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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핵발전소 사고들이 은폐되고, 4대강에서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죽어 떠오르고, 화학물질 관리 부실로 산모와 아이들이 죽음을 당하고, 가축과 동물들이 살처분 당하고 있습니다. 생태의 민주화가 가능해야 경제의 민주화도 가능합니다. 지난 정부의 환경정책을 검증하고 새로운 복원과 치유에 대해 논의할 때입니다. 범 환경진영은 새로운 5년이 생태적 치유와 복원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초록에 투표합니다'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이를 제안하는 글을 10여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건설 현장 풍경(자료사진)
ⓒ 배성민

전국 어디를 가도 개발의 현장이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파헤치고 짓는 것(토건개발)'에서 얻은 부(富)의 단맛에 빠져 있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토건개발주의'라 부를 수 있다. 토건개발주의는 지난 반세기 이상 지속된 고도성장이 잉태시킨 산물이다.

저성장기로 접어든 지금도 토건개발주의는 망령처럼 떠돌면서 한국사회의 질적(質的)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국민 일인당 소득이 만 달러(1995년)에서 2만 달러(2011년)로 옮아가는 데 선진국보다 두 배로 시간이 소요된 이유는 한국의 발전시스템에 깊이 배어 있는 퇴행적인 토건개발주의 때문이다.

실제 소득 만 달러 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우리나라 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1995~2006년 평균)로, OECD국가의 평균인 9.1%의 2배에 육박했다. 낭비성 SOC 건설투자에 집중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위한 투자가 늦어졌다. GDP에서 건설투자의 비중은 줄고 있지만 절대액은 줄지 않고 있으며 건설수주액은 MB정부 들어 더 늘었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수는 2000년 6만7천 개에서 2010년 9만7천 개로 45% 증가했지만 업체당 부가가치 생산액은 2000년대 초반 이후 5.5~7억 원에서 정체돼 있다. 같은 기간 제조업 사업체수는 33만 개 내외로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지만, 업체당 부가가치 생산액은 5억 원 내외에서 10억 원 미만으로 약 2배 가량 증가했다.

ⓒ 조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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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에 등장할 인공 해양도시... 과대망상 끝이 안 보여

수그러들 줄 모르는 토건개발의 욕망은 국토전역을 끝없이 파헤치고 있다. 지난 2011년 4월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파악 가능한 지역개발사업은 총 16개 유형으로 총사업비가 약 580조 원에 이른다. 그 반은 민자로 충당하도록 되어 있다.

국가 예산 310조 원(11년)의 1.8배를 초과하는 막대한 물량의 지역개발사업이 전국에 걸쳐 추진되고 있지만 그 대부분 사업은 부동산 침체 등으로 사업전망이 불투명하다. 수요에 비해 개발이 넘쳐나는 '과(過)개발'의 그림자가 국토 전역에 깊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일본의 90년대 거품 붕괴는 과개발의 끝물에서 터진 것이다. 그렇지만 토건개발의 수레바퀴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최근 인천시는 단군 이래 최대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최대가 될 '317조 원 규모의 에잇 시티(Eight City)'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SF소설에서나 등장할 만한 환상적인 인공 해양도시에 카지노 등 도박장을 8개 이상 만들어 오일머니나 중국의 국부(國富) 등 눈먼 돈을 왕창 끌어 온다는 속셈이다. 이미 청라국제신도시, 송도신도시, 영종신도시, 미단시티 등 추진을 멈춘 유사사업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토건개발의 과대망상은 그 끝이 안 보인다.

토건개발주의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도자들

한국의 토건개발주의는 독특한 역사성과 권력성을 가지고 진화했다. 그 뿌리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토목행정 내지 토목통치에서 비롯됐다. 해방 후 전쟁폐허로부터 '국가재건 내지 부흥'을 통해 '국가 권력화' 됐고, 1960년대 이후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을 돕는 '국토건설'로 제도화됐다.

김영삼 정부를 거치는 동안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신개발주의로 변모했다가 토건식 녹색성장(예, 대운하, 4대강 살리기 등)에 올인(all-in)한 MB정부 들어 퇴행적인 토건개발주의로 전면화 됐다. 토건개발주의는 이렇듯 국가의 부흥과 재건, 건설, 경제개발과 이를 돕는 국토개발 등으로 제도화되는 동안 국가권력의 작용방식이 되었다. 또한 국가시스템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렇다 보니, 한국사회를 '21세기 지속가능한 선진사회'로 이끌어야 할 국가 지도자들도 토건개발주의 리더십이란 프레임을 못 벗어나고 있다. 선거 때마다 개발공약이 난무하고, 개발공약의 우열을 통해 유권자 표심이 나뉘어졌다. 정권을 잡고도 국가적 자원을 집중시키는 대규모 토건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으려고 한다. 이른바 '토건 마피아'는 국가정책 마저 좌지우지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국가는 경쟁국가, 생태복지국가, 사회적 조절국가 등 선진형으로 진화하기는 커녕 '토건적 개발국가' 유형으로 퇴행하고 있다. 국가예산에서 토건예산은 줄지 않는다. 국가정책에서 토건정책의 비중은 커진다. 토건부서의 위상도 갈수록 강고해지는 것은 이의 필연적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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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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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개발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기 위해 MB정부는 퇴장시켜야 할 토건부서(건교부)를 오히려 거대 공룡부처(국토부)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태어난 국토부는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수요와 무관한 공급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쏟아냈고 과개발은 이의 소산물이 되고 있다.

매매수요가 급감했음에도 유(有)주택자와 건설업자를 위한 18차례의 부동산대책을 쏟아낸 것은 그 비근한 예다. MB정부 5년간 국토부의 연평균 예산은 23.7조 원으로 참여정부 건교부 연평균 예산 17.6조 원의 135%가 늘어난 액수다. 국토부의 예산은 대부분 SOC개발 예산이다.

탈토건 사회로의 이행 조건

토건개발주의를 이대로 둔 상태로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 경제민주화도, 생태복지화도, 자치분권화도 모두 퇴행적인 토건개발주의를 타고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토건개발주의로부터 탈피, 즉 '탈토건'은 한국사회의 질적 전환을 원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함께 하면서 쟁취하고 실현해야 할 시대의 보편과제다.

국가의 녹색화: 국토부의 해체와 개발법의 정비

탈토건 국가로의 전환에서 핵심은 국토부의 해체다. 국토부의 핵심 업무인 국토계획(건설포함), 주택, 교통관련 업무는 대부분 수요가 줄었거나 변화를 필요로 한다. 국토부의 계획기능은 환경부로 이관해서 국토환경계획 혹은 지속가능발전계획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국토부가 관장하는 토지개발 업무는 지방정부로 이관돼야 한다. 주택보급율이 100%를 넘어선 지금, 남은 주택정책기능은 주거복지(임대주택의 공급과 관리) 뿐이다.

따라서 민간부문의 주택건설 인허가 등의 업무는 지방정부로 이관하고, 주거복지기능은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거나 주거복지청을 신설하여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 교통관련 업무는 도시권 확장 등에 맞춰 교통청과 같은 전문기구를 신설해서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개발공사도 대부분 해체하거나 기능전환을 통해 통폐합해야 한다. 국토부 과제를 대행하거나 수익성 우선의 주택 및 도시개발사업(예, 보금자리주택공급사업, 도시재개발사업)을 LH가 계속 담당할 이유가 없다. LH식 임대주택의 공급은 지방정부(혹은 지방공사)가 맡아서 하면 된다.

미래의 업역(業域)으로 여기는 도시재생사업은 더욱 지방정부의 몫이다. 제2의 LH로 전락하고 있는 수자원 공사 역시 이미 기반시설을 과잉 건설한 상태다. 불필요한 하천개발사업(4대강 정비, 수변구역개발 등)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도 공사는 해체돼야 한다. 필요한 기능은 수질관리와 묶어 새롭게 편재해야 한다.

120여 개에 달하는 토지개발 관련법들도 통폐합한 뒤, '국토기본법'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을 중심으로 하는 계획법 체계를 재확립해야 한다. 아울러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급속하게 생겨난 개발특별법들(계획법)도 대부분 일반법으로 되돌려야 한다.

토건경제의 축소: 건설업의 구조조정

저성장으로 인한 토건개발의 수요가 급감하고 있지만, 과거 성장기에 과대 팽창한 건설업은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공급주의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국민 소비자로 하여금 토건개발의 상품(예, 토지, 주택 등)을 소비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가령, MB정부의 부동산대책 중 핵심인 거래활성화는 부동산건설업을 되살려야 한다는 업계의 민원 해결을 위한 정책이다. 서민주거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전국 24시간 편의점 수의 4배가 되는 부동산중개업소, 2000년에 비해 45%나 증가한 건설업체의 부양이 MB식 부동산 대책의 속내다. 국토부(의 관료)가 토건세력에 의해 포획된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의 선택은 필연적이다.

공급주의 개발정책의 생산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토건세력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토건경제 전반에 대한 축소 지향적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GDP에서 차지하는 건설업의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전제로 건설업 자체를 점진적으로 축소시켜가야 한다.

이를 위해 자발적 구조조정, 업종전환, 부실업체 퇴출 등의 정책이 강도 높게 추진돼야 한다. 동시에 소득향상에 따라 생겨나는 고부가치 건설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건설업 전반(건설기술, 생산방식, 개발기법, 고용관계, 하도급관계 등)이 선진화되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토건 중에서 '좋은 토건'을 신산업화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탈토건화: 공동체운동과 공민적 시민 만들기

한국에서 개인 부의 대부분은 고도 성장기의 토건개발을 통해 창출된 부동산 부다. 토건국가와 토건경제가 지탱되는 것은 토건개발의 부에 대한 시민들의 강한 집착 때문이다. 이러한 집착을 깨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전반에서 자발 공동체 운동이 다양하게 조직되어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관계가 복원되고, 호혜경제 혹은 협동경제가 대안경제로 떠올라야 한다. 이를 주민 스스로 관리해가는 공동체 자치(예, 근린자치)가 활성화되는 게 곧 자발 공동체 운동이 지향하는 바다.

서울 마포 성미산 공동체 운동이 이의 적절한 예가 된다. 자발 공동체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사익추구에 속한 토건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공동체 삶을 통해 얻게 되는 대안가치가 사익우선의 토건개발을 통해 얻는 것보다 더 값지고 보람차다는 것을 인식할 때 시민들은 토건개발의 욕망에 갇힌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또한 그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대안적 삶을 찾으려 할 것이다.

서울 박원순 시장이 펼치는 '공유도시'는 사적욕망에 사로잡힌 시민들을 공공영역으로 끌어들여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배우고 실천하는 '공민적 시민'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탈토건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2012 대선은 탈토건의 시험대

2012년 대선에서 과거와 같은 선심성 토건개발공약이 난무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일단 다행이다. 경제민주화나 보편복지 논쟁을 거치는 동안 토건개발에 관한 정책비전이나 정책공약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줄어든 결과다. 2012 대선이 한국사회를 지속가능한 탈토건 사회로 바꾸는 역사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초록 유권자 운동을 펼쳐, 탈토건으로의 이행을 위한 국가나 시장의 녹색화(예, 국토부 해체, 과개발의 정리, 4대강 복원, 탈핵에너지로의 전환, 건설산업의 구조조정 등)에 관한 공약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탈토건 리더십이 선택 받도록 해야 한다.

☞ 나는 초록에 투표합니다.(http://www.vote4green.org/) 사이트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조명래 단국대 교수 (환경정의공동대표, 인간도시컨센서스공동대표) 입니다.



태그:#탈 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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