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철폐!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벽 한쪽이 감옥을 연상케 하는 포스터들로 도배되어 있어 들어설 때 사뭇 긴장됐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보는 사람마다 서로 따뜻한 인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아이고, 오랜만이에요"라며 사람들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서로에 안부를 건넸다.
한바탕 잔치가 열릴 듯 행사 준비로 떠들썩한 이곳은 서울시 종로5가 기독교회관. 14일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이 이곳에서 열렸다.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가 주최한 이 후원의 밤에는 범민련탄압대응공대위, 왕재산조작사건대책위, 국가보안법긴급대응모임이 참석했다.
후원의 밤 1부로 진행된 정치토크쇼는 박래군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집행위원장이 진행했고 이광철 변호사, 서강대 이호중 교수, 참여연대 안진걸 팀장이 손님으로 참여했다. '국가보안법'의 존재 유무와 실효성 등을 다룬 토크쇼는 게스트들의 말솜씨로 인해 참석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박 집행위원장의 '국가보안법은 네모다?'라는 질문에 세 게스트는 각각 특별한 답을 내놓았다.
"국가보안법은 '한'이다. 제가 집시법부터 온갖 혐의로 소환되고 구속됐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애국적 삶을 살아간 동지가 못 들어갔다니 한이다(웃음)." - 안진걸 팀장"국가보안법을 '사랑을 막는 법'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싶으면 (그 사람을) 알려고 한다. 그러면서 대화를 통해서 가까워진다. 그게 남녀 간의 사랑이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국가보안법은 남한과 북한의 소통을 막는 법이다. 사람들은 반민주, 반인권이라 하지만 반사랑 즉, 사랑을 막는 법이다." - 이호중 교수"국가보안법은 '쪽팔려'이다. 오늘도 각하께서 한미FTA 폐기서한을 전달한 것은 국격을 떨어트리는 일이라고 하셨다. 더이상 국격타령은 안할 줄 알았다. 본인이 국격의 손상이기 때문이다.(웃음) 요즘 박정근 때문에 <르몽드> 등 외신들과 인터뷰했다. 다들 하는 이야기가 '이게 왜 죄냐. 아니 왜 그런 것 때문에 왜 감옥 가냐'며 이해 못했다. 제가 그분들 앞에서 차마 쪽팔려서…. 각하 이런 것이 '국격의 손상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각하께서 '국격'이란 말이 무엇인지 몰라 이런 소리를 하나 싶다." - 이광철 변호사이어 "국가보안법이 왜 없어져야 하나"라는 질문에 이 변호사는 "웃자고 하는데 죽자고 덤벼든다"며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비로소 국격이 업그레이드가 된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필요없는 법이니깐 폐지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키리크스를 보니 진짜 간첩이 있던데 바로 김현종, 김종훈이다"라며 "그들은 한미FTA 협상 때 온몸을 던져 우리나라 정보 빼주고 미국의 불리한 것 막아냈다"고 말해 토크쇼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국가보안법 사문화됐지만 아직도 사람 잡는 법"
2부 행사로 진행된 콩트 공연은 후원의 밤을 더욱 들썩이게 했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구속자 시 낭송과 피해자 발언이 진행되자 웃음은 눈물로 바뀌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이기형씨의 시를 낭독한 김익씨는 10년 전 인터넷에 친북사이트 정보를 퍼왔단 이유로 구속되었던 양심수다. 그리고 재작년 재일조선인인 아내와 결혼한 후 달콤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외교통상부에서는 조선적도 법무부 판단에 따라 조선인민주의공화국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결혼한 후 달콤한 신혼생활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산산조각 났다. 국가보안법이 결혼생활마저도 막고 있다." 지난해 10월 14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법정 구속되었다가 지난달 1일 보석으로 풀려난 김은혜씨도 "국정원이 2004년에 남북대학생교류사업을 했다는 이유로 저에게 북의 지령을 받고 그런 단체를 만들지 않았냐고 했다"며 "당시 통일부 협정 아래 직원과 동참한 합법적 행사가 어느새 불법이 되어 북의 지령으로 목적에 따라 움직인 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설마 하지 않은 일로 유죄가 날 수 있나 했는데 겪어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며 "국가보안법은 많이 사문화되었지만 (아직도) 사람잡는 법이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왕재산 조작사건으로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김도경씨의 부인은 "갑자기 수십명의 국정원 수사관들이 들이닥쳐서 새벽까지 압수수색을 하고 사라진 지 7개월이 넘어가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의 의미를 조용히 되짚었다.
"국가보안법을 직접 겪은 우리에게 국가보안법은 가족파괴법이다. 남편이 구형받은 법정에서 '이명박 정권이 자신의 부패와 무능을 덮으려고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사건을 조직하여 수구세력이 유리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언제든지 택배회사 사람으로 위장해 들어와 감금하고 불법적인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국가보안법 망에서 풀려날 수 없다."이어 그는 "생각해보니 국가보안법은 사람의 생각을 구속하고 통제하는 법이지만 저들이 아무리 그래도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인신구속일 뿐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총·대선 있어 국가보안법 사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
피해자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회관은 숙연했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경원 전 사무처장이 보내온 편지'가 낭독되자 다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속자가 참 많긴 합니다. 국가보안법, 집시법, 노동관계법 등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재판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측근들은 아직 안 들어 오고 있습니다. 열심히 투쟁해서 독방을 많이 비워놔야겠습니다."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경우가 이명박 정부에서 늘어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30건이 넘지 않던 사건수가 2008년 40건, 2009년 70건으로 증가하다 2011년 10월에는 114건으로 4년 전보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광철 변호사는 "사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건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가 국가보안법 강화로 북을 적으로 돌렸으면 안보라도 튼튼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들은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어 사건은 더욱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무엇보다 2012년에 정권을 바꾸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양심수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23일에는 왕재산 사건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지속적인 탄원서 제출을 통해 국가보안법폐지운동을 계속 펼쳐나갈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김혜승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