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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살충제가 투입된 충남 홍성군 금마면 ㅇㅇ마을 상수도 급수탑
살충제가 투입된 충남 홍성군 금마면 ㅇㅇ마을 상수도 급수탑 ⓒ 홍성신문 정명진

지난 달 20일, 충남 홍성에서 마을주민 220여 명이 이용하는 물탱크에 농약을 살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이 알려진 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물탱크 농약사건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겪었던 학교 급식소 살충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1979년 9월 어느 날, 누군가 학교 급식소 대형 국솥 등에 살충제를 뿌려 놓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농어촌급식시범학교로 선정돼 점심때마다 매일 찐빵과 끓인 분말 우유 또는 미역국, 삶은 달걀 한 개씩을 급식했다.

초라했지만 급식소가 따로 설치돼 있었고, 이곳에서 학교 선생님은 물론 전교생 500여 명이 당시 돈으로 월 500원을 내고 점심을 해결했다. 매월 밀린 급식비를 놓고 졸업식 전까지 담임선생님과 전쟁을 벌여야 했지만 이마저 없었다면 오지 학교에서 태반은 점심을 굶어야 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누군가 500여 명의 학생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솥과 조리대 등에 맹독성 농약을 뿌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급식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기 직전 농약 냄새가 진동을 하자 신고해 별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일로 당시 초등학교 동창들은 졸업여행은 물론 가을소풍, 가을운동회가 없는 6학년을 보내야 했다. 학교 측이 별다른 설명 없이 모든 행사를 전면 취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부분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학교에는 경찰이 상주했고 전국 밤 뉴스에 우리 학교가 연일 등장했기 때문이다.

급식소에 농약을 뿌린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어느 날인가는 수업시간에 경찰이 교실로 들어와 담임선생님에게 수사협조를 요청하더니 나를 불러냈다. 경찰은 학교 급식소 뒤로 데려가서는 움푹 파여 있는 흙 발자국 위에 내발을 대보라고 요구했다.

의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검정 고무신을 신은 발과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경찰은 이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는 전날 학교 농기계실에 들어간 이유와 시간을 캐물었다. 사건 전날 나는 한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급식소 옆에 있는 농기계실에서 모종삽을 꺼내왔고 간단한 작업을 한 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었다.

경찰은 문제가 된 살충제가 농기계실에 보관돼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다그쳐 물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경찰은 농기계실로 나를 데려가더니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을 하는 사복 경찰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고 매우 위협적이었다.    

"문이 어떤 상태였지? 잠겨 있었어?"
"모종삽 바로 옆에 농약이 있었는데 못 봤다는 게 말이 돼? 똑바로 말 안 해?"
"나오면서 농기계실 문에 철사 고리는 채웠어?"
"교실로 가봐. 오늘 물어본 얘기는 누구한테도 해서는 안 돼. 알았지? 왜 대답 안 해?" 

그날 경찰의 취조 내용은 담임선생님은 물론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선명히 각인돼 있다. 이 일을 겪은 이후 교과서에 등장하던 '인상 좋게 웃고 있는 선한 경찰관'의 모습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던 며칠 후 갑자기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조회가 열렸다. 교장 선생님이  한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게 됐다고 소개했고, 해당 선생님이 조회대에 올라 짧게 인사했다. 이날 조회는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는 사이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 선생님이 조회대 앞에 세워져 있던 경찰차에 형사들과 함께 타는 모습을.

그로부터 며칠 후 학교 안에는 '급식소에 농약을 살포한 범인이 ○○○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곧 겨울이 찾아왔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이 인권'의 현실을 돌아보는 어린이날 되길

 학교의 두발 단속
학교의 두발 단속 ⓒ 권우성

홍성 물탱크 농약사건을 접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사건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았다. 예상외로 해당 뉴스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당시 보도기사에 따르면 경찰은 급식소 조리실에 농약을 뿌린 범인이 해당 학교 교사라고 발표했다. 해당 교사가 자신이 벌인 일라고 자수했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는 오랜 시골벽지 근무에 대한 불만과 자기보다 나이 어린 교감의 잦은 꾸지람, 그리고 동료교사들이 자신을 이상성격자라며 따돌리는 데 앙심을 품고 '골탕 먹이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관련 기사에는 '교사인 그가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이들을 왜 분풀이의 제물로 삼으려했는지의 여부는 좀 더 면밀한 조사와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 선생님의 범행동기를 30여 년이 지나서야 확인한 셈이다.

놀란 만한 일은 그 이후의 뉴스였다. 같은 해 10월 말경 몇몇 신문은 속보를 통해 '살인 및 재물손괴혐의'로 구속 송치된 해당 선생님이 '담당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으로 석방됐다'고 짤막하게 전하고 있었다. 

담당 검사는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하고도 해당 교사를 왜 구속한 지 한 달 만에 석방시켰을까. 왜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이 '충격적'이라고 하면서도, 해당 교사의 석방 이유를 전하지 않은 것일까. 당시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은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에게 사건 내용을 '쉬쉬'할 뿐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던 것일까.

오는 5일은 '90회 어린이날'이다. 1923년 제정된 '어린이날'은 한국판 '어린이 인권선언일'이라 할 만하다. 유엔이 '어린이 인권선언'을 발표한 때가 1959년이니 방정환 선생 등이 그만큼 진보적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 인권의 한국적 주소는 내가 농약사건으로 30여 년 전 만난 경찰과 교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리다는 이유로 윽박지르거나 교육적이지 않다는 자의적 판단으로 사실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관리와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린이 인권은 유보될 수 있다는, 그래서 일기검사를 할 수 있고, 두발자유화를 해서는 안 되는 현실의 모습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린이날. 단순히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는 하루가 아닌, 어린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아이들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어린이 인권 현실을 돌아보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


#농약#살충제#홍성#어린이 인권#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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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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