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창당대회 봤어요? 나 이런 창당대회 처음이야."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7일 오후 3시쯤 서울 논현동 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에 도착해 매우 어리둥절해했습니다. '아니, 뭐 이런 데였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선 여느 창당대회에서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클럽을 닮은 이곳은 컨테이너 박스를 올려놓은 듯 꾸며졌고, 창고형 할인매장 비슷한 느낌을 줬습니다.
젊은이들이 맥주병 하나씩 들고 흥겨운 레게 음악에 맞춰 엉덩이춤을 추며 스탠딩 파티를 해야 할 것 같은 장소에서 웬 창당대회? 국정을 살폈던 고위직 공무원 출신들이 보기엔 영 어색하기 짝이 없었겠지요. 기실 이 콘셉트를 낯설어하는 건 이해찬 전 총리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긴말 하지 않았지만 "정말 낯설다"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아우~ 나만 촌놈이야"라며 자신의 드레스코드를 탓했습니다. 남들은 청바지에 캐주얼 모드로 드레스코드를 맞추고 왔는데 자신만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왔노라며 얼른 바바리코트에 하늘색 스카프를 둘렀습니다.
제법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한켠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던 걸 제외하면 대개는 커피와 쿠키, 머핀을 들고 스탠딩파티에 참석했습니다. 서서 얘기하다 삼삼오오 다리가 아프면 소파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자유로운 창당대회가 열렸지요.
좀 산만했고 행사가 길어 살짝 지루했으며, 행사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 떠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지만, 또 군데군데 쉼터가 부족해 다리가 당기기는 했어도 정말 이런 창당대회 콘셉트는 처음이었습니다. 스탠딩 파티로 창당대회를 치른 첫 번째 역사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주당과 합의 안 됐으면 규탄대회 될 뻔했어!"야권의 정치스타들이 한곳에 모이니 의당 기자들도 몰려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대화의 꽃이 피었습니다. 한 기자가 손학규 대표에게 "이런 창당대회 어떠냐"고 느낌을 물었습니다.
"재밌네! 창당대회 자체가 통합의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통합야당이 새로운 시대를 대변하고, 또 20~40대를 대변하는 것이니까 좋지요. 아픔과 좌절이 있어도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민생을 돌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회로 통합을 이뤄야지요."
손학규 대표의 말이 끝나니, 이해찬 전 총리가 말을 받았습니다.
"민주당과 합의가 잘 안 됐으면 이게 창당대회가 아니라 민주당 규탄대회가 될 뻔했어!"좌중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손학규 대표가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새로운 것을 자꾸 배워서 우리도 새로워져야지요. 아, 김대중 대통령께서 얼마나 젊어지기 위해 노력을 하셨어요. 마이클 잭슨을 불렀지, 아주 피나는 노력 끝에 정권교체를 이뤘잖아요. 변화와 혁신, 앞장서서 가야 한다고."최근 민주당이 언론에 '늙은 정당'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눈치였습니다. 젊은 분위기를 함께 섞어 새로운 정당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는 이런 비유를 했습니다.
"미국에 사이버대학이 생길 때 과연 캠퍼스 없는 대학이 성공할 수 있을까 했는데 10년 만에 학생이 25만 명 됐고, 교수가 2천 명이래요. 그걸 보면서 든 생각이 아 이제 우리도 사이버파티(온라인정당)을 할 때가 됐구나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시작하는 시민통합당은 반 사이버파티예요. 기성정당에 사이버파티 요소를 접목한 것입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선거운동이 무브온으로 시작됐고, 페이스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듯이 우리도 이제 그런 식의 새로운 정당이 될 수 있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보면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하여간 제일 힘이 있어요."이 전 총리의 수다가 무르익을 때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민주당과의 통합협상에 별문제는 없느냐는 것이었지요. 문재인 이사장은 "우리는 민주당과의 통합에서 일체의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오로지 시민참여와 혁신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이런저런 농을 자주 하는 손학규 대표의 장난기가 발동된 모양입니다.
"거, 자꾸 시민참여, 시민참여 하지 마세요. 유시민이 하는 건 줄 안다니까?" 모두 웃었습니다. 민주당과 통합을 위한 한시적 페이퍼 정당이지만 시민통합당은 창당선언문에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추진하는 혁신의 방향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첫째, 시민이 당원이고 당원이 시민이 정당이다. 둘째 SNS 기반의 소셜네트워크 정당이다. 셋째 젊은 세대와 여성이 주역으로 참여하는 정당이다. 넷째, 시민이 당지도부와 선출직 후보자를 직접 선출하고 정책을 디자인하는 정당이다. 다섯째, 지역의 시민자치에 기초한 분권형 정당이다.
이들은 앞으로 "정권교체를 실현해 민주주의와 인권, 민생과 복지, 생태와 성평등, 노동과 연대, 정의와 평등,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소망을 받들기 위해 시민통합당을 창당한다"며 "정당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고 온-오프가 결합된 활력 있는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정당정치의 근본적 혁신을 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여의도가 피할 수 없는 핵폭탄을 맞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창당대회를 둘러본 느낌은 살짝 '언발란스'였습니다. 행사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대개 참석자들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장년층이 많았고, 젊은층은 눈에 많이 띄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혹자는 "행사장만 혁신적인 게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민의가 SNS로 퍼져 나가면 금세 들불처럼 시민세력을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미 정치스타들은 그 변화의 출발을 안철수 돌풍으로 읽은 것 같습니다.
미리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철수 쓰나미에 기성정치권이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고 긴장하는 눈치입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또 제3신당 만들지 않겠다, 선언했음에도 불안해합니다. 안 원장이 두려운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의 실체는 안 원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안 원장 뒤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민군단, 그것이 기성정치권이 갖는 불안의 실체 아닐까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서로 다른 주제로 의원총회를 열었습니다. 정치권 관계자는 서로 다른 주제로 양당이 한날 의원총회를 하는 건 아마 처음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늘 어떤 의제에 대한 찬반을 논하는 것이지 전혀 다른 주제로 의원총회를 여는 건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한나라당은 7일 당을 없애니 마니 하며 지도부 다섯 중 셋이 사퇴했습니다. 그것도 한 날에 셋이 한꺼번에 관두겠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은 야권통합을 위한 의결절차를 밟았습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포함한 반발세력들이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지만, 그래도 고 하는 분위기입니다.
이걸 두고 정치권의 한 인사는 "여의도가 핵폭탄을 맞았다"며 "그것도 피할 수 없는 시민핵폭탄을 맞았으니 이 엄청난 혁신과 통합의 대세에 따라가지 않고 배겨날 자 어디 있느냐"고 허허 웃었습니다.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시민세력의 태동일까요? 여러분은 시민통합당의 출범을 어떻게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