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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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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아프리카 방랑'이라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유롭게 발 닿는 대로 아프리카를 이리저리 떠도는 여행자를 상상했다. 어느 정도는 맞았다.

저자는 낡은 배낭 하나 짊어지고, 트럭을 타거나 버스를 타면서 혹은 배를 타고 아프리카 전역을 방랑하듯이 여행했으므로. 보통의 여행자는 그런 여행을 꿈꾼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괜찮은 여행이었구나, 기대를 하면서 결코 얇다고 할 수 없는 책을 펼쳤다. 800쪽에서 고작 10여 쪽이 빠지는 분량이었다, <아프리카 방랑>은.

언젠가 혹은 가까운 미래에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를 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펼친 여행기는 기대와 전혀 달랐다. 낭만적이면서 목가적인 아프리카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TV에서 화면을 통해서 보던 아프리카 여행지의 모습과 동떨어진, 아프리카의 슬프고도 서러우면서 무섭기조차 한 현실이 사진이 단 한 장도 들어가지 않은 여행기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아프리카 여행을 위한 지침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으나,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둘러본 위험 가득한 아프리카

저자는 2000년 초반에 이집트를 출발점으로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가 거친 나라는 수단, 에티오피아, 케나, 우간다, 탄자니아,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1960년대에 저자는 말라위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저자는 독재에 저항하는 동료 교사의 망명을 도왔고, 추방당했다. 이후에는 우간다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랬기에 그에게 아프리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30여 년을 훌쩍 넘긴 뒤에 다시 찾은 아프리카는 젊은 시절 그가 머물렀던 아프리카와 달라졌다.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더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가난과 굶주림, 질병과 난민들이 우글거리는 땅, 아프리카. 여전히 외국의 구호단체에 기대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은 피폐하고 가난하고 어두웠다. 한때 그가 아이들을 가르쳤던 학교는 낡을 대로 낡아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고, 번성했던 도시들은 어둡고 더러워지고 가난한 이들로 흘러 넘쳤다.

저자는 아프리카를 찾는 낭만적인 여행자들과 달리 아프리카 사람들 틈새에 끼어서 버스를 타고, 트럭을 타고, 기차를 타고 아프리카를 돌아다녔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저자는 느린 걸음으로 위험이 가득한 아프리카를 둘러보았다.

탄자니아는 관광 천국으로 변했다. 마오주의자, 이념가, 혁명가, 카스트로주의자 등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동무들이 이제 일자리를 찾아 호텔로 몰려들었고, 관광객을 태운 사파리 차를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몰고 다녔다. 탄자니아에서 사자나 코끼리가 주변에 없는 마을은 운이 없는 마을이었다. 타보라가 그랬다. 그런 마을들은 초라한 학교와 열악한 도로, 그리고 100년 전에 독일인들이 놓은 철로, 한때 중앙선이라 불렸던 철로가 들쑥날쑥 운행되는 것에 만족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 412쪽

그런데 모든 도시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빈민가는 어디에서나 똑같은 빈민가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계획은 없고 즉흥적 임시방편만이 있었다. 낡은 건물을 수리하는 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생각에 적당히 새 건물이 세워졌다. 하지만 건물들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는 까닭에 아프리카 도시에서는 모든 건물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는 다르에스살람에서 묵을 만한 호텔 목록을 갖고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한 호텔을 언급하기가 무섭게 "문 닫았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호텔에 대해서는 '불탔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고, 또 다른 호텔은 "셴지"(더럽습니다)라고 했고, 또 다른 호텔은 "문을 닫고 영업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 428쪽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아프리카는 미래가 없는 암울하기만 한 거대한 땅덩어리로 느껴진다. 독재자와 그들의 추종자는 해외 구호단체의 지원금이나 물품을 빼돌려 배를 채워 점점 더 뚱뚱해지고 있으나, 굶주려 비쩍 마른 빈민들은 여전히 배를 곯고 질병에 시달리면서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이라 이름 붙었지만... 여행기 아닌 현장보고서

<아프리카 방랑>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는 것이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나름대로 풍요롭게 살고 있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은 이들은 그 땅을 식민지로 삼은 침략자들이 아니던가. 식민지가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진정한 독립은 이뤄지지 않은 채 거대한 땅에는 어둔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다.

저자는 그런 아프리카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여행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건 여행기가 아니라 현장보고서다. 이런 여행이 생생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여행을 할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우아하게(?) 사파리를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아프리카만 보고 올 자신도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저자를 흉내 내서 버스를 타고 혹은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를 돌아볼 자신은 더더욱 없다.

범죄가 만연한 아프리카는 총을 든 강도 역시 빈번하게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럭을 타고 여행하던 저자는 강도들이 노리는 것이 그의 목숨이 아니라 신고 있는 신발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발을 벗어주면 그만이겠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죽이고, 신발을 벗겨가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땅으로 선뜻 발을 내밀 수 있겠는가.

나는 분노를 가라앉히려 애쓰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의 자제분들이 여기 와서 가르치면 어떨까요? 이 나라는 그들의 조국입니다. 그들이라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여기에서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말라위에서 깨달은 결론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만이 아프리카를 바꿀 수 있었다! 기부자와 자원봉사자, 은행가 등 다른 사람들은 이상주의자이더라도 본의 아니게 아프리카를 더 깊은 늪에 밀어 넣은 장본인이었다. - 545쪽

저자는 자신이 30여 년 전에 한 때 살았던 아프리카가 자신이 살던 때보다 더 피폐하고 더 굶주리고 더 가난해졌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부패한 관리들은 공공연하게 뇌물을 요구하고, 굶주린 이들은 생존하기 위해 더 그악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이 필요하지만, 그건 남들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찾아야 하는 것.

2000년 초반이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다. 당시 저자가 둘러보았던 아프리카와 지금의 아프리카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아프리카, 하면 기아에 시달리면서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떠오르고, 피가 튀는 내전이 떠오른다. 어쩌면 저자가 둘러보았던 당시보다 더 열악한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오래도록 <아프리카 방랑>을 읽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뒤로 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읽었던 것이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이 책, 최근에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괜찮았다.


아프리카 방랑 Dark Star Safari

폴 서루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2011)


태그:#아프리카 방랑, #폴 서루,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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