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거스 히딩크 감독(66, 안지 마하치칼라)이 입국했다. 4일 오전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 위촉식에 참석한 그는 오후에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해 올스타전 기자회견과 'TEAM 2002' 공식훈련을 했다. < 2002 월드컵 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 2012 > 경기를 앞둔 5일 오전, 히딩크 감독은 tvN <백지연의 피플 INSIDE>에 출연해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로서의 활동과 올스타전에 임하는 각오, 10년째 이어지는 한국 사랑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된 거스 히딩크 감독.

2013 평창동계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된 거스 히딩크 감독. ⓒ 정혜정


히딩크 감독이 "어제 공식훈련에서 2002년 대표팀 멤버 대부분을 만났는데, 무척 흥분됐다"고 입을 열자 진행자 백지연은 2002년 당시 가장 기대가 컸던 선수가 누구였냐고 물었다.

"이름을 말하기가 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모든 선수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헌신적이었습니다.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선수들도요. 하지만 하나의 예는 들 수 있습니다. 안정환 선수. 2001년 우리가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탈리아 AC 페루자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팀의 실력은 중간 정도로 메이저는 아니지요. 어쨌든 그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선수라,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월드컵에 나갈 정도의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이런 훈련이 익숙지 않은 그는 힘들었을 텐데도 그 혹독한 훈련을 다 해냈습니다."

어제 안정환을 만나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히딩크 감독은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서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살도 빠졌지만 조금씩 체력을 쌓아가기 시작했죠. 안정환은 이탈리아에서의 선수 생활로 약간의 자만심에 빠져있었지만 저는 그를 월드컵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도전하게 한 겁니다. 그가 이 도전을 받아들임으로써 월드컵에서 몇 번의 결정적인 골을 넣을 수 있었죠."

"모든 선수를 존경합니다. 그가 열정적이라면"

히딩크 감독은 2001년 1월 처음 훈련을 시작했을 당시 한국 선수들의 열정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집중력도 높았고 시키는 것을 다 해내는 헌신적인 자세를 보고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키우기 시작했다.

 ‘2002 월드컵 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 2012’ 에서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 전 당시 세레머니를 재현한 박지성 선수와 히딩크 감독.

‘2002 월드컵 대표팀 초청,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전 2012’ 에서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 전 당시 세레머니를 재현한 박지성 선수와 히딩크 감독. ⓒ tvN


"지금은 박지성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처음 박지성을 봤을 때 그가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선수이기는 하나 엄청난 실력가는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그는 놀라운 의지력이 어떤 성공 사례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좋은 케이스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숨은 보석 박지성을 발견한 히딩크 감독. 선수의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히딩크 감독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히딩크 감독은 "내 역할은 모든 선수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존경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저는 모든 선수를 존경합니다. 그들이 열정적이라면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알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면 그 한계보다 조금 더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없애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5%, 10%, 15% 더 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각 선수의 한계와 능력을 파악해야 하고 이것을 한 팀으로 묶는 역할을 하죠."

선수 생활 15년, 감독은 30년 차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수장을 맡아 4천만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한 히딩크 감독. 이후 그는 호주·러시아·터키의 국가대표 감독,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첼시 FC(잉글랜드) 등 명문팀 감독으로 '히딩크 매직'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가 감독으로 명성을 쌓는 데에는 프로선수시절 체육교사로 활동한 것이 도움됐다. 1967년 21세 나이에 네덜란드 지역 프로팀 '데 그라프샤프(De Graafschap)'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히딩크 감독은 자신을 "엄청난 실력을 갖춘 선수는 아니었지만 괜찮은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네덜란드 리그와 미국 리그에서 활동한 히딩크 감독은 많은 감독 아래서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22살 때부터 다이어리에 '감독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저는 프로선수이면서 체육교사였습니다. 불우한 가정의 청소년과 비행 청소년을 지도했는데 이 경험은 나중에 선수들에게 활용할만한 많은 가르침을 줬습니다. 젊은 체육교사로서 예민한 성격을 가진 소년, 소녀들을 다루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이 경험은 나중에 코치로서의 큰 장점이 되었죠. 아이들을 다루는 것과 선수들을 다루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의 차이점이라면 선수들에게는 언제나 카메라가 따른다는 것뿐, 기본적인 역학은 다 똑같습니다."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히딩크 감독은 21살에 프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해 15년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마흔 살에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첫 감독을 시작한 히딩크 감독은 55세, 한국 국가대표 감독이 돼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다시 썼다. 성공한 감독, 히딩크. 그는 감독과 선수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하냐는 질문에 '선수'라고 답했다.

"단순하게 직접 뛰는 것이 제게 더 기쁨을 줍니다. 가르치는 것은 선수로 뛰는 것을 대신하는 것뿐입니다. 결국에 선수들이 노는 것이죠. 아이들이 노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게 바이올린이든 발레든 축구든 야구든, 무엇이든 노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장애인을 위한 꿈의 구장을 짓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히딩크 감독. 그래서였을까.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시각장애인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공간, 히딩크 드림 필드(Hiddink Dream Field)를 짓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시각장애인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공간인 히딩크 드림필드(Hiddink Dream Field)를 짓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시각장애인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공간인 히딩크 드림필드(Hiddink Dream Field)를 짓고 있다. ⓒ tvN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과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이 사랑을 어떻게 갚을지 고민했죠. 그때 저의 연인인 엘리자베스가 '축구라는 아름다운 세계 외에 다른 세계가 있다'며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불우하고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우리가 공감해야 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치른 도시들에 축구장을 설립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림 필드는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와서 놀 수 있는 공간입니다. 놀아야죠. 아이들은 반드시 놀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눈이 불편해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002년 월드컵 유치도시에 드림 필드 설립이 다 된 지금, 또 다른 드림 필드 설립요청이 들어오고 있어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3년 출범한 히딩크 사회복지재단은 2008년 충주성심맹아원을 시작으로 포항·수원·전주·울산·광주·부산·대구·대전·목포·순천 순으로 히딩크 드림필드를 건립하고 있다. '드림 필드 10호'까지 개장했고 현재 전남 순천에 '드림 필드 11호'를 세우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한 감독 생활 유지할 것

"한국에 올 때마다 따뜻한 목욕을 하는 것 같다"는 히딩크 감독. 4천만 국민에게 뜨거운 추억을 안겨준 태극전사들의 리더 히딩크 감독에게도 2002 한일 월드컵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는 듯했다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는 1~4년 사이에 (한국과의) 관계가 시들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희미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 분들과 월드컵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아직도 흥분합니다."

 트레이드마크인 어퍼컷 세레머니를 보여준 히딩크 감독

트레이드마크인 어퍼컷 세레머니를 보여준 히딩크 감독 ⓒ tvN


은퇴 여부를 묻는 백지연의 질문에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고 어린 선수들에게 늙고 지루한 할아버지로 안 보인다면 계속할 것"이라며 "언제나 사람들의 느낌을 읽으려고 한다. (선수들이) '저 못되고 짜증 나는 늙은이 또 왔네'라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은퇴는 안 하겠다.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답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어퍼컷 포즈를 요구하는 백지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포즈를 취하며 "거요?"고 답한 히딩크 감독. 한 번 더 부탁하자 "나는 벌써 했습니다. 찍었나요? 카메라 감독님, 찍었나요?"라고 웃으며 다시 한 번 카메라를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어퍼컷만큼이나 확실하고 유쾌했던 히딩크 감독의 토크쇼 출연, 히딩크 감독의 한국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알찬 시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히딩크 백지연 피플인사이드 박지성 안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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