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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태풍 ‘카눈’이 몰고 온 강풍에 넘어진 안집 철재대문.
 지난 7월 태풍 ‘카눈’이 몰고 온 강풍에 넘어진 안집 철재대문.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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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남짓 되었을까. 가옥과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던 제7호 태풍 '카눈'이 군산 앞바다를 통과하던 7월 19일 오전, 필자가 전세(2천만 원)로 사는 집 철재 대문도 강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처럼 힘없이 기울어진 문짝은 내 마음조차 나약하게 만들었다.

스물두 살에 시작한 셋집살이는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하는 41년째 이어지고 있다. 1971년부터 지금까지 이사를 아홉 번 다녔으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횟수다. 그럼에도 젊어서부터 '월세를 살아도 지금 사는 집이 내 집이다'는 말에 적극 공감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쓰러진 대문이 가족처럼 느껴지면서 불쌍하고 측은하게 보였다.

강풍에 낙과된 길가의 대추와 감들은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조금 후에는 불안감까지 밀려왔다. 얼마인지 모르는 대문 수리비용 때문이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가족이 함께 사용하지만, 천재지변으로 파손됐을 때 보수비용은 주인 측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불안감은 온갖 잡념을 불러왔다. '대문 수리비용을 주인과 분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견적이 고액으로 나올수록 전세만기일(8월 18일)에 전세금도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대문은 이틀 후 정상으로 복구되었고, 집주인에게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처음 계약할 때 집주인이 "집세 걱정은 하지 마시라!"라고 했지만 요즘 인심이 어디 그런가.

셋집살이 41년에서 30년 이상을 가게가 딸린 상가(商家)에서 살았다. 해서 한 번 이사비용이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집주인이 잠시 보자고만 해도 가슴이 뛰고 신경이 곤두서는 버릇이 있다. 계약만기 전인데도 집세를 올려달라거나 어느 날 갑자기 불러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는 주인을 여럿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쓰러진 대문 보수'에 대한 고민은 다행히 혼자만의 가슴앓이로 끝났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지나가는 세월. 전세만기일이 도깨비 걸음처럼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서였다. 셋집을 전전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주인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주기적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데,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전세금 올릴 기회 무시한 집주인, 다시 보여

7월 말부터 따기 시작한 고추를 건조기에 말리고 있다.
 7월 말부터 따기 시작한 고추를 건조기에 말리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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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에는 '강풍에 쓰러진 대문'보다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이른 아침부터 해머 드릴 소리가 요란하기에 1층 마당으로 내려가니 안집 현관 시멘트 계단과 지붕 일부를 헐어내는 대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인부와 함께 작업하던 집주인은 얼굴이 마주치자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시끄럽지요? 조금 전 말씀 드리려고 올라가니까 주무시는 것 같아서··· 수확기를 앞두고 고추 건조기와 세척기를 한 대씩 들여놓느라고요. 블록 몇 장 깨부수면 될 줄 알았는데 지붕도 덧달아야 하고, 일이 커지네요. 그래도 오늘 저녁이면 전기공사까지 모두 끝납니다. 귀가 따갑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이날에야 집주인 부부가 올봄에 토종고추 모종을 3만 주나 심었고, 공들여 가꿔왔음을 알았다. 모종 한 주 가격은 150원. 고추 세척기 200만 원, 고추 건조기 400만 원, 전기공사비 200여만 원 등 얼추 계산해보니 고추농사에 투자한 금액이 1천5백만 원 가까이 될 것 같았다. 인건비를 포함하면 '고추농사'가 아니라 '고추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한 사업을 벌이면서도 전세금 인상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던 집주인이 고마웠다. 전세금을 올릴 좋은 기회를 무시하고 지나간 그가 다시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2008년 8월 초 2년 만기 전세계약서에 서명하고 계약만료가 되는 2010년 8월은 날짜도 확인하지 않고 지나갔고, 새로 작성할 날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초조할 수밖에.

가족으로 모자라 이웃 할머니들까지 품을 사서 고추뿔을 따고 있다.
 가족으로 모자라 이웃 할머니들까지 품을 사서 고추뿔을 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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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집 아주머니가 세척기에서 나오는 고추를 채반에 담고 있다.
 안집 아주머니가 세척기에서 나오는 고추를 채반에 담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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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건조기를 설치한 후 집주인 부부는 밭으로 고추 따러 다니랴, 말리랴, 세척하랴,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치우랴 손발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아주머니 친정 동서들과 이웃에 사는 방울이 할머니까지 품을 사서 늦은 밤까지 고추를 고르고 자르는 작업을 했다. 장소가 비좁아 필자가 사는 2층 테라스를 건조장으로 이용하기도.

여름내 땡볕에서 땀 흘린 보람이 있었는지 고추는 풍작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품질이 좋다는 평가도 받았다. 거래는 알음알음으로 이루어졌다. 고추를 많이 심었다는 소문이 입을 통해서 퍼지자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찾아와 확인하고 갔다.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친인척의 부탁을 받아 한 사람이 100근~200근씩 사들였다.

집주인의 뜬금없는 질문 "1년에 고춧가루 몇 근이나 드세요?"

안집 아주머니가 가져온 여름 과일과 옥수수.
 안집 아주머니가 가져온 여름 과일과 옥수수.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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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만료일 일주일을 남겨놓은 8월 11일 오전이었다. 안집 아주머니가 오더니 "밭에 나갔다가 금방 따온 것이니까 맛이나 보셔유"라며 참외와 옥수수, 복숭아 등이 담긴 비닐 보따리 두 개를 놓고 돌아갔다. 평소에도 색다른 반찬을 만들거나 음식이 들어오면 맛이나 보라며 가져오는 아주머니. 가슴을 조이고 있던 참이어서 그런지 이날은 유달리 고맙게 느껴졌다. 

이튿날(12일)은 외출하려고 마당을 지나가는데 집주인이 잠시 보자고 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다. 그렇다고 얼굴까지 찌푸릴 수는 없는 일. 살짝 웃으며 다가가니까 "김장 포함해서 1년에 고춧가루 몇 근이나 드세요?"라고 묻는데 어이가 없었다. 하도 뜬금없는 질문이어서 "글쎄요··"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고추를 싼값에 드리겠으니 사가라는 뜻인지 그냥 주겠다는 뜻인지 진의를 알 수 없지만, 집세 관련 이야기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또한, 한동안은 전세금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이 필요했으면 진즉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전세계약 만료일(18일)은 조용히 넘어갔으며, 가슴이 허전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다.

전세계약 만기일이 지나고 나니까 나 혼자 가슴앓이 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집주인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가슴에 고마운 마음을 담고 지내던 중 지난달 30일 장모님 상(喪) 때는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잦은 태풍으로 피해를 크게 입었고, 그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분들에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집세는 걱정 마시고 살고 싶을 때까지 사세요"

우리 주려고 마늘을 고르는 안집 아주머니. 앞에 놓인 상추도 함께 받아왔다.
 우리 주려고 마늘을 고르는 안집 아주머니. 앞에 놓인 상추도 함께 받아왔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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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사하던 날 집주인이 "채소를 직접 갈아드시고 싶으면 밭을 내드리겠다"며 "논도 필요하면 얘기하시라"고 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해마다 마당 텃밭에서 푸성귀를 따다 먹으며 아주머니가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 작년 여름에도 직접 가꾼 거라며 마늘을 한 접(100개) 주어 고맙게 먹었다. 그 외에도 각종 잡곡, 쇠고기 등심, 호박죽 등 꼽으려면 손가락이 아플 정도다. 

이사하고 이듬해부터는 쌀독의 쌀이 떨어질 때마다 집주인에게 부탁하면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나락을 한 가마(40kg)씩 정미기에 찧어준다. 가격은 5만 원. 값도 싸지만, 항상 구수하고 기름진 햅쌀처럼 맛이 좋다. 2010년 가을에는 보일러 설치비 일부를 부담했더니 미안하다며 나락 한 가마를 그냥 찧어준 적도 있다.  

부산에서 이곳 군산시 나포면으로 이사한 지 50개월이 되어간다. 비록 시골집 2층에서 2000만 원짜리 전세를 살지만, 41년을 돌아보면 몸도 마음도 지금이 가장 편한 것 같다. 이사하던 날 "집세는 걱정하지 마시고 살고 싶을 때까지 사세요"라고 했던 집주인의 후덕한 인심과 훗날 행동으로 나타난 신뢰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 글



태그:#전세, #집주인,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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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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