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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간간이 노을이 지는 사진을 찍곤 했다. 하지만 그런 사진들은 순식간에 삭제되기 일쑤였다. 카메라의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찍은 사진들은 블로그 공개는커녕 컴퓨터에도 담을 수 없는 졸작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 찍기 어렵다는 일출 사진보다도 석양을 담은 사진이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출 사진이야 새벽잠 쫓아가며 장비를 챙기고 렌즈를 맞춰야 하는 생고생이 동반되기에 시간적으로 느긋한 석양 사진보다는 더 수고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석양 사진을 일출 사진보다 더 값지냐고, 강력한 항의에 직면할 수 있다.

소래 포구가 수도권에 있어서 그런지 이런 풍경이 가능한 것 같다.  갯벌 위에 정박중인 소형 어선 위로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을 뚫고 나온 붉은 노을빛. 2009년 여름경에 촬영했다.
▲ 소래포구 소래 포구가 수도권에 있어서 그런지 이런 풍경이 가능한 것 같다. 갯벌 위에 정박중인 소형 어선 위로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을 뚫고 나온 붉은 노을빛. 2009년 여름경에 촬영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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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번 자전거여행(2012년 여름) 때, 울릉도 서면 태하에서 정말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했었다. 사실 울릉도는 일출도 유명하지만 낙조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당시 나는 울릉군 북면에 있는 천부라는 곳에 베이스 캠프를 차려 놓고 있었는데 잠시 도동항 쪽에 일이 있어서 그곳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용무를 마친 후, 다시 천부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그 시간에 그 유명한 울릉도의 낙조를 본 것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그 붉은 기운이 바다를 감싸고 서서히 섬을 감싸고 올 때의 그 미묘함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그 광경을 천부행 버스를 타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시골버스에서 바라보는 그 황홀한 울릉도의 석양이란!

느긋하게 시골버스를 타고 가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석양의 감흥은 엄청나게 큰 울림을 주었다. 지금 다시 울릉도를 간다고 하면 당장 태하로 달려가서 노을부터 만나고 싶을 정도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당시 내가 버스를 타고 있었기에 그 아름다운 광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버스가 막차였기 때문이었다. 아쉬움 그 자체였다.

섬이 많기로 유명한 완도이기에 저런 아담한 여객선들의 운항이 빈번하다. 운이 좋았는지, 난 꽤 낭만적인 장면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 완도의 석양 섬이 많기로 유명한 완도이기에 저런 아담한 여객선들의 운항이 빈번하다. 운이 좋았는지, 난 꽤 낭만적인 장면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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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사진이든 석양 사진이든 우리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기다림의 의미는 좀 다를 것 같다. 일출을 기다릴 때는 무언가 용솟음치는 자신감을 시간에 담으려고 한다면, 석양을 기다릴 때는 과거의 반성과 미련을 시간에 담으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런 감흥들이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단순한 감성적 감정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도시의 원초적인 자극에 만성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그런 감흥들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대자연 앞에 자기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닌가.

대자연에서 석양이 머무는 시간은 매일 같이 있지만, 우리 삶에서 석양이 머무는 시간은 딱 한 번 일지 모른다. 한편, 그 석양은 차후 30년 후에 올 수도 있고, 내일 당장 올 수도 있다. 우리가 일출 시간은 체크를 하지만 일몰 시간에는 비교적 둔감한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그 석양을 천천히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내일 당장 석양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반성과 미련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석양이 머무는 시간은 아쉬움이 영그는 시간인 것이다. 석양을 바라보면서 그 동안의 아쉬움들을 어둠 속으로 털어버리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태그:#여행과인생, #노을,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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