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인 김지하의 '망언'이 도가 지나쳤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동안 '진보'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그가 요즘 들어 거침없이 내뱉는 막말을 곰곰이 뜯어보면 어이가 없다. 대체 무엇이 멀쩡한 사람을 저렇게 180도로 바뀌게 만들 수 있을까. 행여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화가 치민다. 필자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 1970년대부터 그와 함께 어깨를 걸고 반독재투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싸웠던 문인들은 아예 입을 닫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문인은 "대꾸를 할 가치조차 없다"고 못 박았다. 누리꾼들도 마찬가지다. "대학 때 당신의 글을 읽고 도로 한복판에서 시위하던 친구들이 불쌍하오" "김지하가 쓴 것은 시가 아니라 패악질이 아니었을까"라며 비판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얄궂게(?) 거듭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제18대 대선 때부터다. 그는 그때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면서 문학평론가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교수를 '한류-르네상스를 가로막는 쑥부쟁이'라고 난도질했다. 리영희(2010년 12월 5일 작고) 선생에게는 "'리영희'는 과연 사상가인가? 깡통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다"고 마구 짓밟았다.
그는 지난 4일에는 대통령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 재심에서 사실상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이때에도 법정 밖에서 소감을 묻는 취재진 물음에 "'오적'사건으로 풍자시를 몇십 년을 못 쓰고, 돈도 한 푼 없이 자식들 교육도 못 시켰는데 선고유예 받아 아쉽다"며 "국가의 적절한 금전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죄를 받기 위해 재심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재심을 걸었다는 투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망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8일에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 "형편없다"는 독설을 마구 퍼부었다. 그는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시대가 달라졌는데 아직도 왕왕 대고, 내놓는 공약이나 말하는 것 좀 보시오, 그안에 뭐가 있나, 김대중·노무현뿐"이라며 형편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날 "김대중씨는 내가 끌고 나오다시피 한 사람"이라며 "그런데 북한에다가 돈 갖다 바쳐서 그 돈이 뭐가 돼 돌아오나, 폭탄이 돼 돌아온다"고 거품을 물었다. 이어 "그대로 꽁무니 따라서 쫓아간 게 노무현 아닌가"라고 비꽜다.
이 발언을 듣던 진행자가 "그렇게 (북한에) 지원을 했기 때문에 통일과 더 가까워진 부분도 있다"고 반론하자 그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어디가 가까워지나. 이 방송 빨갱이 방송이요?"안 전 후보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기대했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정치"라며 "그러면 뭐가 나와야 할 것 아닌가, 매일 떠드는 데 가만 보니 깡통"이라고 마구 깎아내렸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포근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아내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총 맞아 죽은 사람의 18년 고독은 특별할 것'이라고 했다"며 "실제로 만나서 보니 내공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시인 김지하의 이와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어찌 사람이 이리될 수 있을까"트위터리안 jsl***은 "대학 때 당신의 글을 읽고 도로 한복판에서 시위하던 친구들이 불쌍하오"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누리꾼 shri***은 "김지하의 박근혜 지지에는 우리가 몇 마디로 쉽게 가치 평가하기 어려운 시간과 경험의 무게가 실려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이 인터뷰의 끝자락에 그 낡고 흔한 '노추'란 단어를 떠올렸다, 이걸 위악으로 해석해야 하는 건가"라고 비꽜다.
또 누리꾼 perfe***은 "시인 김지하, 오늘 김현정 인터뷰를 듣고 이제 그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버렸다"며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유도, 야당을 비판하는 이유도 아무런 논거가 없다, 어찌 사람이 이리될 수 있을까, 모두 타산지석 삼을 일"이라고 평했다.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김지하는 유신 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구속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옥에 갇힌 바 있다. 그는 그 뒤 지구촌 곳곳에서 구명운동이 펼쳐지면서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그 사건 내용을 알리는 글을 썼다가 다시 옥에 갇혀 6년을 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