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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안준철(순천 효산고)의 교육 에세이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문학동네 펴냄)는 그 제목 때문에 경험 많고 노련한 저자가 신임 교사들에게 지혜를 나누어주고자 쓴 '편지'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말하듯 저자는 교직 경력 26년 차인 지금도 매해 아니 매순간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교직 지침서로서 이 책을 구입하는 새내기 교사는 어떤 의미에서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저자는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담은 계몽서로서 책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직 생활의 시행착오를 줄일 비결이나 노하우는 이 책에 담겨 있지 않다. 

저자는 일관되게, 자신이 그러하듯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아마 5년도 채 남지 않은 정년퇴임 때까지 그가 끝내지 못할 고민 속으로 동료 교사들을 초대하는 이유는 '교육적 상상력을 통한 소통의 즐거움'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그런 거 알게 되거든 저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사랑한다' 말하는 한 교사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책 표지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책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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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금 이 책을 구입하는 새내기 교사가 실망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늘날 교사들의 책상 위에는 NEIS 운영자 매뉴얼, 성적처리 매뉴얼, 교원능력개발평가 매뉴얼, 생활지도 매뉴얼, 생활기록부 입력 매뉴얼 등이 꽂혀 있다.

교사의 직무가 표준화된 매뉴얼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고등학교 교사의 고민이 '메가스터디 1타 강사의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아이들에게 내 수업이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가?'로 향하는 입시 체제 하에서, 그는 선배 교사로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하자'라고 말한다. 그것도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그러니 새내기 교사티를 빨리 벗고 싶어 이 책을 구입한 교사라면 자신의 기대가 빗나갔다는 생각이 금세 들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기대의 어긋남에서 기대하지 않은 유익을 얻게 된다. 아니 기대 이상의 감동과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교사 생활을 하며 느낀 그간의 외로움에 대해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될 것이다. 그 감동과 위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한 교사를 만나는 데서 온다. 그렇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특정한 지식이나 연륜 혹은 교훈적 나레이션이 아니라 진실된 사랑으로 충만한 교사 안준철을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독자가 만나게 될 그 사람은, 교권이란 '아이들을 사랑할 권리'에 다름 아니라고 믿는 순정주의자이다. 그는 50대 후반의 나이에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02 선생님, 교권이 뭐예요?)

그 사랑 때문에 여느 교사라면 아이의 불손함에 분노를 터뜨리고 끝날 상황에서 나무라는 순간 자신에게도 실수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면 아이에게 먼저 사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컨대 화를 터뜨린 뒤 다시 찾은 교실에서 특별실로 수업 간 아이들을 만날 수 없으면텅빈 교실 칠판에 "오늘 수업시간에 화를 너무 많이 내어 미안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라 적어두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사과로 교사의 권위를 잃기보다 인간적 허물과 미숙함을 인정함으로 아이들과 만나기가 한층 쉬워진 자신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18 제 이름은 알아서 뭐해요?, 25 첫 수업시간부터 아이들에게 욕을 하다)

26년차 중견 교사의 마음을 울리는 '교단 일기'

그의 사랑이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독자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사랑이 진실됨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놀라운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새내기 교사이든 교단을 밟은 지 오래된 교사이든 이 책을 자신의 책장에 친근한 벗처럼 간직할 필요가 있는 것은 진실된 사랑이 주는 감동과 전염 효과 때문이다.

그러니 그를 담임으로 뒀던 아이들이 정작 그가 담임일 때는 무던히 속을 썩인 녀석들조차다음 해에 복도에서든 식당가는 길에서든 그와 마주치면 일제히 손을 흔들고 '그리움'의 눈빛을 보내는 것도 놀랄 게 없다. (에필로그 사랑의 대상이 아닌사랑의 주체로)

이 책 어디에서도 저자는 자신과 아이들의 소통과 상호작용에 대해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을 만나기 두려울 때가 있다"고 인정한다. 솔직함에 독자가 민망할 정도로 부끄러운 실수까지도 생생하게 고백한다. (06 아이들을 만나기 두려울 때가 있다)

그렇다. 이 책은 한 중견 교사가 아이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교단일기이다. 그 일기의 매 페이지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들, 기다림, 여유, 유머, 긍정 등을 만나게 되는데 이 모두가 그의 사랑이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들이다.

교사 안준철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300명 가까운 학생을 앞에 두고 20분간 이야기한 방식과 내용을 읽노라면 교사의 전문성이란 본질적으로 소통 능력에 있음을 알게된다.

어느 학교에서나 독서와 동아리 활동에 관심을 가지라고 강조하지만 입시를 위한 창의적 체험활동의 일환으로 언급하는 교사나 듣는 학생에게 '독서'와 '동아리'는 '죽은 언어'일 뿐이다. 그러나 교사 안준철은 그 동일한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300명의 아이들과 살아있는 대화를 한다. 가르치는 기술의 핵심 수단인 질문과 비유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사람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여 메시지를 마음에 이르게 하는 그는, 그 누구보다 전문성을 갖춘 교사이다. (10 교사는 어딘가에 상상력의 우물을 숨기고 있을 때 아름답다)

그가 쉬는 토요일을 앞둔 어느 금요일 종례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인 자기 자신을 만나보라며 '혼자서 길 떠나기'를 권유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나는 저자와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줄 때가 있다. 그러나 교사 안준철만큼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말한 적은 없다. 그는 그저 성품 좋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데 있어 '장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13 네 자퇴원 아직 내 서랍 안에 있다)

그의 수업은 또 어떤가? 전문계 고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하는 그가 돈 매클린의 '빈센트'라는 팝송으로 수업을 하면서 빈센트 반 고호가 겪었던 고통을 이해시키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효과적인 질문과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여 일반계나 특목고 학생들도 피상적인 번역에 그치기 쉬운 팝송 가사를 텍스트로 삼아  진정한 독해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23 노래 <빈센트>로 슬픔을 수업하다)

"아이들이 더 자신을 좋아한 채 집에 돌아가길..."

그러나 교사 안준철을 안준철답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에 함축되어 있다.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왔을 때 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하여 집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사랑뿐입니다."
(에필로그 사랑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주체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교사 되기를 열망하며 사범대나 교육대학에 재학 중이던 시절 우리가 꿈꾸었던 교사상과 만나게 된다. 초임 학교에 발을 디디면서 마음 속 순정과 낙관, 순수한 사랑을 빨리 버려야 실제 학교의 현실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던 우리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믿음의 근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젊은 날의 순정과 교육적 소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교사라면 오늘날의 교육 풍토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 적이 많을 것이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시대착오적 교사가 아닌가' 고민하면서 말이다. 이 책은 그 모든 교사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힐링 효과를 선물한다.

덧붙이는 글 |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26년차 교사 안준철의 시나브로 교실 소통법, 안준철 저, 문학동네 펴냄, 2012.05.14, 1만3800원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 26년차 교사 안준철의‘시나브로’ 교실 소통법

안준철 지음, 문학동네(2012)


태그:#안준철, #교사, #교육, #소통,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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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였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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