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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연이어 물음표가 달리는 가운데,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와 그의 가족, 그리고 박 대통령의 과거 행적에 관심이 쏠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해 예전에 내보낸 기사 중 몇 편을 "다시 보는 오마이뉴스" 로 싣습니다(2016.10.29~30) [편집자말]
1975년 5월 16일치 <경향신문>. 사진 설명에는 "3일간 군사훈련을 받은 10개 교단 목사 1백명의 퇴소식에 참석, 격려한 박근혜양"으로 나와 있다.
▲ 군사훈련을 받은 목사들 퇴소식에 참석한 박근혜씨 1975년 5월 16일치 <경향신문>. 사진 설명에는 "3일간 군사훈련을 받은 10개 교단 목사 1백명의 퇴소식에 참석, 격려한 박근혜양"으로 나와 있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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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이라는 표현은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박정희 정권이 자주 구사했던 단어 중 하나였다. 베트남에 파병된 국군 장병들은 곧잘 '자유의 십자군'으로 칭송되었고, 한국에 주둔하던 유엔군 장병들에게 보내는 박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메시지에는 '평화의 십자군'이란 표현이 단골로 등장했다.

1973년 3월 20일 베트남에 파병됐던 주월한국군 개선 국민환영대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어제의 평화십자군이 오늘의 유신(維新) 십자군, 구국의 십자군이 되게 하자"고 촉구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야기한 '구국의 십자군'은 2년 뒤 현실화된다.

박근혜, 최태민 주도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여

1975년 6월 21일 배재고교 교정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박근혜씨. 오른쪽에 안경을 쓴 이가 최태민씨다.
 1975년 6월 21일 배재고교 교정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박근혜씨. 오른쪽에 안경을 쓴 이가 최태민씨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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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23일자 <중앙일보>는 구국 십자군 창군식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창군단원들은 강화도대표 황영식 목사가 낭독한 선서문을 통해 "십자군은 한국의 복음화에 전력하며 명랑사회 조성에 힘쓰고 사회윤리정화에 앞장서 민족의 특수풍토를 정립하여 조국통일의 성업과 세계평화건설유지에 기여할 것"을 선서했다.

선교단의 명예총재인 근혜양은 격려사를 통해 "북괴의 남침야욕이 증가하고 국제정세는 자국의 이익추구에 혈안이 되고 있는 이때에 한국은 전쟁과 단결의 기로에 서있다"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해있는 어려운 생활속에 구국십자군의 창설은 시의적절하며 뜻 깊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정동 배재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이날 창군식에는 박근혜씨를 비롯해 임병직 반공연맹 이사장과 16개 개신교단 1800여 명의 창군대원이 참가했다. 구국십자군은 최태민 목사가 총재로 있던 대한구국선교단의 산하단체로 최 목사는 유신 말기 육영수씨의 뒤를 이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씨를 본격적인 사회활동에 나서게끔 유도한 인물이다.

박근혜씨는 구국십자군 창군 한 달 전인 5월 12일 대한구국선교단 주최로 임진각에서 열린 조국통일을 기원하는 구국기도회에서 이 단체의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정식 창군 이전에도 구국십자군에 관련된 기사들은 잇달아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5월 22일치 <중앙일보>는 '대한구국선교단 소속 102명 3일간 육군에 입소 훈련' 제목의 기사에서 "대한구국선교단(총재 최태민 목사) 소속 1백2명의 목사(여 목사 5명 포함)들이 육군 5019부대에 입소, 특수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22일 상오 11시 서울에서 출발했다. 기독십자군 창설의 일환으로 24일까지 2박3일간 실시되는 이 훈련에서 목사들은 사병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사격훈련까지 받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이 기사는 "선교단은 이미 서울 성동구 원지동 청계산에 5만여 명의 훈련장까지 마련,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 근혜양을 명예총재로 추대, 기독십자군을 6월중으로 창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일단 유사시에는 일선에 나설 수 있는 훈련을 실시할 방침이다."고 소개했다.

<중앙일보>는 5월 25일과 6월 16일에도 각각 102명, 107명의 구국선교단 소속 목사들의 입대 훈련과 퇴소 소식을 전했다. 또 6월 10일치에는 구국십자군의 창설 의미와 활동계획에 대한 상세한 기사를 실었다.

"90년 기독교 선교사상 이 같은 십자군이 창설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평가한 이 기사에서는 "구국십자군의 목표 병력은 20만명이며 편성은 일반군 편제에 준해 중앙에 사령부를 두고 각 시·도 단위로 군단, 각 개체교회를 분단으로 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또 "훈련은 십자군이 편성되는 교회에는 국방부와 교섭해 교관을 파송, 매주 토요일 하오1∼5시까지 4시간씩 전국적으로 일제히 제식·사격훈련 등 군 기본훈련을 시킬 계획"이라고 밝혀 구국십자군이 일종의 준군사조직을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이어 "십자군의 지휘책임은 이미 실시중인 목사특수군사훈련을 받은 전국의 젊은 목사들이 맡을 예정"이며 "계급은 현 육군계급장에 십자가를 넣어 부착할 것을 국방부와 현재 교섭 중"이라는 소식도 아울러 전했다.

박근혜씨는 구국십자군 관련 행사에 직접 참석해 격려하거나 축사를 대독케 했다.

목사들이 총검술 훈련... 구국십자군의 지방조직도 창설

1975년 제작된 대한뉴스 1041호 미공개분에는 구국십자군 화랑 수련회 장면이 담겨있다. 2분 31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최태민 목사도 등장하지만 음성은 나오지 않는다.
▲ 대한뉴스에 등장한 구국십자군 1975년 제작된 대한뉴스 1041호 미공개분에는 구국십자군 화랑 수련회 장면이 담겨있다. 2분 31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최태민 목사도 등장하지만 음성은 나오지 않는다.
ⓒ KTV 국가기록영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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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에는 구국십자군 화랑수련대회가 1박2일의 일정으로 경주 화랑의 집에서 열렸다. 이 수련대회에 참석한 천여 명의 십자군들은 이틀 동안 석굴암에서 새벽구국기도를 올렸다. KTV 국가기록영상관에 올라와 있는 대한뉴스 제 1041호(대한 구국십자군 화랑 수련회)의 미공개분 필름에는 목사들의 총검술 훈련 장면과 함께 군복 차림의 목회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최태민 목사의 모습도 등장한다.

구국십자군의 지방 조직도 속속 창설됐다. 8월 7일 강화도에 첫 지방군단 조직인 강화 특수군단이 발단식을 열었고, 이듬해 4월 22일에는 천안 시내 15개 신·구교 교파 연합으로 구성된 충남 제1군단이 창설됐다.

<경향신문>은 1975년 8월 8일치에서 강화 특수군단 발단식 소식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대한구국선교단(총재 최태민) 산하 구국십자군의 첫 지방군단인 강화 특수군단 발단식이 7일 상오 11시 강화초등학교 교정에서 선교단 간부 및 강화군민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멸공대·기동대·전도대 등 각 500명씩 1천500명으로 구성된 군단대원은 발단식에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순교적 신앙으로 총궐기, 민족중흥의 활력소가 되고 기독교의 선과 미로써 조국의 성업에 총 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1976년 4월 23일치 <경향신문>은 충남 천안농고 교정에서 열린 구국십자군 충남 제1군단 창군식 소식을 전했다.
▲ 충남 1군단 창군식 1976년 4월 23일치 <경향신문>은 충남 천안농고 교정에서 열린 구국십자군 충남 제1군단 창군식 소식을 전했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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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구국십자군은 전국 남녀 멸공 웅변대회(7월 31일), 고 육영수 여사 1주기 추모 예배(8월 14일), 강화도 지역 헌혈 행사(1976년 2월 10일) 등의 소식으로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다.

1976년 4월에는 '한반도가 적화돼도 미일 안보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 도널드 프레이저 미 하원의원의 발언을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즉각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 성명에서 구국십자군은 "프레이저 의원의 발언은 한미간의 우호 전통을 이간질 시키려는 망언이며 공개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우리의 십만 십자군은 민족의 운명을 걸고 실력행사도 불사하겠다"고 천명했다.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원조 제공에 처음으로 인권 개선 조건을 내세우는 등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던 인물이 프레이저 의원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구국십자군의 성명은 정권의 의중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구국십자군의 정점에 최태민과 박근혜가 있었다"

최태민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최태민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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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랑사회 건설에 힘쓰겠다'던 창설 취지와는 달리 박근혜씨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던 최태민 목사에게 줄을 대려는 일부 권력지향적 목사들이 많아지면서 구국십자군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여성월간지 <우먼센스> 1993년 11월호에 실렸던 '박근혜-최태민 20년 밀월관계의 전모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청와대 친국사건' 기사에 소개된 L 목사의 증언이다.

"구국봉사단에서 만든 구국십자군이 실제 군인들 뺨칠 정도로 위세를 떨쳤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계급이었죠. 십자군의 계급이 십자가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그렇다 치고 그 모양을 생각해봐요. 십자가의 아래위를 약간 줄이면 별 모양 비슷할 거 아닙니까? 제복을 입고 그것을 달면 마치 장성처럼 보였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행사 참석을 하려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던 천안지구 단장이 있었죠. 헌병이 검문을 하려고 했죠. 군인 비슷한 복장인데 군인하고는 다르니까 무슨 특수부대인줄 알았겠죠. 그러자 그가 호통을 친 겁니다. '이놈!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검문을 하려는 게냐?' 그 헌병은 혼비백산해 내려가서 상부에 보고를 했죠. 즉각 조사가 벌어졌지요. 결국 그것은 유야무야 되었어요. 정점에 최태민과 박근혜가 있었으니까."

지난 2007년 공개된 중앙정보부의 이른바 '최태민 관계 자료'(1977년 작성 추정)에도 구국십자군과 관련된 최 목사의 비리 사실이 등장한다.

"76.2.8 경 안O산업 대표 安OO에게 동 공장을 奉仕團(봉사단) 십자군 군복(180만착분) 납품공장으로 지정해주고 동 대가로 200만원 收受(수수)"

"76.4.16 동O공영(주)대표 白OO에게 동인이 부산-제주 간을 운항키 위해 日本(일본) 三井造船(삼정조선)에서 건조한 '하버크레프트' 고속 여객선을 도입할시 승객유치관계로 대한항공이 반대하면 무마해주겠다고 하고 그 대가로 십자군 군복 2만착분 대금 1억원의 기증서를 받음"

그런데 소속 목사들의 입영 훈련과 헌혈 행사 같은 구국십자군의 소소한 일정까지 다뤘던 신문 기사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1976년 8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구국십자군과 관련된 마지막 보도는 당시 발생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한 대한구국선교단 십자군총사령부의 결의문 발표 기사다.

<경향신문> 1976년 8월 20일치는 "대한구국선교단 십자군총사령부(총사령관 이승일)는 구국비상기도선포의 결의문을 발표, 19일 상오 10시를 기해 전국 25만 구국십자군에게 비상사태에 대비한 15일간의 철야금식기도회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다"고 전하고 있다.


태그:#박근혜, #최태민, #구국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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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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