하다네. 그런데 내가 알아보니 전국의 어느 군병원에도 그런 장비들이 아직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야. 그래서 말인데, 이 수술은 민간병원에 의뢰를 해야겠어."엉겁결에 수술일정이 잡힌데 이어, 군병원에는 장비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군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분당서울대병원에 진료의뢰서를 들고 가 의사를 만나고, 최대한 이른 시일로 수술일정을 잡았다.
전혀 예정에 없던 병원진료였고, 갑자기 잡힌 수술일정에 지방에 계시던 부모님은 미처 올라오실 수도 없었다. 나는 혼자서 간이침대 위에 누워 수술을 기다려야 했다.
수술을 위해 하의만 입은 상태로 이동식 침대 위에 누워 있는 20분여의 짧은 시간이 내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혼자였기에 더욱 그랬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이었기에 사망을 비롯한 각종 위험을 언급한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때도 내 손을 잡으며 괜찮을테니 안심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부끄럽게도, 누워있는 내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생애 처음으로 겪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 혼자라는 외로움이 뒤섞여 자극된 눈물샘은 멈추질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맞았던 링거에 투여된 소량의 마취제 때문에 수술이 시작되기도 전에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
수술이 끝난 뒤 "물 마시지도, 밥 먹지도, 말하지도 말라"얼마나 잔 걸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회복실이었다. 몽롱한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나에게 간호사는 "자꾸 주무시기만 하면 안돼요. 병실로 이동하려면 완전히 깨어나셔야 해요. 정신 차리세요"하고 날 깨웠다.
'다행히 잘 끝났나 보다'하고 안심했다. 침대에 누운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에서 막 깨어난 내 머릿속만큼 새하얀 천장이었다. 아무 무늬없는 흰 천장을 보고 있으니 아무 생각도 안 났다.
하지만 내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수술 전날부터 전신마취를 위해 금식이 내려졌기에 저녁부터 음식은 물론, 물조차 마시지 않은 내게 또 다시 '금식령'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수술이 끝나면, 몇시간 뒤에 곧바로 음식을 섭취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환자분 같은 경우에는 수술부위가 목 안쪽입니다. 봉합된 곳이 손상될 수가 있어요."날벼락이었다. 전날 저녁부터 쫄쫄 굶어야 했기에 내 배는 이미 잔뜩 굶주린 상태였다. 심지어 물조차 마실 수 없었기에 몹시 목이 말랐다. 하지만 의사는 내게 최소한 18시간 이상은 어떤 음식도 먹지 말아야 하고,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심지어 내게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기에, 나는 종이에 할 말을 적어서 대답해야 했다.
병실로 돌아온 후 마취가 풀리면서 점차 수술받은 부위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참기 힘든 갈증과 배고픔이었다. 간호사를 호출해 "목 말라 미치겠어요. 물이라도 좀 마시게 해주세요"라고 적은 메모지를 건네며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하지만 절대 안됩니다"였다.
필요한 영양분과 수분은 팔에 꽂은 튜브와 연결된 링거액을 통해 공급되고 있지만, 내 갈증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내가 딱해 보였는지 간호사는 물에 적신 거즈로 입안을 가볍게 적시는 것만 허락해주었다. 체내의 수분이 부족해져서일까. 수술부위가 아파오고 배고픔에 괴로웠지만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질 않았다. 시간이 서둘러 흘러주기만을 바라며 보낸 길고 긴 하루였다.
메모지와 함께한 경례, 잊지 못할 수술의 기억더욱 당황스러운 상황은 퇴원한 이후였다. 회복을 위한 기간동안은 군병원에 복귀해서 지내야 했는데, 그곳도 군시설이었기에 당연히 정문의 위병소에서부터 병실까지 '경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고, 왼손에는 '충성, 병장 김준수입니다! 현재 성대에 가까운 부위를 수술받아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라고 적은 메모지를 들어 보였다. 나를 마주한 간부들은 대부분 피식 웃으면서 경례를 받아주거나 "뭐냐, 너?"하며 당황하는 반응이었다.
군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며 3일 정도 지나자, 임상병리과에 의뢰했던 검사결과가 나왔다. 잔뜩 긴장한 나를 진료의자에 앉히고 군의관은 검사결과지를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의 순간만큼이나 몸이 떨렸다.
"다행이야. 악성종양이 아닌 것으로 결과가 나왔어."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잔뜩 움츠린 몸을 다시 편하게 늘어뜨렸다. 천만다행으로 내 목에 자리잡고 있던 혹덩어리가 암이 아니라고 판명난 것이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받은 전신마취 수술, 하루 가까이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하면서 보낸 시간은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오고가는 인사를 비롯한 말 한마디, 끼니마다 먹던 밥, 언제나 마시던 시원한 물 한 잔처럼 우리가 평소에 당연스럽게 누리던 것들 말이다. 목 안의 종양을 제거하면서, 나는 건강을 되찾고 깨달음도 함께 얻었다.
앞으로는 나를 포함한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아파서 수술실에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걱정이나 두려움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항상 건강해야 함을 이제는 결코 잊지 않을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수술 이야기' 응모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