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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쪽방지역 건강권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 모습
 동자동 쪽방지역 건강권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 모습
ⓒ 건강세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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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서울 창신동 쪽방촌을 방문한 지난 19일, 또 다른 쪽방 밀집 지역인 서울 동자동의 한 쪽방에서는 외롭게 생을 마감한 노인의 시신이 발견됐다. 방세를 받으려고 문을 연 집주인에 의해서 말이다. 사망한 지 여러 날이 지났는지 당시 방안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고 한다.

나는 건강세상네트워크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생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동자동사랑방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동자동 쪽방 주민 건강권 실태조사'에 참여해 지난 15일부터 설문조사 활동을 벌였다. 서울역 건너편에서 골목으로 1분만 들어가면 닿을 수 있는 동자동 쪽방촌은 법이 정한 1인 최저 주거 기준인 3.6평에도 한참 못 미치는 1평 정도 되는 방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실태조사는 주민들 한 분 한 분을 만나 각 1시간 정도씩 300개가 넘는 문항을 묻는 심층 면접 형식으로 이뤄졌다. 나는 노인분의 시신이 발견된 건물에도 지난 17일 방문해 설문조사를 벌인 바 있다. 한 층에 10여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이었는데, 내가 한 방에 들어가 건강 상태에 대해 질문을 드리는 동안 가까운 방에서 그 노인분은 쓸쓸히 죽어 있었던 것이다.

'무덤'에 사는 사람들

서울 창신동 쪽방촌의 한 화장실. 내려가는 계단 위에 공동 화장실이 있다. 여기를 이용하려면 왼쪽에 조그마한 발딛는 곳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조 금이라도 헛디디게 되면 아래로 추락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건물 주인들이 좁은 건물에 방들을 꾸역꾸역 만들다보니 화장실 놓을 공간이 없어 이런 어이없는 풍경을 만들게 되었다. 2012년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다.
 서울 창신동 쪽방촌의 한 화장실. 내려가는 계단 위에 공동 화장실이 있다. 여기를 이용하려면 왼쪽에 조그마한 발딛는 곳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조 금이라도 헛디디게 되면 아래로 추락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건물 주인들이 좁은 건물에 방들을 꾸역꾸역 만들다보니 화장실 놓을 공간이 없어 이런 어이없는 풍경을 만들게 되었다. 2012년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다.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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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 본 집들은 모두 부엌이 없었다. 수도관이 연결된 낡은 공간은 공용 세탁실 겸 세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공용 세탁실 겸 세면실 바닥 하수구 덮개 위에는 돌이 놓여 있었다. 그 이유는 구멍을 타고 쥐가 자주 올라오기 때문이란다. 최악은 공용 화장실이었다. 그냥 시멘트 바닥이 구멍이 뚫려 있는 게 전부였다.

10월 초에는 서울 창신동에 있는 쪽방촌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는 화장실이 계단 위 공중에 얹혀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쪽방은 다리를 뻗고 눕기 힘들 정도의 넓이였고, 누런 벽지와 생활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생활도구들이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었다.

어떤 주민은 쪽방을 '관' '무덤'이라고 불렀다. 이들에게 죽음은 일상이었다. 때론 "삶이 죽음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치된 죽음이 비일비재해서 한 활동가는 "지난 19일의 사건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별로 놀랍지 않은 일로 여긴다"고 전했다. 내 설문조사 대상이었던 한 분도 자기가 지금 있는 방이 전에 장애인이 살았는데, 그 사람이 죽자 빈방이 생겨 들어왔다고 무덤덤하게 말씀하셨다.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채 자살을 늘 생각한다"는 주민도 많았다.

술은 가깝고 복지는 멀다

창신동 쪽방촌의 계단. 협소하고 가파른 계단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창신동 쪽방촌의 계단. 협소하고 가파른 계단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 동대문쪽방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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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주민들의 다수는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생계비(월 45만 원)가 들어오는 날은 매달 20일. 10월 20일은 휴일이라 이번 달에는 19일에 돈이 들어왔단다. 지난 19일에 찾은 동자동에는 낮부터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술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주민들이 많았다. "건강을 위해 술을 끊을 생각을 하시는지요?"라는 설문에 어떤 분들은 "생각은 하지. 근데 얼마 더 살지도 못할 건데 끊어서 뭐해"라고 답하기도 했다. 어떤 분은 "쪽방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술 마시는 일뿐"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장애가 있어서, 학력이 낮아서,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어서 등의 이유로 많은 이들은 일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쪽방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술·담배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게 전부다.

이곳에는 몸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 취미활동은 사치와 같다. 일을 한다고 해도 적절한 보상을 하는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지고, 적은 돈이라도 소득이 생기면 수급비를 받지 못하게 되니 수급비 45만 원에 의지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에게는 '일해서 먹고살면 되지'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아도 취업이 힘든 경제 위기의 시대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볼 기회가 대개 없던 이들에게 더 큰 고난의 세월인 셈이다.

쪽방 주민 중에는 일을 나가는 분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월 15만 원부터 많게는 30만 원 이상에 달하는 방세를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게 없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저축이나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일 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더 나은 주거지를 찾아 떠나고 싶어도 높은 집값 때문에 떠날 수가 없다.

벌집 같은 쪽방촌에도 '경제민주화'의 빛이 닿아야

지난 추석 즈음 열린 동자동 마을 잔치. 많은 쪽방 주민들은 서로 교류가 없다. 인간다운 공동체가 이들에게 필요하다.
 지난 추석 즈음 열린 동자동 마을 잔치. 많은 쪽방 주민들은 서로 교류가 없다. 인간다운 공동체가 이들에게 필요하다.
ⓒ 동자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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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마다 통계 수치가 다르긴 하나, 전국적으로 6000명 정도가 쪽방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쪽방을 '묻지마 범죄'의 온상으로 여기고, 이곳 사람들을 '정리해야 할 게으른 자'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지저분하고, 비논리적이고, 한심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그런 게 아니다. 전쟁고아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도 있고, 산업화 과정에서 낮은 대우를 받다 산업재해를 당한 이도 있다. 또, IMF 경제위기 때문에 사업이 망해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이도 있다. 학교를 아예 다닐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이도 있고, 돈이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해 불구가 된 이도 있다. 이렇게 쪽방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질곡 속에서 사회적으로 '잉태'된 것이다.

과연 '쪽방의 그늘'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 나이가 한참 어린 내게 90도로 인사를 하며 "제발 쌀을 좀 얻어 달라"는 김씨 아저씨의 빈 쌀독과, 실태조사에 응하신 분께 드리는 수건 한 장에도 고마워하는 이씨 할머니의 주름진 손, 몸을 틀어야 오를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몇 겹으로 얽힌 벌집 같은 쪽방에야말로 이번 대선 정국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경제민주화'의 빛이 닿아야 한다. 지난 19일 노인이 사망한 건물에서 창을 열면 바로 가까이에 한 대기업의 웅장한 유리 건물이 보인다. 스마트한 시대와 비극적 개인의 죽음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쪽방 지역 지원책 마련을 위해 10월 27일까지 진행 예정인 동자동 쪽방 실태조사는 주민들 중 300분을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조사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 자원봉사자를 모집 중이니 조사원으로 함께하고자 하는 분들은 건강세상네트워크(02-2269-1901)로 연락해 보시기 바랍니다.



태그:#쪽방, #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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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 만들고 글을 쓰고 지구를 살리는 중 입니다. 통영에서 나고 서울에서 허둥지둥하다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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