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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MBC노동조합 정영하 위원장과 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21일, MBC노동조합 정영하 위원장과 노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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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2일)로 145일째다. 104년 만이라는 최악의 가뭄 속에 계속되고 있는 'MBC 역사상 최장기 파업'은 한국 사회의 갈증을 해결할 단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장기파업의 피로감과 30억 원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8명 해고, 서울과 지역 도합 100여 명의 대기발령 등에 따른 어려움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 21일 MBC노동조합 정영하 위원장을 만나러 노조 사무실을 찾았지만 노동조합의 분위기는 여전히 밝아서 의외였다.

"조합원들 결속도는 더 올라가고 있어요. 원래 파업이 장기화되면 월급도 안 나오고 지치기도 해서 이탈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저희 파업은 회사가 지칠 만하면 도발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열 받아서 결속도가 낮아질 수 없어요."

인터뷰 전날 MBC 사측이 발표한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 해고가 불덩이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파업한 지 5개월이기 때문에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정신적인 분노나 파업에 대한 진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더 세게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국민들이 떡, 쌀, 라면 등 보내줘... 파업 대열 단단하다"

정 위원장은 초기 550명으로 시작한 파업이 5개월째 진행되는 동안 770명으로 늘어난 이후 이탈자 없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파업 대열이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현재 진행 중인 'MBC구하기 100만 서명 운동'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응이에요. 요즘 날이 매우 더워서 노조 집행부에서는 조합원들이 힘들까봐 저녁시간대 2시간 정도만 서명을 받자고 얘기했는데, 조합원들이 오히려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며 의욕을 보여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늘렸어요. 정당한 파업에 대한 탄압 때문에 조합원들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걸 반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5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아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정 위원장은 "상당히 많이 있을 것"이라고 걱정하면서도 조합원들이 파업에 대한 의지가 강해 집행부가 흔들릴 얘기를 잘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조합원의 분노가 높다는 걸 알 수 있는 게, 정 힘들면 파업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도 집행부한테 '파업을 그만하면 안 되냐'고 하면서 불만을 털어 놓거나 핑계도 대고 할 텐데, 그런 게 없어요."

결국, 파업을 장기간 견고하게 유지시킨 배후는 '사측의 도발'과 이를 조장한 정권에 있다고 정 위원장은 지적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코드가 맞아서 파업을 안 했냐'고 비난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기본적으로 대화가 통하면 파업을 할 필요가 없어요. MBC 구성원들은 방송하려고 들어온 사람들이고, 구성원들이 대개 언론고시 통과를 위해 공부만 하면서 평온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극단적인 행위를 기피해요. 어쩔 수 없을 때 마지막에 쓸 수 있는 저항이 파업인 거죠."

또한, '파업의 배후'인 국민들의 응원도 빼놓을 수 없다. 노조에서 진행하는 서명에는 하루 2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고, 파업을 후원하는 국민들의 '희망택배' 물품들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기자님께 드린 인삼드링크를 포함해서 여기 노조 사무실에서 우리가 먹는 건 다 사 먹는 게 아니에요. 다 국민들이 보내주신 거예요. 떡, 쌀, 라면은 기본이고, 요즘 더워지니까 건강음료 많이 보내시더라고요. 한약도 지어서 보내시고요. 무슨 세미나에서 한의사분들이 얘기를 한 모양인지 한의원 40~50군데서 한꺼번에 오더군요.(웃음)"

인터뷰가 있던 21일, MBC구하기 서명운동이 벌어지던 5곳 중 한 곳인 강남역에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도 서명전을 진행하는 조합원들에게 시민들이 비타민 음료, 아이스티 등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조합원은 지나가던 시민 분이 돈을 주시기도 하는 등 열띤 응원의 반응들이 많다고 귀뜸했다.

"문제 어렵게 만든 건 김재철 사장... 민심이 움직여야 파업 풀려"

21일, 강남역에서 진행된 MBC구하기 100만 명 서명전. 지나가던 한 시민이 파업을 지지한다며 노조원에게 비타민음료 두 상자를 전하고 있다.
 21일, 강남역에서 진행된 MBC구하기 100만 명 서명전. 지나가던 한 시민이 파업을 지지한다며 노조원에게 비타민음료 두 상자를 전하고 있다.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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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묻는 질문에 정 위원장은 사태를 악화시킨 김재철 사장에 대해 먼저 비판의 말을 꺼냈다.

"MBC 문제의 해법을 어렵게 만든 건 김재철 사장이에요. 노사 간에 서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상황 정도는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8명을 해고하고 69명을 (서울에서) 대기발령시키고, 각종 고소 다 남발하고 가압류, 가처분 등 악덕 고용주가 있는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아봤거든요. 그러니까 사태를 풀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 돼버린 거죠.

대국민적으로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내놓지 못할 상황도 김 사장이 만들어 줬어요. 채용도 계약직으로 마구잡이로 하고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MBC의 재산을 이용하고, <무한도전>까지 건드렸잖아요. 이런 사람을 우리가 용서한다고 국민들이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서 풀기 어려운 미로를 만든 정부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노조가 대화를 거부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노조는 문제제기는 할 수 있지만 해임권이 없으니 실행력은 없죠. 김재철 사장이 스스로 걸어 나가거나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움직이거나 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근데 스스로 물러나는 건 저희도 포기했고 이 정권에 대한 기대도 아예 포기를 했어요. 사태가 이렇게까지 왔는데 이 사람을 계속 해임시키지 않는다는 건 이 사람을 비호하겠다는 거잖아요."

정 위원장은 어렵게 내던진 파업이라는 '돌직구'가 힘을 받기 위해서는 민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돌파구는 국회에 거는 기대이고, 국회에 거는 기대라는 건 결국 국민 민심에 거는 기대예요. 국민 민심이 세게 일어나지 않으면 국회도 안 움직여요. 서명전도 그런 차원에서 국민들과 스킨십을 하면서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며 하는 거구요."

정 위원장은 이번 19대 국회가 국민의 민심을 받아들여 MBC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들을 앞으로 진행하는 상황을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국민 '스킨십'도 이어 간다며 6월 3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진행될 콘서트 소식을 전했다.

"지금까지 5개월 동안 파업 관련해서 전통적인 방식의 집회부터 새로운 개념의 집회까지 한 번씩 다 해본 것 같아요. 아직 구체적인 상은 안 나왔지만 그런 것들을 종합하는 의미의 콘서트를 준비 중이에요. 단순히 웃고 떠들고 노래듣고 즐기고 하는 것 보다는 좀 더 의미를 부여한 내용으로 채우려 합니다."

MBC노동조합 사무실 한쪽 벽에 정영하 위원장을 응원하며 조합원들이 쓴 손글씨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MBC노동조합 사무실 한쪽 벽에 정영하 위원장을 응원하며 조합원들이 쓴 손글씨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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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하 MBC 노동조합 위원장은 1993년에 입사해 MBC에서 기술 부문을 책임지는 베테랑 엔지니어다. MBC프로덕션이 제작에 참여한 '코믹 멜로 스릴러'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2006년 개봉)에는 MBC의 최정예 인재풀이 가동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사운드도 그가 맡았다. <무한도전>을 포함한 수많은 MBC 프로그램이 그의 손을 거쳐 음향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런 그도 이번 파업으로 해고자가 되었지만 그냥 웃어넘긴다.

"다른 조합원은 파업 때문에 월급을 못 받아 생계가 어렵지만, 저는 해고를 당해 퇴직금을 받았어요. 그래서 좀 나아요. 다른 조합원들이 문제죠.(웃음)"

MBC를 사랑하는 방송인들이 콘서트와 플래시몹 등 다양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파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각종 탄압이 이들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말 그대로 '코믹 멜로 스릴러의 달콤 살벌한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세상의 가뭄을 해갈할 비 소식이 기다려진다.


태그:#정영하, #MBC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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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 만들고 글을 쓰고 지구를 살리는 중 입니다. 통영에서 나고 서울에서 허둥지둥하다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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