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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에 들어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10년 12월 22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지난 17일 열린 '내가꿈꾸는나라'의 '시민정치아카데미 : 복지국가와 시민건강교실'에서 김연명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며 물었다. "사실입니까. 현실을 호도하는 말입니까?" 수강생은 고개를 저었지만 김연명 교수의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절반은 맞습니다. 저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이 복지국가에 진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여러 사람이 제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동경대학의 다케가와 쇼고 교수 등 외국의 학자들도 한국은 복지국가 형성기에 들어갔으며, 초기적 형태의 복지국가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김연명 교수는 2011년 복지 예산이 담긴 도표를 제시했다. 86조3천억 원. 가늠할 수 없는 단위라 현실감이 없다. 여기에 주택융자금과 건강보험·퇴직금·지방정부의 복지예산을 더하면 합계는 더욱 늘어난다. 김연명 교수가 다시 물었다.

"지방정부 복지예산과 퇴직금을 제외해도 108조 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써도 내게는 별로 안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주위를 둘러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김연명 교수는 복지제도의 도입 단계에서 선택한 '선별주의'를 지적했다.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는 '보편주의'가 아니라 저소득 계층에 집중하도록 설계돼서 복지를 체감하는 인구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연명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합작' 혹은 '역사의 우연'으로 인해 군사정권이 물적 기반을 확보하고 사회운동과 민주정부가 복지의 팽창을 실현했다"고 분석한다. 우리의 제도와 예산이 복지국가 초기단계에 있음을 인식해야 어떤 복지국가로 나아갈지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은 과잉 재정... 사회투자자본으로 활용하자"

김연명 교수가 전망하는 우리의 길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개인 부담이 적고 복지도 적은 대신에 시장에서 복지를 구매하는 자유주의 복지국가. 미국이 대표적이다. 둘째, 개인 부담이 많고 복지도 많지만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남부 유럽형 복지국가. 여기에서는 가족의 복지 제공이 중요한 수단이다. 마지막은 남미형 국가다. 이 나라들은 복지국가 초기 단계에서 탈락해 복지국가 건설에 실패한 사례다.

복지국가하면 떠오르는 스웨덴이나 독일은 빠져있다. 지금의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전환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복지국가가 미국이나 스페인은 아니다. 한국이 복지국가에 접어들었다는 의견에 정서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던 것도 현재보다 선진적인 복지제도를 그렸기 때문이다. 무엇을 준비하고 바꾸면 가능할까.

김연명 교수가 디자인하는 좋은 복지국가의 핵심은 "보편주의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는 것"과 "국민연금기금을 사회투자자본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복지비 확충의 현실적 대안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고갈을 우려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우리처럼 기금을 적립하며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예외적"이라며 "기금 고갈 후에는 그 해의 세금에서 지출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의 국민연금 적립금은 380조 원에 이른다. 김연명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생각보다 안정적이며 오히려 과잉 재정"이라고 설명했다. 적립금 운용의 문제점도 짚어냈다. 채권과 주식에 대한 투자로 현금 유동성 확보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걷어 대기업 주식을 사들임으로써 재벌을 도와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 정부, 100조 원 빌려와 복지국가 만들어야"

김연명 교수는 "다음 정부 5년 동안 국민연금에서 100조 원을 빌려온 후 40년 동안 나눠 갚자"고 제안했다. 이 돈으로 어린이집·임대주택·노인요양시설·공공의료시설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복지는 바라지만 세금 인상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한국에서, 국민연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 같은 소신을 구상이 아니라 행동으로 구체화시킬 예정이다. 다음 주 출범하는 '국민연금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이 활동의 진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열악하고 미래에 대한 믿음이 희미할 때, 사람들은 한방에 대한 기대를 품는 것으로 불안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기대가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에게 김연명 교수의 제안을 알려주고 싶다. 주거와 육아에 대한 걱정으로 결혼을 망설이는 청춘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나와 이웃에 쓰이는 100조 원. 여기, 확실히 당첨되는 복권이 있다고.

덧붙이는 글 | 시민정치행동 내가꿈꾸는나라는 10월 16일부터 11월 20일까지 시민정치아카데미를 진행합니다. 강좌는 매주 화요일 <경제민주화교실> 수요일 <복지국가와 시민건강교실> 목요일 <시민정치교실>로 구성돼 있습니다.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http://mycountry.or.kr/archives/71820 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태그:#김연명, #복지국가교실, #내가꿈꾸는나라, #시민정치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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