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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35년을 알고 지내온 분이 계십니다. 35년 전 어느 봄날 처음으로 그분을 만났습니다. 까맣던 머리가 거의 빠지고 이마에 주름이 하나 둘 채워질 만큼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 세월이 안타깝게도 저는 그분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친하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그분과 친해져야 하지 않을까',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35년 동안 그다지 절박하게 느끼지 않았던 그분과의 관계를 새삼스레 새로 만들어가려고 하는 이유는, 내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아버지가 있듯 내 아버지에게도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내게는 할아버지였던 그분은 항상 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으시고 노인정을 다녔습니다. 두 살 터울의 고만고만한 손자들이 다리 주물러드린다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같이 TV 만화도 봐주시던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경상도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곁을 잘 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면, 밥상을 엎기도 하셨던, 자식들에게는 말 한 번 다정하게 건네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내 아버지가 자랐습니다.

언제나 내가 넘지 못하는 담... 그 이름은 아버지

가족사진.
 가족사진.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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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도 아이였을 때 다정한 아버지를 원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이었겠죠. 그리고 점점 자라면서 내 아버지는 냉정한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를 혼자 견디고 보듬으면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점점 닮아갔을 겁니다.

자식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자식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본인 뜻대로 식구들이 움직여야만 하는, 그런 아버지가 돼 갔습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가까이 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이 가려는 노력도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되돌아오는 건 어린 마음에 새겨지는 상처뿐이었으니까요. 아버지와 나는 분명히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담 너머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어린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어리광도 피우고 장난도 치고, 과자 사달라고 떼도 쓰고, 그래서 내 작은 손으로 아버지 큰 손가락을 잡고 동네 가게에도 가고 싶었습니다. 저 멀리서 날 보고는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내게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아버지가 있다는 걸 믿고, 세상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넘지 못하는 담 너머에 계셨으니까요. 그리고 그 담은 점점 단단해졌고, 아무도 그 담을 허물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는 그 담을 허물기 싫었습니다.

아버지, 그저 나에겐 엄마의 남편이었다

아버지는 긴 시간, 내 곁에서 아버지란 이름으로 계셨지만, 저에게는 그저 엄마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시간동안 아버지와 저를 연결하는 고리는, 항상 엄마였습니다. 모든 건 엄마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니까요. 아버지는 저 너머에 실체만 있는 보호자였고, 엄마는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 움직이는 보호자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견고하게 다져져 있던 아버지와 나 사이에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던, 그리고 그 불편한 완충재 역할을 해 주셨던 내 소중한 엄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식구들만 남겨둔 채 그렇게 떠났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왠지 불편하고, 이상하게 어색하고, 뭔가 아버지와 나답지 않은 관계를 조심스레 시작합니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예순다섯 된 아버지와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삶을 나누려고 합니다.

얼마 전, 택배를 하나 받았습니다. 현관문 앞에 커다란 배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낑낑거리면서 배 상자를 집 안으로 들이고, 꽁꽁 싸맨 청색 테이프를 뜯어냈습니다. 상자 안에는 배즙이 한 상자, 포도즙이 한 상자, 그 사이엔 배와 단감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포도즙,배즙,그리고 배로 가득한 상자
 포도즙,배즙,그리고 배로 가득한 상자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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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프신 이후로는 집에서 보내는 택배를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철마다 오던 제철과일과 각종 김치와 이런저런 마른 반찬들이 뚝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저는 더 이상 집에서 보내주는 택배는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택배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택배 상자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상자를 열면서 작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나에게도, 아직 택배를 보내주는 부모가 있다는 안도감입니다.

굵은 소금이나, 고들빼기김치나, 알타리무 김치나, 진미채 무침같은 음식들로 채워졌던 예전의 택배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이었고, 이건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포도즙과 배
 포도즙과 배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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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떠나고 이제 1년, 아버지와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둘째 딸 전화번호도 저장하고 있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내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마를 통해서가 아닌, 언니를 통해서가 아닌, 아버지가 직접 내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묻습니다.

"택배 잘 갔나?"


태그:#아버지, #택배,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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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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