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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조개
 바다조개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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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머리가 없어서 어디에 잘 놀러 다니지 못하지만 가끔 옆에 사는 고마운 이웃 덕분에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11월에 충청도 보령에 있는 무창포도 그렇게 해서 갔습니다.

이웃에 사는 영수(가명)씨 부부가 문득 하루 시간을 내서 무창포로 조개를 캐러 가자고 했습니다. 밖에 나가는 것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하는 아내는 좋다고 했습니다. 사실 나는 몸살 기운도 있고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는 것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영수씨 부부와 밖에 나가는 것이고 아내가 매우 좋아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오전 6시 30분에 영수씨네 차로 떠났는데 아내는 전날부터 이것 저것 많이 준비했습니다. 조개를 담을 그릇·장갑·호미·두꺼운 옷·모자 등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준비했는데 얼굴 표정이 그렇게 행복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내가 같이 가는 것만 해도 큰일 하는 거라며 가서 열심히 많이 잡자고 했습니다.

무창포,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는 곳입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장화를 빌려 신은 뒤 우리 넷은 조개를 캐기 위해 바닥이 드러난 바닷길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와 영수씨 부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한 얼굴로 몸을 구부려 조개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영수씨도 그것에 흥미를 갖지 않으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나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는데 조금 들어가니 그도 캐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았습니다. 준비한 도구를 이용해서 그는 바위틈과 바닥을 캐면서 조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어는 덧 여자들이 캐고 있는 곳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전혀 조개 캐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고 게으른 나는 어슬렁거리며 가끔 캐는 흉내만 낼 뿐이었습니다. 거의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내가 미리 나에게 준 그물망에는 10개 정도의 조개만이 초라하게 들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그곳에 있는 모든 조개와 바지락·게 등 해산물이 씨도 남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다 캐고 나오는 사람들, 이제 막 들어가는 사람들로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나는 날이 춥기도 하고 심심해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열심히 대화를 나누며 조개를 캐는 그들을 남겨두고 먼저 나가기로 했습니다. 캐는 도구와 그물망이 담겨있는 조그만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걸어 나오는데 중간에 비교적 깨끗한 물을 모아둔 곳에서 사람들이 손을 씻기도 하고 잡아온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낙지를 맛있어 하던 그 소년

나도 잠깐 그곳에 서서 물에 손을 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도마와 초장을 갖다놓고 해산물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을 본 것은 바로 거기였습니다. 부모와 누나랑 같이 조개를 캐러 온 어린 소년이 아주머니에게 "낙지 또 먹을 수 있어요?"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그 소년을 쳐다봤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아까 맛있었나 보지? 그것 다 팔렸단다, 대신 이것 하나 먹으렴"이라며 옆 주머니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꺼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년은 넓적 인사를 하면서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 소년의 젊은 부모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들이 산 낙지를 무척 좋아한다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넉살 좋게 산 낙지를 또 찾는 소년이 퍽 특이하게 보였습니다. 그 소년은 물이 있는 곳에 가서 손을 씻었는데 우연히 나의 바구니를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조개 겨우 요만큼 잡았어요? 나는 우리 가족이랑 무지하게 많이 잡았는데."

그렇게 묻는 그에게 나는 잡는 실력도 없고 게을러서 그랬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곧 그는 부모 곁으로 갔는데 그 소년이 다시 나에게 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두 손에는 조개가 한 뭉텅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조개를 너무 조금만 잡아서 불쌍하게 보였어요. 이거 갖고 가세요."

나는 놀랐습니다. 순간 말문이 탁 막혔습니다. 그 소년은 내가 불쌍하게 보여서 자기네가 잡은 조개 가운데 일부를 꺼내 내게 갖다 준 것이었습니다. 나는 감동을 너무 받았지만 그 감정을 꾹 억누른 채 나의 그물망을 벌렸고 그는 거기에다가 그것을 넣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그 소년은 내가 거의 잡지 못한 것을 부모에게 알렸고 그 부모는 자신들이 잡은 것 중에서 일부를 꺼내서 소년에게 줘서 내게 갖다 주라고 했을 거라고요.

여하튼 나는 너무 큰 감동을 받아서 그 소년의 부모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캐서 그런지 큰 그물망 두 개에 조개가 빽빽하게 넣어져 있었습니다.

나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그 소년의 부모는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들이 와서 아저씨가 불쌍해서 조금 갖다 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아들이지만 그런 마음을 갖고 직접 몸으로 실천한 것이 대견하다고 했습니다.

나눔의 아름다움 알고 있는 그 소년

나이를 물어봤습니다. 아홉 살,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전라도 전주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 소년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기특하고 따뜻해서 그의 부모에게 몇 번이나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을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그의 부모도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봤습니다.

그곳에서 차가 있는 곳까지 이십 여 분 되는 거리를 걸어 나가면서 나의 마음은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겨우 아홉 살 소년이 남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끼고 자신의 것을 나눠줬습니다. 도대체 그 무엇이 그 소년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게 한 것일까요?

무창포의 조개잡이, 비록 나에게는 아무런 재미도 없고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무척 심심했지만 그날은 아홉 살 그 소년을 만나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날이 됐습니다. 나이는 퍽 어리지만 넓고 큰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 못지않게 뜨거운 감동을 준 아홉 살 소년이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 소년의 그 모습은 두고두고 내 머릿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태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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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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