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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1] 맞벌이를 하는 A부부는 흔히 말하는 기분파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공연을 관람하고 1년에 한 번은 꼭 해외여행을 간다.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사는 편이다. 둘이 벌어도 이렇게 쓰다 보니 연금은커녕 저축도 많지 않고, 집도 아직 전세에 살고 있다. 여유가 없어 슬하의 두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지는 못하고 공립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다. 양가 부모님은 '돈도 좀 모으고 집도 사야 하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며 은근히 핀잔을 주신다.

[상황 2] 맞벌이 B부부는 결혼할 때 아예 32평 집을 샀다. 일단 집부터 장만해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주변 충고에 따른 것이다. 노후준비를 위해 연금도 부부 각각 50만 원씩 100만 원씩 붓고 있다.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이 맞벌이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기에 두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 맞벌이로 번 돈을 나보다는 가족과 미래를 위해서 쓰며 살고 있다.

열심히 살았는데 더 쪼들리는 상황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바뀌면 가정의 소득은 줄어든다. 하지만 고정지출이 많은 가정은 더 이상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곳이 없게 된다.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바뀌면 가정의 소득은 줄어든다. 하지만 고정지출이 많은 가정은 더 이상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곳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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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두 가정에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를 돌봐주던 친정 부모님의 건강이 악화돼 더 이상 아이를 돌봐줄 수 없게 된 것이다. 맞벌이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두 가정. 결국 부인이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부인의 퇴직 이후 A와 B 부부 중 누가 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까.

A부부는 기분파다 보니 평상시 씀씀이가 컸다. 그러나 이런 과소비는 소득이 줄어들게 되면 나의 의지로 줄이거나, 안 쓸 수 있는 소비성 지출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버는 돈이 적은데 해외여행이나 명품가방을 사지 않는다. 쓰고 싶은 데 쓸 수 없다는 상실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A씨 가정은 그간 저질렀던 과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 부인의 퇴직 때문에 생긴 소득 감소에 대처할 수 있다.

B부부는 상황이 다르다. B부부는 과소비를 하지 않았지만 고정지출을 엄청나게 늘려놨다. 집을 살 때 받은 대출금, 노후 연금, 아이들 사립초등학교 비용 모두 고정지출이다. 과소비는 의지로 줄일 수 있지만 주거·교육·저축은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살고 있는 집을 줄이기 어렵고, 이미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공립초등학교로 전학시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소득은 줄었는데 평상시 과소비라고는 하지 않고 살아 왔기에 아무리 가계부를 들여다봐도 지출을 줄일 곳이 없다. 손해를 보더라도 그나마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연금이라도 깨서 모자라는 생활비에 보탤 가능성이 크다. B부부는 억울하기 그지없다. 과소비도 하지 않고 맞벌이를 하면서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소득이 감소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맞게 된 것이다.

장기 지출 결정할 때는 한 사람 소득을 기준 삼아라

맞벌이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이런 비용을 감당하는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재무적으로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다.
 맞벌이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이런 비용을 감당하는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재무적으로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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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를 하고 있다면 부부 소득을 합산해 '우리집 수입'이라고 정해놓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소득이 소득의 기준선이 되면 모든 지출의 상한선도 따라서 올라간다. 소비성 지출이나 문화생활비도 외벌이보다는 많이 쓰겠지만 큰돈이 필요한 주거·교육비 지출도 기준이 올라간다. 집을 살 때 25평이 아닌 32평을 선택하게 되고, 노후연금은 20만 원이 아니라 50만 원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맞벌이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사교육비 지출도 과감해진다.

맞벌이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이런 비용을 감당하는 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겉으로만 보면 재무적으로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다. 맞벌이는 육아라는 변수로 인해 부인이 직장으로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따라서 맞벌이는 장기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지출을 결정할 때 부부 소득의 합산이 아니라 한 사람 소득을 의사결정의 기준선으로 잡아야 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소득이 중단되는 위기상황이 닥친다면 높아진 소득기준에 따른 높은 지출비용은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

특히 일회성 소비 지출이 아닌 장기간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 예를 들어 집을 사는 데 필요한 담보대출·노후 연금·아이들 사교육비를 단순히 지금의 소득기준에 맞춰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지출은 과소비와 달리 줄이고 싶다고 해서 줄일 수 있는 성질의 지출이 아니다. 2~3년만 내는 돈이 아니라 10년 이상 꾸준히 나가는 지출이기 때문이다.

장기 불황의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특히 맞벌이를 하는 가정의 경우 한 사람이 퇴직을 하거나, 소득이 급감하는 경우 대처가 가능한지 반드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차라리 과소비를 했다면 대처는 쉽다. 그냥 과소비는 줄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일려야 줄일 수도 없고, 앞으로 10년 이상 지출해야 할 장기고정지출이라는 애물단지를 안고 있다면 지금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지금 별문제 없다고, 우리집 재무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다. '썰물이 되면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혹시 우리 집이 알몸으로 수영을 하고 있는 상황은 아닌지,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시민기자는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교육활동가 및 생활경제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푸른살림 카페 : cafe.naver.com/goodsalim)



태그:#지출, #소득, #돈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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