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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시골 마을 병원에 누워

나란 사람, 겨울이면 쉽게 감기에 걸린다. 애석하게도 인생 최악의 독감을 아프리카에 있을 때 걸렸다. 생각이 짧았던 탓이다. 아프리카 땅을 밟기 전까지 그곳에 겨울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뒤늦게 현지에서 운동복 한 벌을 샀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폐렴으로 번져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런데 그곳은 말라위의 작은 시골마을인 룸피. 동양사람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아픔보다 더 힘든 것이 외로움이라 말, 그 때 절절히 느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병원에 혼자 누워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참 많이 울었다. 하지만 절망 속에 희망이 피어오르듯,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을 때 한 여인을 만났다. 그것도 동양인, 이웃나라 일본 사람을 그 작은 시골마을에서 본 것이다. 그 때가 2010년 8월, 아프리카의 겨울이 한창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저 곳에 누워서 이야기를 기록했다.
▲ 말라위 병원 저 곳에 누워서 이야기를 기록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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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미수주. 나보다 2살 많았다. 그런데 그녀, 말라위에 온 지 이미 만 2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러니까 2008년 겨울, 처음 '룸피'라는 마을에 왔던 것이다. 그럼 이 작은 동네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녀는 HIV 코디네이터, 즉 에이즈 병을 관리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즉, 일본에서 2억만 리 떨어진 마을 주민 5000도 안 되는 이곳에서 홀로 마을 사람들의 에이즈 치료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였다. 순간 남수단 톤즈에서 한 평생 봉사하며 살았던 고 이태석 신부가 생각났다.

'치툼부카' 들어는 봤니?

담담한 미소로 자신의 일상을 말해주는 그녀가 다르게 보였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광경은 따로 있었다. 거의 몸이 회복됐을 무렵, 그녀를 쫓아 마을 에이즈 환자들을 만나게 됐다. 기대대로 그녀는 환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약을 주고 건강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그녀의 입에서 듣도 보도 못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치툼부카'라는 현지어였다. 말라위 북부지방 공식 언어로 알려진 '치툼부카', 전 세계에서 약 20만 명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 희귀 언어 중 하나인 그것을 미수주씨는 아주 유창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점이 정말 놀라웠다.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그녀가 진심으로 이곳을 대하고 있구나.'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동화되기 위해 정말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미수주씨를 볼 때마다 '니아코체'라 불렀다.
▲ 룸피의 아이들 아이들은 미수주씨를 볼 때마다 '니아코체'라 불렀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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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흘을 '룸피'에 더 머물렀다. 그러면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더 발견했는데 마을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그녀를 '니아코체'라 부르며 알아봤다. 니아코체? 그녀에게 그 의미를 물었더니 부끄러운 듯 웃으며 대답하기를 현지어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솔직히 바로 이해가 가진 않았다. 물론 미수지씨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다만 동양 여인이 외지에서 봉사한다고 그런 호칭을 얻었을 거라는데 쉽게 동의할 수 없었던 거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머지않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그녀를 '아름다운 여인, 니아코체'로 부르는지'

긴 여행을 하다보면 외향적으로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다. 당시에도 그랬다. 아프리카에 있다 보니 '자연인'에 가까워졌다. 수염도 머리도 오래도록 자르지 않아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언론인 '김어준'이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런 상태로 병원에 누워 미수주씨를 만났던 거니, 몰골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다만 미수주씨와 차 한 잔을 나누며 그녀가 왜 '니아코체'로 불리는지 확실히 깨닫게 됐다. 미수주씨는 손목에 구멍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아마 한국이나 일본이었다면 부끄러워 입고 다니지 못했을 텐데. 하지만 미수주씨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니아코체'라 불리는 이유
▲ '니아코체' 미수주씨 그녀가 '니아코체'라 불리는 이유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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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비록 구멍은 났지만 이 겨울 충분히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잖아요. 이것으로도 행복해요. 사람들도 더 좋아해 주잖아요."

정말 그랬다. 그녀는 구멍 난 스웨터로도 그 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말라위 룸피 사람들은 정말로 아끼고 좋아했다. 이제 완전히 느꼈다. 그녀가 '니아코체'로 불리는 이유, 그녀의 존재만으로 말라위 룸피 사람들은 따뜻하게 '치유'받고 있었다. 폐렴으로 고생하던 나 역시 그랬고.

그래서 더욱 바람 하나가 생긴다. 이미 시간도 꽤 지났고, 몸도 2억만 리 한국땅에 떨어져 있지만 그녀의 겨울이 여전히 따뜻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 아프리카는 뜨거운 여름이지만.

덧붙이는 글 | '나의 황당 여행기' 응모글



태그:#말라위, #니아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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