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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전망대, 외국 젊은이들에게 이데올로기 상징물인 DMZ상황을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칠성전망대, 외국 젊은이들에게 이데올로기 상징물인 DMZ상황을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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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DMZ 현황에 대한 설명을 좀 해 주세요."

캐나다 출신 원어민 선생님인 프란세스씨가 내게 건넨 말이다.

2007년 어느 날, '화천에 거주하는 원어민 선생님들에게 DMZ를 관광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화천교육청 원어민 담당 선생님에게 부탁했다. 이들이 원어민교사로 1년간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DMZ 현황을 비롯해 지역축제, 관광을 제대로 알게 하는 것 또한 공무원들의 의무 아니겠는가.

민통선을 출입하려면 사전에 군부대와 협의를 해야 했다. 대상이 외국인이면 그 절차가 더 까다롭다. 15일 전에 군부대에 여권사본 등 관련 서류를 보내 어렵게 성사시킨 DMZ 여행.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에서 온 20여 명의 원어민 선생들은 소풍가는 초등학생들처럼 기대에 부풀어 '땡큐'를 연발한다. 진즉에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군청에서 제공받은 버스를 이용해 커다란 고개를 수십 개 넘고 꾸불꾸불 산길을 돌아 DMZ견학을 위해 칠성전망대로 갈 때까지는 좋았다.

"이곳 전망대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잠시 후면 장교가 와서 (영어로)이곳 DMZ 현황에 대해 설명을 해 드릴 것입니다."

전망대에 도착해 되지도 않은 영어로 원어민들에게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서너 명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대충 알아듣긴 한 모양이다.

"지난번에 협의를 했던 화천군청 직원입니다. 외국인 통역 장교분이 어떤 분인가요?"
"어! 통역은 군청에서 같이 오는 것 아니었어요?"

나는 출입협의만 되면 당연히 통역장교가 대기하는 줄 알았는데, 군부대에서는 외국인들과 방문하면 당연히 통역과 같이 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주사님께서 통역을 해 주시면 되잖아요."

장교는 내가 대단한 영어 실력자인 줄 아는 모양이다. 아주 기초적인 영어회화도 머릿속에 있는 문법을 겨우 떠올려 더듬거리는 사람에게 통역이라니!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그 어려운 군사용어는 어떻게 설명하라고…. 결국 원어민 선생님들과 나는 철책 넘어 북한 지역만 쳐다만 보다 그냥 왔다. 분단 지역에서 한국전쟁의 역사적 배경과 지구상에 유일한 DMZ 현실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려주겠다는 의도는 그렇게 좌절됐다.

닌텐도에 얽힌 애피소드

이 조그만 기계가 내게 오기까지 참 많은 애피소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 닌텐도 이 조그만 기계가 내게 오기까지 참 많은 애피소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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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영어를 배우자, 그런데 이 나이에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주위에 물었더니, 문법을 제대로 알아야 말을 할 수 있다는 의견과 그 나이에 무슨 영문법이냐 많이 듣다보면 귀도 열리고 입도 열린다는 다양한 의견을 말했다. 결정은 당사자가 하는 거다. 그 중에 단문을 듣고 써 보는 게 효과적이다 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그래서 찾아낸 것 중 하나가 '영어 삼매경'이란 닌텐도 프로그램. 그런데 고가의 닌텐도라는 손바닥만한 기계를 사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이 날 짓눌렀다.

"당신 공부한다고 책 사다 놓은 것만 해도 한 트럭은 될 거다. 그런데 뭘 또 산다고?"

집사람에게 부탁을 해 봐야, 안 들어봐도 뻔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순간적인 어떤 충동에서인지 모르지만 살면서 일본어, 중국어, 영어책을 꽤 사다 놓았다. 집사람 표현처럼 한 트럭은 안 돼도 사다만 놓고 책장 한 번 넘기지 않은 책들이 꽤 많다. 이 시기에 어린 아들 녀석이 제 엄마에게 닌텐도를 사 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집사람의 성격은 내가 안다. 내가 뭘 요청해도 절대 안 된다고 하지만 아들의 요구는 결국 들어준다는 것을….

'기회는 찬스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들에게 제안했다. 아내가 승낙하기 전에 빨리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너 돈 얼마가지고 있니?"
"용돈 10만 원 있는데, 엄마가 5만 원을 안 보태 준대."

아들 녀석은 이르듯이 내게 말했다.

"그럼 말이지, 아빠가 5만 원 줄 테니까 우리 닌텐도 사자. 대신 우리 공동투자니까 아빠에게 하루에 한 번씩 빌려주기로 하는 게 어때?"
"그래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했고 공동투자로 닌텐도를 샀다. 그리고 아들 녀석은 게임팩을, 나는 영어 삼매경이라는 팩을 샀다.

"아빠 닌텐도 한번만 쓰자."
"좀 있다가 빌려줄게."

분명히 공동투자로 산 것을 녀석은 빌려주기를 자꾸 꺼린다. 하루에 한 번만 빌려 주기로 분명히 약속을 해 놓고... '이건 분명한 약속위반인 거다. 좋다. 투자비율이 있으니까 이틀에 한 번은 빌려 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3일이 지났는데 마치 제것인양 애지중지하면서 빌려주기를 꺼린다.

"이 녀석을 계약위반으로 확 고소해 버릴까"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법적 철차를 위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은 거다.

"차라리 안 쓰고 만다"라는 생각으로 닌텐도 사용을 포기할 즈음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듯싶다.

'쪽배축제에서 느낀 소감을 보내 주시면 5명을 선정해 닌텐도 한 대씩 드립니다'

화천군 나라축제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내 직책이 홍보담당이니, 이 정도의 소감은 멋지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공무원인) 내 이름으로 소감문을 써 닌텐도를 타 가면 지역주민들의 기회를 빼앗는 거다.

갈등...

'앗!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어느 날 자다가 생각난 아이디어. '집사람에게 쓰라고 하면 될 것을!'

새벽 3시에 투덜거리는 아내를 깨워 쪽배축제의 탄생배경, 관광객 참여 방안, 문제점, 그리고 해결방안 형식으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내일 낮에 써 줄게."
"마감이 내일까지인데 부탁 좀 할게요."

평소 쓰지 않던 존칭까지 써 가며 집사람에게 통사정했다. 다음날 아침 확인한 작품.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과 비교해 보니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드디어 발표일. 닌텐도 당첨자 명단에 올려진 김현숙이란 아내이름. 내가 살아오면서 이런 행복감을 느껴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

"어! 아빠, 이 하얀 닌텐도 어디서 난 거야?"

아들 녀석의 질문에 대꾸도 안했다. 아니 배신 때린 녀석에게 말해 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닌텐도를 가지고 듣고 받아쓰기를 참 열심히 했는데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구상한 것이 '원어민을 이용한 군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스터디그룹을 만들자!'

원어민 선생님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원어민 선생님이 내게 다시한번 영어공부의 목적을 묻는다면...
 원어민 선생님이 내게 다시한번 영어공부의 목적을 묻는다면...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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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나요?"

원어민 선생님은 나이 살이나 먹은 내가 젊은 직원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이 의아했나 보다. '아! 그건요. 내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공동투자해서 산 닌텐도를 빌려주지 않아서 쪽배축제 소감을 써서 닌텐도를 하나 받았는데, 영어가 잘 되지 않아서 여기 앉아 있는데요'라는 말을 영어로 옮기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쪽팔려서 못했을 것 같다.

5년이 지난 지금. 한번만 더 원어민 선생님이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느 산골마을에 70살 정도 보이는 촌로가 한국 전통한옥에서 (영어권)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면 참 폼 날 것 같아서입니다"라고….


태그:#영어공부, #닌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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