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할머니 이름은 '서운'이었다. 1남 8녀 중 여덟째 딸로 태어나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전주시 교동에 사는 서운 할머니(75)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다. 기초노령연금까지 포함해 서운 할머니가 정부로부터 한 달에 받는 돈은 30만 원 가량.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당뇨·혈압약값 등을 제외하고 나면 여유있게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5년 전, '영감'이 세상을 떠난 뒤로 할머니는 혼자 살고 있다. 간혹 마실 오는 윗집 할머니를 제외하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집에서 할머니는 우두커니 앉아 하루를 보낸다. 다리가 아파 외출도 못한다. 얼마 전에는 눈이 오는 바람에 며칠째 집에만 눌러 있었다. 누군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서운 할머니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서운 할머니가 먹는 당뇨, 혈압약 봉지들. 이따금 허리가 아플 때면 진통제도 먹는다. 몸이 아픈 건 약이 어느정도 해결해주지만, 외로움과 가난은 지금껏 서운할머니를 지독하게 따라다녔다.
 서운 할머니가 먹는 당뇨, 혈압약 봉지들. 이따금 허리가 아플 때면 진통제도 먹는다. 몸이 아픈 건 약이 어느정도 해결해주지만, 외로움과 가난은 지금껏 서운할머니를 지독하게 따라다녔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할머니 집 앞. 서운 할머니 집 마루에서 바라본 풍경.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서운 할머니에게도 투표안내문이 전달됐다. 서운 할머니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떤 풍경일까?
 할머니 집 앞. 서운 할머니 집 마루에서 바라본 풍경.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서운 할머니에게도 투표안내문이 전달됐다. 서운 할머니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떤 풍경일까?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최근, 서운 할머니에게도 제18대 대통령선거 투표 안내문이 발송됐다. 그러나 할머니는 일찌감치 대통령감을 마음속으로 정해놓았다. 공약? 경력? 그런 거 잘 모른단다. 할머니께 다음 대통령에 대해 여쭤보니 할머니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눈길을 천장으로 올린다.

"나같은 늙은이가 뭘 알겄어. 공약 내놓는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자식들 장사 잘 되고, 손주들 취직 잘 되는 세상이 됐음 좋겠지 뭐. 내가 이 나이에 뭐 바라는 게 있나. 나야 이렇게 살다 그냥 가면 그만인데… 그저 우리 자식들, 젊은 사람들이 잘 살았음 좋겠지."

"여자 혼자 애들 가르칠라니까 힘들더라고... 가난이 죄지"

세상 어느 어머니가 자녀일을 걱정하지 않을까. 그러나 서운 할머니에게 자녀는 좀 더 특별하다.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운 할머니는 1937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7세에 강원도 횡성으로 시집갔다. 6남1녀를 낳았지만 막내가 4개월 되던 해,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당시 할머니 나이 38세. 자녀를 키우기 위해 도둑질 빼고 다 해봤다. '징글징글하게 고생'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할머니는 50세에 재혼을 결심한다.

"못 배운게 한이지. 큰 애들도 죄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밖에 못나왔어. 가르치고 싶어도, 먹고살기 힘든데 가르칠 수 있나. 다섯째, 여섯째 아들만큼은 고등학교까지는 가르치자 결심했지. 근데 여자 혼자 몸으로 가르칠라니까 너무 힘든 거야. 그래서 (시집)갔어. 맘에도 없는 사람한테. 애들 가르칠라고. 가난이 죄지."

혼자보다는 둘이 낫겠다 싶어 선택한 길. 그러나 재혼한 지 1년도 채 안 되어, 남편은 폐병으로 쓰러졌다. 졸지에 남편 병수발까지 할머니의 몫이 돼버렸다. 하늘도 무심했다. 다시 지긋지긋한 가난이 시작됐다. 먹고살기 빠듯한 판국에 아들들 고등학교 진학은 언감생심 꿈도 못꿨다. 남들 하는 만큼 자녀들 가르쳐서 편안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던 서운 할머니의 꿈은 그렇게도 사치스러운 것이었을까. 할머니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었다.

더욱 힘든 것은 불편해져 버린 남은 자녀들과의 관계였다. 성장한 큰 자녀들은 어머니의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연 끊고 살자고 했다. 재혼한 이후로 자녀들과 왕래가 끊겼다. 가난보다 더 힘든 것은 자녀들의 외면이었다. 그 후로 명절이나 생일에도 할머니는 죽 혼자였다. 자녀들과 소식이 단절되다시피하고 할머니는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서운할머니의 다리. '말도 못하게' 고생을 한 다리. 다리가 아플 때면 두 손으로 꾹꾹 누른다. 추운 겨울에는 통증이 더 심하다.
 서운할머니의 다리. '말도 못하게' 고생을 한 다리. 다리가 아플 때면 두 손으로 꾹꾹 누른다. 추운 겨울에는 통증이 더 심하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서운 할머니 방 벽에 걸려있는 손주들의 사진. 언제봤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리움은 화석처럼 벽에 박혀있다. 서운 할머니가 투표하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자신의 투표로 저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는 것.
 서운 할머니 방 벽에 걸려있는 손주들의 사진. 언제봤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리움은 화석처럼 벽에 박혀있다. 서운 할머니가 투표하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자신의 투표로 저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는 것.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할머니는 원망하지 않는다. 재작년 막내 아들이 잠깐 왔다 간 것이 가장 최근의 왕래라 하더라도, 날씨가 덥거나 추워져도 안부 전화 한통 없다 해도, 할머니는 이해한다. 자녀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사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 원망하냐고? 원망 안 해. 내가 할 말이 있어야지. 애미가 애미 노릇도 못했는데… 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큰 아들은 현재 심부전증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마땅한 수입도 없는데, 하루 걸러 피를 뽑아야 한단다. 신체적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병원비 때문에 집안 살림이 얼마나 곤궁할지 '애미'인 할머니 가슴으로 먼저 전해지는 듯하다.

"고생도 안 해본 부자들이 어떻게 우리 속을 알아"

큰 딸은 36세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그 딸이 어느덧 50세가 되었다. 남편이 죽은 후 보험설계사를 하며 자녀 뒷바라지를 하느라 '피똥을 싸고' 있다. 서운 할머니는 마치 자신의 젊은 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못해 쓰라리다. 애미가 되어서도, 무엇 하나 해 줄 수 없다는 자괴감과 무력감이 서운 할머니의 가슴을 친다.

"대통령 하나 새로 뽑았다고 세상이 뭐 얼마나 바뀌겠어. 근데 고생 안 해본 사람은 고생한 사람 속을 몰라. 부자들이 어떻게 우리들 속을 알겠어… 부자들만 세금 깎아주고, 대기업만 살판나게 해주고, 도대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 고생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그 속을 알아… 절대 몰라."

막내 아들은 경기도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한다. 간혹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사업도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초등학교도 못나온 서운 할머니지만 부자감세나 대기업 진출과 같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졌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들 일이기 때문이다. 왕래도 없는 자식들, 남보다 못하다고 주위에서는 손가락질 하지만 그래도 모정이란 그런 게 아닌가보다. 

서운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 좁고 높고 가파르다. 눈오는 날엔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서운 할머니는 12월 들어 외출한 적이 한 번밖에 없다. 그리고 오는 19일, 투표장에 가기 위해 다시 한 번 이 계단을 내려올 것이다.
 서운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 좁고 높고 가파르다. 눈오는 날엔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서운 할머니는 12월 들어 외출한 적이 한 번밖에 없다. 그리고 오는 19일, 투표장에 가기 위해 다시 한 번 이 계단을 내려올 것이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서운 할머니의 집은 비탈진 길 한모퉁이에 있다. 10여 년 전, 큰 허리수술을 세 번이나 받고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에게 이 길은 너무 위험하고 높다. 연탄재를 버리러 일 주일에 한두번씩 내려갈 때를 제외하곤 출입을 삼간다.

그러나 오는 19일에 서운할머니는 이 길을 아침 일찍 나설 참이다. 투표장소를 물어보니 꽤 멀다. 차량이 없다면 걸어가기에도 힘이 부치는 거리다. 그러나 할머니는 지금껏 한 번도 투표를 걸러본 적이 없다.

"아침 일찍 나서서, 쉬엄쉬엄 걸어가다보면 그날 안으로는 도착하겠지. 다리 아프니까 가다 쉬어야 해".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두 다리를 꾹꾹 누른다. 

동상으로 뭉개진 두 손... 그러나 희망까지 뭉개지진 않았다

가난하고 서러웠던 어린시절의 아픔이 배어있는 서운할머니의 두 손. 성치않은 이 두 손으로 할머니는 지금껏 자녀들을 길러왔다. 이제 이 손으로 새 대통령을 뽑을 것이다. 새 시대, 새 희망이 오길 간절히 빌어본다.
 가난하고 서러웠던 어린시절의 아픔이 배어있는 서운할머니의 두 손. 성치않은 이 두 손으로 할머니는 지금껏 자녀들을 길러왔다. 이제 이 손으로 새 대통령을 뽑을 것이다. 새 시대, 새 희망이 오길 간절히 빌어본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몽당연필같은 할머니의 손. 이 손에는 애처로운 사연이 있다. 할머니는 둘째 부인의 몸에서 태어났다. 딸을 내리 다섯만 낳은 뒤, 아들을 낳아볼까 하는 기대에 맞이한 둘째부인이었다. 서운 할머니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는 세상을 떴고 할머니는 큰엄마(아빠의 본처) 밑에서 자라났다. 할머니가 세 살 되던 해 겨울, 방에 똥을 쌌단다. 그 벌로 할머니는 한겨울 눈이 쌓인 마당에 버려지다 시피했다.

그 때 입은 동상으로 두 손에는 흉측한 흉터가 남았다. 다른 사람의 손가락보다 한마디 정도가 짧다. 반지 한 번 낄 수 없는 손이지만 할머니는 이 손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할머니가 일곱 자녀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운 할머니는 19일, 아픈 다리를 끌고 투표장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손으로 새 대통령을 뽑을 것이다. 할머니가 원하는 대통령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딸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들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그 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서운 할머니의 '서운'이란 이름은 어릴 때 별명처럼 부른 이름입니다.



태그:#제18대 대통령 선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