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가기 위해 배를 탔던 돌산의 신기항입니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가기 위해 배를 탔던 돌산의 신기항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은 항상 즐겁습니다. 이 만남은 주로 예고 없이 이뤄집니다. 친구끼리 날짜 잡고 만난다는 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번개는 대개 문자로 이뤄집니다.

"벗, 막걸리 한 잔 허까?"

여기에 호응이 있으면 만나는 거죠. 지난 주말, 친구들끼리 다녀온 금오도 안도 여행도 번개로 이뤄졌습니다. 글쎄,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했더니 여수 금오도 비렁길 산행과 안도 낚시를 제안하더군요. 아주 당기는 제안이었습니다. 아내에게 함께 가자 권했더니 그냥 친구들과 다녀오라더군요.

지난 12일 아침, 여수시 남면 금오도행 철부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객실 내부는 다양한 광경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끼리 둘러 앉아 김밥·과일·캔맥주 등을 나눠먹는 모습, 잠자는 사람·휴대전화 게임을 즐기는 이 등 다양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저희 친구들은 누워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이름 하여, 중년 남자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힐링 수다'였습니다. 수다는 자식에서부터 아내·교육·아버지와 아들 등등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중년 남자들의 수다 속으로 가 볼까요.

"벌써부터 고3 행세야... 다들 긴장하고 있어"

지난 해 10월, 비렁길 행에서 친구 아내가 직접 쌌다던 김밥입니다. 이번에는 냉전(?) 중이라 요게 생략되었더군요. 아쉬웠습니다.
 지난 해 10월, 비렁길 행에서 친구 아내가 직접 쌌다던 김밥입니다. 이번에는 냉전(?) 중이라 요게 생략되었더군요. 아쉬웠습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야, 이번에는 너 각시표 김밥 안 싸왔어?"

그러니까, 지난해 10월 금오도 행에서는 친구 아내가 싸 준 김밥이 완전 대박이었습니다. 중년 남편이 가족 버리고, 혼자 여행가는 걸 허락해 준 것도 어딥니까. 거기에 밥 타령하면 김밥 사가라며 구박하기 일쑤입니다. 알아서 김밥 사가는 게 최선입니다. 그런데 친구 아내가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손수 싸줬으니 다른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습니다.

"이번에는 각시가 남편 밉다고 김밥 안 싸줬구나?"
"늙어가는 남편, 여행간다고 김밥 싸 주는 각시가 아직까지 있었어?"
"우리 아내는 김밥 싸는 걸 좋아하거든."
"말도 마라. 각시하고 싸워 냉전 중이래. 그 덕에 김밥만 사라졌어."
"아직도 겁대가리 없이, 아내랑 싸우는 사람이 있네. 빨리 풀어."
"아내랑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애들 땜에."

하긴, 아내와 둘이라면 무슨 부부싸움 거리가 있겠습니다. 부부가 사랑하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에. 아이들이 있으니 이래저래 부딪치는 게지요. 이건 삶의 특권인 셈입니다.

"너 딸은 올해 고3이지?"
"응. 벌써부터 고3 행세야. 다들 긴장하고 있어."
"벌써, 고3이야? 너 올 한해 숨죽이며 살아야겠구먼. 축하한다."
"외지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딸이 집에 오면 꼼짝도 않고, 잠만 자. 각시는 고생하는 딸 수발한다고 옆에 붙어 있고. 애가 타는 가봐."
"그래도 공부 잘하니 얼마나 좋아. 공부 잘하는 게 부모에겐 자랑이지."
"우린 완전 방목인데, 공부 잘하는 딸 둔 네가 부럽다."

이 정도면 아줌마들의 시시콜콜 수다를 넘어선 아저씨들의 수다입니다. 수다는 어느 새 각시와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옮겨가는 중입니다.

"남자들은 돈 버는 기계... 가족에게 잘 해야 해"

비렁길에 함께 나섰던 고등학교 친구들입니다. 요 친구들과 배 객실에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비렁길에 함께 나섰던 고등학교 친구들입니다. 요 친구들과 배 객실에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이 친구 집에는 TV가 아예 없어. 각시가 TV를 없앴대."
"와, 대단하다. 왜 없앴는데?"
"TV가 있으면 TV만 보니 그렇지. TV 볼 시간에 책 보라는 거지."
"그게 가능하구나. 너희 부부도 독종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크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되남?"
"그것도 한 때다. 아이들에게 사랑 줄 수 있을 때 많이 줘."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도 때가 있다는 말에 모두들 공감이었습니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품을 떠나면 자식으로 여기기보다, 한 인간으로 바라 봐야 실망이 덜하다는 이치였습니다. 다 큰 자식을 떠나보내지 않고 계속 보듬고 있는 건 욕심이라는 거죠.

"올 겨울에는 아들하고 지리산 둘렛길도 걷고, 스키장도 가야겠어."
"잘 생각했다. 아빠가 아들에게 뭐 줄 게 있겠어. 돈 줘봐야 허사야. 부모 자식 간에 남는 건 추억이 최고야."
"아들이 스키 한 번도 안 타봤는데 잘 탈까?"
"아이들은 금방 배워. 아들 걱정 말고, 나이 든 너나 조심해라. 나이 먹은 사람들 스키 배우다가 팔 부러지고, 허리 다치는 게 다반사니."
"난 집에서 왕따야. 각시가 아이들만 데리고 스키장 갔다 온대. 집 지키라는 거지."
"남자들은 돈 버는 기계야. 안 그러려면 가족에게 잘 해야 돼."

주위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일어서고 있습니다. 수다를 많이 떤 것도 아닌데 돌산 신기를 떠난 배가 벌써 금오도 여천에 도착할 폼입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어섰습니다. 삶의 굴레를 떠남은 역시 새로운 설렘입니다. 배 안에서 잠깐 친구들과의 수다는 힐링의 또 다른 수단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비렁길, #김밥, #수다, #친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