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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대표적 글쟁이 6명(고은태·박권일·이택광·진중권·한윤형·허지웅)이 오마이뉴스의 팀블로그 '리트머스' (http://blog.ohmynews.com/litmus)로 뭉쳤습니다.

리트머스는 SNS에서의 단편적인 말싸움이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상식'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2월 21일 오전 개관한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2월 21일 오전 개관한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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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이른바 '줄ㆍ푸ㆍ세' 정책이다. 박근혜 비대위장이 비록 지금은 앙뚱하게 딴소리를 하고 있지만, 처참하게 파탄난 이명박 정권의 '줄푸세' 정책은 원래 박근혜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명박 후보가 패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를 그대로 자기 공약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내가 아는 한 유시민씨만 이를 제대로 기억하고, 오래 전부터 문제를 제기해 왔다. (오마이뉴스 2009/3/17, 이명박 정부, 박근혜 줄푸세 공약 실천 중 http://goo.gl/P8PfZ , 한국일보 2010/11/15 유시민 "부자감세 원조는 박근혜의 줄푸세" http://goo.gl/wF136) 이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할 시점이 된 것 같다.

MB노믹스는 근혜노믹스

먼저 기억을 돕기 위해 줄푸세 당시의 보도로 돌아가 보자.

이 후보는 특히 박근혜 전 대표의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바로 세우자) 정책을 거론하며 "감세 문제, 규제를 풀자는 것, 기초질서를 잡는 문제 등 좋은 내용을 빨리 정리해서 당 정책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2007/08/27 이명박, "박근혜 줄푸세 공약 수용하겠다" http://goo.gl/gahOn )

승자의 약속은 실현되었다.

"(이명박 후보는)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 등 공약도 대거 수용했다. 박 전 대표의 대표공약이었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는 용어 자체를 공약에 그대로 반영하기로 했다." (매일경제 2007/09/30 , 李 공약 100개로 압축… `줄ㆍ푸ㆍ세`도 포함 2007/09/30 http://goo.gl/MbnBg)

당선자의 공약은 지켜졌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이 그 동안 펼쳤던 가장 중요한 정책이 아니었던가. 사실 부자 감세로 빈부격차 심화시키고, 전봇대 뽑기로 시작된 규제 완화로 대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장악하고, 경찰과 검찰을 사유화하여 국민에게 사법폭력을 휘두르는 것 외에 현 정권이 한 것이 또 있었던가?

이명박 표 공약은 정작 따로 있었다. 성장률 7%, 소득 4만 불, 7대 경제 강국을 달성하겠다는 이른바 '747 공약. 물론 이 공약은 집권 1년도 안 돼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계 경제위기 때문이라 둘러대나, 3.1%의 성장률은 자기들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 비웃던 참여정부 수준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4만 불 소득? 4년을 돌아 이제 겨우 참여정부 수준을 회복했을 뿐이다. 7대 경제 강국을 만든다더니, 이 정권 들어와 경제규모는 세계 14위에서 15위로 이전부터 외려 한 단계 떨어졌다.

사실 747 공약은 '경제정책'이라기보다는 '정치구호', 아니 자기 "임기 중에 주가가 5,000으로 오를 것"이라는 약속 못지않은 공상허언증에 가깝다. 22조짜리 4대강 삽질의 동기나 됐을까? 747은 '정책'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4대강 사업은 '정책'이라기보다는 그냥 '뻘짓'으로 보아야 할 게다. 실제로 MB노믹스를 결정한 것은 외려 박근혜가 기안한 '줄·푸·세' 공약이었다. 그것은 아주 구체적인 정책으로 진지하게 실현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눈앞에 그 결과를 보고 있다.

줄푸세가 빚어낸 참상

줄푸세 공약이 그 사이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각하 집권 4년을 맞아 특집으로 언론에서 무수히 보도된 것으로 안다. 그 중에서 하나만 인용하자. (노컷뉴스 2011/12/27 '줄·푸·세' 했더니…대기업·부자만 배불렸다 http://goo.gl/Sm7Ie)

MB정부 4년 동안 연평균 설비투자는 4.6%, 민간소비는 1.9%, 취업자는 19만8천 명 늘어났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연평균 설비투자가 5%, 민간소비 2.8%, 취업자가 25만3천 명씩 증가한 것에 비해 저조한 수치다.

'트리클 다운'도 없었다.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피용자 보수)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노동소득 분배율은 참여정부 말(2007년) 61.1%였으나 2010년에는 59.2%로 낮아졌다. 노동소득이 줄고 대신 기업의 이윤과 재산으로 돈 버는 사람들의 소득이 늘었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배율은 2007년 7.09에서 2010년 7.74로 상승했다. 부자의 소득은 늘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은 줄었다. 또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도 2007년 17.3%에서 2010년 18%까지 높아졌다. 중위소득 아래로 처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줄·푸·세'는 실패했다. 한밭대 조복현 교수(경제학)는 26일,"대기업 중심의 수출기업들이 경기 부양을 선도하도록 규제완화와 감세 정책들이 추진됐으나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는 맞지 않는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인구 5천만 명을 초과하는 강대국들의 경우 선진국 진입단계에서 수출규모를 줄이고 내수를 확대해 투자와 수요를 증대시켜왔다는 것이다. (중략)

수출주도의 경제성장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추진해 온 것이 급격한 물가상승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학)는 "수출실적을 높이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썼는데 이는 물가 상승을 불러와 한마디로 국민들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아 수출기업들에게 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여기에 총망라되어 있다. 이것이 지금 사회에 팽배한 반MB 정서의 원인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이명박 정권은 동반성장을 해야 한다며 '이익공유제'라는 다소 해괴한 내놨다. 물론 경제단체들이 거기에 응할 리 없다. 그 결과 "국민의 기대를 안고 출항한 엠비노믹스는 민생도 못 잡고 기업에도 외면 받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양극화라는 중병을 대일밴드로 치료하다가 대기업한테까지 외면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병 주고 힐링 캠프

위의 진단에서 한 가지 수정할 게 있다면, 줄푸세는 엠비노믹스가 아니라 실은 근혜노믹스였다는 사실이다. 각하는 특유의 근면함으로 잠 안 자고 열심히 수족을 놀린 죄 밖에 없다. 그의 공허한 뇌를 채워준 프로그램의 작성자는 박근혜. 이 모든 참상이 실은 그녀의 계획에 충실히 따른 결과일 뿐이다. 황당한 것은 지금 그 분이 취하는 포지션이다. 어느새 복지주의자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학회에서 열렬히 하이예크주의를 설파하던 학자가 다음 학회에선 열렬한 케인즈주의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지켜보는 황당함이랄까?

결국 자신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 사회가 중병에 걸리자, 그 책임을 슬쩍 MB에게 돌려놓고는 자신은 태연히 치유자 역할을 하는 셈. 한 마디로 병 주고 힐링 캠프 여는 격이다. 물론 정치인의 생각은 바뀔 수 있다. 생각에 오류가 있었다면, 당연히 바꾸어야 한다. 사실 복지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나, 비대위를 통한 혁신의 노력은 높이 평가해 줄만하다. 하지만 정치인이 자신의 생각을 180도로 바꾸었다면, 자신이 생각을 바꾼 이유를 유권자들 앞에 명확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정동영 의원을 평가해 줄만 하다.)

박근혜 비대위장이 할 일이 있다. 일단 자신이 주장하여 현 정권의 정책으로 받아들여진 줄푸세 공약이 완전히 잘못된 처방이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것이 지금 국민들이 당하는 고통의 뿌리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국민들에게 겸허히 사과해야 한다. 새누리당에선 통합민주당 의원들이 FTA에 관해 말을 바꾸었다고 비난해 왔다. 그 비난은 먼저 박근혜 위원장을 향해야 한다. 줄푸세 정책의 파급력이 어디 FTA보다 못하겠는가. '복지' 얘기는 이 인정과 사과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정권 말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배제된 책임"까지 졌다. 이제는 모든 게 각하 탓이란다.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각하에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각하의 공허한 뇌에 프로그램으로 입력되어, 근면하기로 이름난 그 분의 수족을 부지런히 움직인 것은, 바로 '줄푸세'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비대위장은 정말 줄푸세를 포기한 걸까? 그게 사실이라면, 공적으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그녀의 복지 담론도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태그:#박근혜, #줄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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