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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월 1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경찰 관련 정책을 발표하는 가운데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배석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월 1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경찰 관련 정책을 발표하는 가운데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배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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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대기업) 오너라고 해도 당장 몇 조원씩 되는 돈을 어디서 구해와요? 결국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겠어요?"

국내 4대 그룹의 한 고위임원의 말이다. 지난달 초 그의 사무실에서 간단히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야 대선후보들 모두 '재벌개혁'을 외칠 때다. 그는 기자를 향해 몸을 숙여가며 말을 이어갔다. 재벌개혁 내용 가운데 대기업의 순환출자 금지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였다. 한마디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기업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낫다고도 했다.

이어 "지난번 대선 때는 재벌개혁 이야기가 없었나"라고도 했다. 하지만 경계하는 눈빛은 여전했다. 예전과 다른 사회분위기도 알고 있었다. 특히 여당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쪽 공약에 우려를 나타냈다. 박 후보쪽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에 대해서도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는 "아무리 중간층 표를 의식해도 민주당 사람이 왜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4대 재벌 "순환출자금지? 차라리 그 돈으로 투자하라고 하는게 낫다"

그리고 지난 12일 그와 다시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대신 박 후보에 대해선 안도감을 나타냈다.

"그쪽(박 후보) 재벌 공약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박 후보의 말만 들어보면 야당보다는 분명히 낫다. 어차피 여야 모두 (재벌공약은) 선거용 아닌가."

또 내년 경제위기 우려 속에 기업들도 앞날을 내다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업들이 내년 투자도 미룰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경제위기론에 바탕을 둔 재계의 저항인 셈이다. 또 보수진영 학자와 시민단체들까지 나서면서 "선거용 정치쇼 그만하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보수진영의 저항에 박근혜 후보 쪽은 사실상 경제민주화 포기로 방향을 틀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당장 '집토끼라도 잡아놔야 한다'는 인식이다. 전통적인 지지층인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요구를 무시할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박 후보의 '입'으로 불리는 이정현 공보단장은 "경제현실과 눈앞의 대선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너무 과한 경제민주화는 받아들일수 없다"고도 했다.

그가 말한 '너무 과한 경제민주화'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내놓은 것들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대기업집단법 제정을 비롯해 재벌의 국민 감시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인 안(案)'에는 재벌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제한을 포함해 주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대기업 임원진 급여공개 등이 포함됐다.

재벌의 저항에 백기투항, 박근혜식 경제민주화 물건너가

하지만 박 후보는 이같은 '김종인 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재벌개혁의 핵심인 재벌의 기존 순환출자 금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후보는 지난 11일 선대위 회의에서 "제 입장은 일관되게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그대로 둔다는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전부 다 끊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데, 경제위기 시대에 그런 것보다는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쓰는 것이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이같은 인식은 재벌의 이해관계와 거의 일치한다. 김 위원장은 '순환출자분의 의결권 제한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박 후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기존 순환출자가 문제가 되는 재벌 역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삼성 등 일부 재벌에 국한돼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7월에 펴낸 순환출자현황 및 해소 지분가치 보고서를 보면, 45개 대규모 기업집단 가운데 15개 그룹이 순환출자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이들이 순환출자를 없애려면 총수일가들이 8조5000~9조6000억 원어치 주식을 사들여야 한다. 특히 현대차 그룹이 6조1665억 원, 현대중공업 그룹 1조5763억 원, 삼성 1조2185억 원으로 이들 3대 재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더라도 비용은 기업이 내는 것이 아니라 총수 일가가 내놓는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주식을 팔면 오히려 돈이 들어와 투자에 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박근혜 후보나 재계 역시 '총수'와 '기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기득권 이데올로기 vs. 경제민주화 국민대항 이데올로기"

이미 새누리당 내부에선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성장과 일자리로 방향을 틀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선대위 차원에서 박 후보의 이미지를 '경제위기 극복 대통령'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성장과 일자리를 끌어내기 위해선 재벌 등 기득권층의 도움 없이 어렵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최근 들면서 경제위기론이 보수와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나오면서 정치적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어느새 경제위기론이 경제민주화론을 밀어내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경제위기론은 전형적인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라며 "대기업 중심의 성장 과실이 과연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흘러갔는가. 오히려 양극화만 심화되고 경제위기는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대선은 경제위기론이란 소수 기득권 이데올로기 지배세력과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다수 국민의 대항 이데올로기가 대결을 벌이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그:#박근혜, #김종인, #경제민주화,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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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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