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물리학 클래식> 표지
 <물리학 클래식> 표지
ⓒ 사이언스북스

관련사진보기

20세기가 물리학의 세기였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타임>지가 1999년 12월 31일자 특별호에서 세기의 인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선정한 것도 20세기에서 물리학의 위상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다. 백 년 동안 물리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말 그대로 세상을 바꿔놓았다. 겉모습뿐 아니라 속까지도. <물리학 클래식>은 그런 현대물리학의 발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요하고 기념비적인 10편의 논문을 소개하는 책이다.

물리학자에게는 고전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언제나 물리학 문헌은 새 것이 더 좋다. 세월이 지나면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잘 표현한다. 그래서 뉴턴 역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뉴턴이 쓴 <프린키피아>를 읽을 것이 아니라, 고전역학 교과서를 읽어야 한다.

단순히 <프린키피아>가 읽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물론 실제로 읽기도 어렵지만), 그 편이 물리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고전역학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뉴턴 이후의 발전된 역학을 주로 소개하는 대학원 수준의 고전역학 교과서를 읽어야 한다. 거기에는 사실 뉴턴의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왜 이 책 <물리학 클래식>은 원 논문을 소개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물리학 논문을 돌아보는 이유는 흔히 인문학에서 원전을 찾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글쓴이 이종필 박사는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원 논문을 다시 읽고 그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거나 다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원 논문으로부터 비롯된 이후의 물리학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 원 논문들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20세기 물리학의 중요한 주제를 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논문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 현대 물리학 그 자체를 소개하는 책이다.

물질의 구조·원자핵·초전도·우주 팽창·쿼크... 20세기의 획기적 발견

이종필 박사는 이 책에서 논문을 선정하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획기적인 발견 ▲ 인식의 혁명 ▲ 이론적 완성

현대물리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연상할까? 사람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현대물리학의 근간이라는 데에는 이의를 내놓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담은 두 편의 논문, 그리고 보통 행렬역학이라고 부르는 양자역학의 새로운 체계를 창조한 하이젠베르크의 논문이 등장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고,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을 새로이 정의하고, 우주 그 자체를 물리학의 대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주었다. 양자역학은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나아가서 물질의 실재와 인간의 인식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이 세 편의 논문은 아마 누가 10편의 논문을 꼽더라도, 심지어 물리학이라는 제한을 두지 않고 고르더라도 20세기의 중요한 문헌에 반드시 포함될 논문들이다. 덧붙이자면, 이 세 편의 논문은 모두 원래 독일어로 쓰여졌다. 20세기 초반 독일 과학의 위용을 상징하는 듯하다.

물리학 분야에서 20세기에 인간이 발견한 여러 가지 획기적인 것들을 떠올려보자. 물질의 구조, 원자핵, 초전도, 우주 팽창, 쿼크…. 그 결과 지금 우리는 트랜지스터와 레이저를 발명하고, 원자폭탄을 만들었고, 원자력 발전을 이용하며, 빅 뱅 우주론으로 이 우주를 이해하고 있다. 이 중에서 이종필 박사가 꼽은 것은 원자핵과 트랜지스터, 우주 팽창과 우주 배경복사의 발견이다.

원자핵의 발견은 물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커다란 진전이다. 이로서 원자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었고, 원자핵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쿼크로 이어지는 물질의 근본 구조에 대한 연구는 모두 원자핵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주 팽창과 배경복사의 발견에 의해 빅 뱅 우주론이 확립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그 자체를 물리학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론적 기반으로 삼으면서부터다. 그리고 우주의 진짜 모습을 확인한 것이 바로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관측한 것과 빅 뱅의 직접적인 흔적인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를 발견한 것에 의해서다. 이로서 우리가 우주를 진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이 물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잘 보여주는 것이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초전도 현상을 규명한 바딘, 쿠퍼, 슈리퍼의 논문이다. 특히 바딘, 쿠퍼, 슈리퍼의 논문은 초전도라는 놀라운 현상을 설명했을 뿐 아니라, 양자역학을 통해서 물질을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그 가치가 크다. 더구나 이 논문은 게이지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진다는 아이디어가 구현되어 있는 셈이어서 이론적으로 더욱 가치가 크다.

와인버그의 논문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제시한 논문이다.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은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이 세상에 관해,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 거의 모든 현상을 성공적으로 기술하는 '거의 모든 것의 이론'이니 이 논문이야말로 20세기 물리학을 총 결산하는 논문이라 할 만하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원자를 이루는 전자기력과 핵을 이루는 강한 핵력, 별이 빛나는 원리가 모두 이 논문에서 제시한 표준모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논문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실험을 통하여 이론의 거의 모든 부분이 정밀하게 검증된 20세기 물리학의 금자탑이며, 현재 인간 이성이 성취한 최대의 성과다. 한편 말다세나의 논문은 20세기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길이다. 아직 이 우주에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명하는 데 말다세나의 논문이 그 단초를 제시해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10가지 주제... 20세기 역사를 보는 한 단면

이런 책에 늘 따라붙는 이야기는 과연 여기 꼽힌 10편의 논문이 얼마나 적합한가 하는 점일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리스트란 있을 수 없다. 저자도 자신이 선정한 10편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고, 서문에 "여기 선정된 논문들에 대해서 모든 과학자들이 100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이 리스트를 처음 선정할 때부터 옆에서 본 사람으로서, 내가 보기에 이 리스트는 물리학자의 내적 논리에 충실한 리스트다. 그러니까 이종필 박사와 같은 이론물리학자가 꼽을 만한 10편의 논문들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앞에서 말했듯이 이 리스트는 중요한 논문의 랭킹이라기보다는 현대물리학의 중요한 주제 10가지를 고른 것에 가까운데, 그래서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분야별로 안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물리학의 분야별로 논문이 안배되어 있다. 바로 물리학자의 관점이다. 통계물리학 분야에서도 한 편을 고르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그런 맥락이다. 그래서 이 10편의 논문을 선정한 데 대해 나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재미있는 점은, 여기 실린 10편의 논문 중 노벨상을 수상한 논문이 의외로 적다는 것이다. 이중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5편의 논문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서이긴 하지만, 노벨상과 같이 권위가 있는 상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이 유일한 잣대가 될 수 없다는 하나의 예가 되겠다.

이 논문들이 현대 물리학의 중요 주제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이 책은 20세기 물리학의 주요 역사를 개괄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물리학이 20세기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20세기 역사를 보는 한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논문들은 시기적으로도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대단히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원 논문을 현역의 물리학자가 직접 설명하는, 그러니까 아주 정통적인 방법으로 20세기 현대 물리학을 일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입니다.
*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씀, 사이언스북스 펴냄, 2012년 8월, 400쪽, 1만6000원



물리학 클래식 - 물리학의 원전을 순례하다

이종필 지음, 사이언스북스(2012)


태그:#물리학, #이종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