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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돔싸이, 강에서 멱감고 있는 여인. 라오스 사람들에게 강은 삶의 터전이다.
 우돔싸이, 강에서 멱감고 있는 여인. 라오스 사람들에게 강은 삶의 터전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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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북서부에 위치한 우돔싸이. 고급 호텔을 돌아서서 반대편 시장으로 들어간다. 여기도 먹을거리는 별로 안 보인다. 아, 나는 시장이 옆에 있어야 생존이 가능한데… 우돔싸이는 하루만 머물고 가야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게스트하우스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배낭을 멘 어깨가 아파오지만 조금 더 내려가 보자 싶어 발길을 옮기니 싼야부리에서 보던 그런 시장이 보인다. 온갖 채소와 과일, 고기 뭉텅이와 도너츠까지. 어떤 것들이 있나 대충 둘러보고 다시 게스트하우스가 모여 있는 쪽으로 내려온다. 시장 위치는 확인했고 이제 지금까지 둘러본 게스트하우스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판단이 안 선다. 아까 주인이 없던 게스트하우스에 한 번만 더 가보자 싶다.

로비 안으로 들어가 사람이 없냐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역시 묵묵부답. 장사를 하려는 건지, 마려는 건지… 옆에 있는 약국에 들어가서 게스트하우스에 사람이 없냐고 물었더니 약국 주인이 나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간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약국 아줌마에게 당신이 이 게스트하우스 주인이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1층 방을 둘러보고 2층 방도 보여 달라고 했다. 테라스와 창문이 붙어 외관이 시원해 보이는 2층 방이 마음에 든다. 선풍기, 온수, TV가 있는 방이 하루 6만킵(약 9000원). 3일을 묵을테니 깎아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한다.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리고 생각해봐도 여기가 마음에 드니 어쩔 수 없다. 201호 방에 묵기로 결정하자 주인아줌마가 노트에 이름, 국적, 여권번호를 적어달라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도시를 이동했지만 한 번도 여권번호를 요구한 숙소는 없었는데, 새삼 라오스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시장에서 만난 소녀와 거리의 아이들

우돔싸이 농랭시장.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흡사하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라오스 시장은 여행 내내 나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우돔싸이 농랭시장.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흡사하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라오스 시장은 여행 내내 나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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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던 사과로 배를 채우고 좌판이 밀집되어 있던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주말이라 그런지 중간 중간 비어있는 좌판이 많다. 일단 한 바퀴 휙 둘러보고 고기 꼬치가 있는 쪽으로 간다. 할머니에게 대나무통을 가리키며 "카오(밥)"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봉지를 열어 보인다. 괜찮다고 손을 내젓는데도 밥을 조금 떼어 주시기에 맛을 보고 "쌥라이(맛있다)"라고 말했다.

반찬을 둘러보며 고기가 안 들어간 것으로 달라고 하니 물김치를 가리키신다. 봉지밥과 봉지반찬을 사서 물건이 없는 좌판에 자리 잡고 앉는다. 젓가락을 꺼내 밥을 먹고 있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사바이디(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묻지도 않은 "커이 뺀 콘 까올리(나는 한국사람이에요)"를 외친다.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내가 밥을 먹고 있던 좌판에 채소를 가져온 소녀가 전을 펼친다. '낑'이라는 학교를 다니는 '끗'이라는 이름의 13살 소녀. '끗'은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줄 수 있지만 '끗'이 묻는 말에는 내가 답해줄 수가 없다. "커톳, 파싸라오, 보 카오자이(미안해, 라오어, 잘 몰라)"를 외치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수밖에… '끗'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래, 괜찮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힐 줄 아는 너의 모습에 나는 오히려 기쁘다.

순박한 라오스 아이들. 초롱한 눈빛과 해맑은 웃음을 잊을 수 없다.
 순박한 라오스 아이들. 초롱한 눈빛과 해맑은 웃음을 잊을 수 없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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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걸어가 본다. 지도를 따라 움직이다 보면 지도상의 표기와 실제 이름이 일치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지도 안의 세계가 내가 갈 수 있는 거리의 전부다.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길은 애초에 발을 옮기려는 마음을 먹지 않게 된다. 나는 정해지고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곳에서도 안정된 것을 추구하려하고 무언가 과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듯해 아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자기위안이라 말할지라도 소심한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먼저 웃으며 인사할 수 있다는 것, 참 소중한 발전이다.

어디든 길은 통하겠지 싶어 새로운 골목길로 들어가 본다. 점점 좁아지는 길을 걷고 있는데 아이들이 나타난다. "사바이디"하고 인사하니 "사바이디"하고 대답한다. 아이들이 따라온다. 남자아이 둘, 여자아이 둘. 한 남자아이가 호기롭게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악수를 하자 옆에서 콧물을 흘리고 있는 다른 남자아이도 악수를 청해온다. 1970~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 지나가면 "헬로우"하면서 아이들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을 것이다. 아이들의 미소가 아름답다. 사람이 태어나면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게 되는데 우리는 점점 타인을 경계하도록 가르친다. 세상이 험해진 탓을 누구에게 돌릴까마는 낯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저 환한 미소가 그리운 때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에게 저런 미소를 보여줄 수 있을까.

결혼식 피로연에 가서 라오스 전통춤을 추다

땡볕 아래 서너 시간을 걸었더니 땀이 줄줄 흐른다. 숙소로 들어와 씻고 빨래를 넌다. 시원하게 책이나 읽을까 싶어 게스트하우스 앞 망고나무 벤치로 간다. 벤치에 앉아 아는 라오말을 총 동원하여 주인 딸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영어로 나에게 결혼식을 같이 갈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확인차원에서 라오말로 '낀동(결혼식)'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세상에나, 물을 것도 없이 나야 완전 땡큐지.' 당연히 가고 싶다고 대답을 하자 아저씨가 여자들은 치마를 입는다며 나에게 치마가 있냐고 묻는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곳에서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책에서 보기도 했지만 어쩌랴, 치마가 없는 것을. 루앙프라방 야시장에서 산 바지로 갈아입고는 이게 나의 파티복장이라며 어색하게 웃는다.

결혼식 피로연장 입구에서 신랑 신부와 가족들이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결혼식 피로연장 입구에서 신랑 신부와 가족들이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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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아줌마, 아저씨를 따라 예식장소로 들어서니 입구에서 신랑과 신부, 가족들이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주인아줌마가 신랑 신부에게 축하인사를 건넨 뒤 나를 소개하기에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한다. 입구에 있는 상자에 축의금봉투를 넣고 식장으로 들어가는 주인부부를 뒤따라간다. 1500석은 될 넓은 홀이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찬다. 음식이 차려진 원형테이블에 숙소주인 부부와 친구 부부들과 함께 둘러앉았다. 알고 보니 스님 주재 하에 서로에게 복을 빌며 팔에 실(맏캔)을 감아주는 쑤콴의식은 아침에 끝나고 지금 행사는 결혼식 피로연 같은 것이었는데 아무려면 어떠랴, 라오스 결혼식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인 것을…

▲ 라오스 결혼식 신랑 신부가 전통춤을 추고 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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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와 가족들이 앞에 나와 기념촬영을 하고 악단의 반주와 노래에 맞춰 신랑, 신부가 춤을 춘다. 그 뒤 원하는 누구나 앞쪽으로 나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데 손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몸을 살랑살랑 움직이는 라오스춤은 참 얌전하다. 그 사이 신랑 신부는 양주와 잔을 들고 테이블을 돌며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고, 사람들은 축하인사와 덕담을 건네며 그 술을 마신다.

신랑 신부가 테이블을 돌며 하객들에게 술을 나누어 주면 하객들이 축하인사를 하며 그 술을 마신다.
 신랑 신부가 테이블을 돌며 하객들에게 술을 나누어 주면 하객들이 축하인사를 하며 그 술을 마신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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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아줌마도 예쁘게 차려입고 왔기에 옆에 있는 아줌마 친구들을 함께 가리키며 라오스전통의상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남'이라는 전통의상이 예쁘다고 했더니 시장에 가면 나도 살 수 있다고 말해준다. 신랑 신부의 가족들이 대각선으로 된 띠를 매고 있기에 저건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패비앙'이라고 한다.

원형 회전테이블에 그득하게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고 아줌마, 아저씨가 친구분들과 춤을 추러 나가려는데 나도 같이 나가자고 한다. 엉겁결에 뛰쳐나가 손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나도 같이 춤을 췄다. 부끄럽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노래가 바뀌자 젊은 사람들 위주로 나가서 이번엔 행대로 도열하여 왔다갔다 춤을 춘다. 신나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다가 주인아저씨의 신호로 식장을 빠져나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야시장에서 아줌마가 작은 아이스크림콘을 사서 내민다. 하늘엔 별, 손엔 아이스크림. 서로가 별말 없이 걸어가는 이 길, 행복하다.

푸탓사원에 올라 한 눈에 바라본 우돔싸이

푸탓사원의 황금빛 위용. 사원이 있는 곳은 지대가 높아보이지만 10분도 안돼 우돔싸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이 펼쳐진다.
 푸탓사원의 황금빛 위용. 사원이 있는 곳은 지대가 높아보이지만 10분도 안돼 우돔싸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이 펼쳐진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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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는 늘 맞춰놓은 알람시간보다 일찍 눈을 뜬다. 간단히 짐을 챙겨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푸탓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나무가 우거져 있다. 높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 큰 불상을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우선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치고 자세히 보니 스님 3명이 모여 있다.

한 명이 영어로 말을 걸어오기에 한국말을 당신이 한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한국말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는 루앙프라방에 있다가 이곳으로 왔는데 한국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며 그 말밖에는 모른다고 한다. 내가 비엔티안에서 만난 '룬'이라는 스님의 고향도 우돔싸이라고 했더니 어느 절에 있냐고 묻는다. '왓짠'이라고 하니 생각하는 눈치다. 폰카메라에 저장된 룬의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니 그도 룬스님을 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인연이. 신기하다. 그의 이름은 '색'. 그러나 이름보다는 닉네임인 '반'이 통용된다고 한다. 비엔티안에 돌아가서 룬을 만나면 반을 만난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돔싸이 푸탓사원의 불상. 불교국가인 라오스에서 사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돔싸이 푸탓사원의 불상. 불교국가인 라오스에서 사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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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과 인사를 나누고 찬찬히 절을 둘러본다. 큰 불상, 그리고 큰 불탑. 밤에 푸르스름한 녹색빛으로 보이던 곳이 이곳이었구나. 루앙프라방의 푸시산 만큼의 높이는 아니더라도 이곳도 고도가 높아 우돔싸이의 전경을 제법 시원하게 볼 수 있다.

모든 일은 다 우연으로 일어난다. 비엔티안에서 룬을 만났던 일, 싼야부리로 가는 길에 술리냐를 만났던 일, 우돔싸이에서 결혼식을 함께 한 일… 내가 그 길로 걷지 않았다면, 다른 날에 그곳으로 갔었다면, 볼만한 것이 없다고 일찍 떠났다면 다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후회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동해온 것과 다른 시간, 다른 경로, 다른 지역을 택했다 해도 이런 일을 경험할 것이라 예상할 수도 없었기에 애초 후회란 것도 없을 것이며, 다른 선택으로 인한 또 다른 경험과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우연이자 선택이고 운명처럼 느껴진다.

라오스, 그 축제같은 죽음의 의식

주황색 승복이 특징적인 라오스의 스님들. 화려한 장식물과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죽음의 의식은 마치 축제같다.
 주황색 승복이 특징적인 라오스의 스님들. 화려한 장식물과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죽음의 의식은 마치 축제같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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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둘러보고 슬슬 내려갈까 싶은데 한쪽의 작은 집 같은 공간에 스님들이 있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무 밑에 앉아 지켜보고 있으니 돈다발로 화려하게 치장한 금색 물건들을 실은 차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여러 개의 금색 가마가 내려지고 선물 꾸러미 같은 것도 놓인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마주보고 앉자 나이가 많은 한 남자가 염불 같은 것을 왼다. 장례식인가 싶어 물어보니 장례식은 아니고 그 후의 의식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네 사십구재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사람이 봉지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하늘 위로 던지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줍기 시작한다. 가서보니 사탕과 세모나게 접은 돈이다. 땅에 구멍을 파고 사람들이 돈을 넣자 그 위에 돈으로 장식된 당간을 꽂고 삼삼오오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의식은 마무리된다. 그렇게 두 시간 가량을 지켜보다가 절을 내려왔다. 이곳은 자신들의 잔치나 의식에 나같은 이방인이 있어도 꺼려하지 않는다. 그저 신기해할 뿐 '사바이디'하고 말하면 '사바이디'하고 웃어줄 뿐이다.

비록 옆에서 지켜볼 뿐이지만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나도 일원이 된 것 같아 외롭지 않다. 어제는 결혼이라는 또 다른 시작을, 오늘은 죽음이라는 삶의 의식을 본다. 이틀 사이에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큰 경험 두 가지를 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들 수 있는 것, 죽은 사람이 남기고 간 선물이다.

돈으로 치장한 당간을 세우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
 돈으로 치장한 당간을 세우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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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친구들, 아름다운 반딧불이를 가슴에 간직하다

시장에 들러 도너츠 3개를 사서 입에 물고 숙소로 돌아왔다.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나무가 흔들리고 먼지바람이 불어온다. 널어놓았던 빨래를 걷어왔더니 비바람이 금세 그친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베트남인 '아쌍'이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자고 한다. 먹구름이 이렇게 끼었는데 그냥 가자고? 걱정 많은 나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우산을 챙겨 나온다.

아쌍과 같이 사업을 하고 있다는 베트남인 친구 '프앙'과 함께 푸탓사원에 다시 올라간다. 칸막이마다 종이가 놓여져 있는 함 앞에서 아쌍이 나에게 깡통에 꽂혀있는 나무 중에서 하나를 뽑아보라고 한다. 나무 끝에 적혀있는 번호는 1번. 아쌍이 1번에 해당하는 종이를 꺼내 읽어보더니 나의 운이 매우 좋다고 한다. 돈도 많이 벌고 미래가 잘 될 것이라고 한다. 혼자 사원에 왔을 때도 보았던 함이긴 하지만 뭐하는 것인지 몰라 그냥 지나쳤는데 젓가락점괘 같은 것인가 보다. 점을 믿지도 않으니 굳이 점을 보러간 적도 없지만 점괘가 좋다니 기분이 좋다. 특히나 지금은 여행 중이니 아쌍의 말이 왠지 큰 위안이 된다.

푸탓사원을 가리키는 이정표.
 푸탓사원을 가리키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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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내려와 아쌍이 태국음식을 먹어봤냐고 묻기에 못 먹어봤다고 대답하니 먹으러 가자고 한다. 나는 이미 저녁을 먹었다고 했더니 그럼 맥주를 먹자고 한다. 늘 앞을 지나다니기만 하던 음식점에 들어가니 비어라오(라오스맥주)와 꼬치안주가 테이블에 차려진다.

술은 안 먹는 편이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비어라오를 한 번은 먹어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아쌍이 꼬치안주는 중국음식이라면서 권하기에 나는 채식을 한다고 했더니 다른 꼬치를 권한다. 두부 같아 한입 먹었더니 하얀 어묵 꼬치다. 베트남어로 건배는 '므이'. 라오스 사람들처럼 맥주에 얼음을 넣어먹는다. 한국에서도 맥주 한 잔을 놓고 2, 3시간씩 앉아있는 게 내 특기인데 여기서도 내 신공을 발휘하려 했더니 아쌍이 절반은 먹어야 한다며 줄여놓은 잔에 맥주를 붓고, 또 붓고 한다.

곧 두 사람이 주문한 태국음식이 나온다. 간장 같은 소스를 뿌린 밥과 채소 삶은 것, 돼지고기, 달걀 반 개가 접시 위에 놓여져 있다. 얼마 안 있어 삶은 채소와 밥만 놓인 접시가 하나 더 내 앞에 놓여진다. 특별히 나를 위해 고기를 빼달라고 주문한 모양인데 정말 고맙지만 막 저녁을 먹고 나온 터라 배가 터질 것만 같다. 그래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일단 채소만이라도 먹어 치운다.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끝낸 뒤 아쌍에게 밥을 포장해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식당 주인에게 말해 스티로폼 상자에 포장을 해준다. 비닐봉지 하나 얻어서 대충 싸가려고 했는데 아쌍의 배려심이 고맙다.

베트남인 아쌍, 프앙과 함께 먹은 음식. 나를 위해 고기를 뺀 음식을 주문해주고 채소를 더해 밥을 포장해준 그들의 배려심이 고맙다.
 베트남인 아쌍, 프앙과 함께 먹은 음식. 나를 위해 고기를 뺀 음식을 주문해주고 채소를 더해 밥을 포장해준 그들의 배려심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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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다른 길로 내려간 터라 게스트하우스로 가기 위해 다시 사원을 오른다. 길은 어둡지만 아쌍의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길을 걷는다. 구름이 끼어 어제보다 적긴 해도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그런데 눈앞에서 무언가 또 반짝. 저게 뭔가 싶어 자세히 보니 반딧불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본다. 밝은 흰색 불이 점멸하듯 반짝인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아쌍이 라오말로는 '힝허이', 베트남말로는 '돔돔'이라고 가르쳐준다. 나는 한국말로는 '반딧불이'라고 한다고 알려준다. 점멸하는 반딧불이를 보며 황홀한 마음에 "I'm so happy"라고 소리쳤다. 모처럼 먹은 맥주로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고 하늘에서도 반짝, 눈앞에서도 반짝. 새로운 인연, 기분이 좋다. 숙소로 돌아와 포장된 밥을 휴대하기 편하게 봉지로 옮길까 하고 열어보니 밥 위에 삶은 채소가 또 놓여져 있다. 그 마음이 고마워 뚜껑을 다시 덮고 가방에 그대로 넣는다. 우돔싸이, 처음 들었던 무미건조한 느낌이 사라지고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은 도시다.

덧붙이는 글 | 공정여행 응모 기사입니다. 필자는 2012년 5월 한달 동안 '비엔티안-싼야부리-루앙프라방-우돔싸이-농끼에우-쌈느아-씨엥쿠앙(폰사반)-방비엥-비엔티안'의 경로로 라오스를 여행하였습니다. 위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우돔싸이에서 겪은 경험을 적은 것입니다.



태그:#라오스, #우돔싸이,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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