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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한 번은 겪는 고3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부모되어, 애써 도와주고 싶지만 매순간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것이 '자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3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지지하는 일뿐입니다.

유배된 시간처럼 '대학입학'이라는 목표 하나를 향해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아이. 공부 때문에 지루하고 힘든 일상을 보내지만 때로는 남자친구 생각에 들떠 뽀얀 얼굴이 되기도 하고, 친구와의 갈등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사는는 것이 다 그런가 봅니다. 오르고, 내리고, 진지하다가도 가볍고, 슬프고 또 기쁜일이 조각보처럼 이어지는 것인가 봅니다... <기자말>

날씨 좋은 일요일(27일) 오후, 홍대 근처 거리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간간이 홍대를 향해 걷고 있는 수험생과 그 부모들이 눈에 띄었다. 나도 같은 처지에 놓여선지,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엄마, 아빠와 셋이 나란히 걷는 아이.

가벼워 보이는 배낭하나 달랑 메고 혼자 묵묵히 걷는 아이, 일요일에는 입을 일 없는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아이. 몇만 명이 한꺼번에 몰렸던 지난주의 논술 시험장과는 달랐지만, 정해진 일정이 있는 아이들은 그렇게 또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두어 시간 후, 면접을 본 아이들이 차례로 시험장에서 나왔다. 내 아이는 해가 기울 무렵 건물 밖으로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심층면접이었는데, 기분이 어때?"
"처음엔 약간 떨렸는데, 괜찮았던 것 같아. 면접관들의 질문에 내가 가진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것이 긴장되면서도 멋진 일이었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이제 수능 점수만 예상한 대로 나오면 합격에 한발 다가서겠다. 휴, 산 넘어 산이다."
"(웃으며) 엄마,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어. 이제 시험 모두 끝났다. "
"그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어?"

면접이 언제 끝나려나?
▲ 심층면접 면접이 언제 끝나려나?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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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참고서랑 문제집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능 시험 끝난 지도 한참인데 이제 책상 정리 좀 하지."
며칠 전에도 나는 아이 책상 위, 그리고 책장에 쌓여 있는 책들을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다 끝나면 할게요."
아이는 숨 좀 돌리자며 내게 뭐 그리 서두를 것 있냐고 했다.

"수능 끝났잖아. 뭐가 또 남았어? 혹시...너 재수 생각해?"
"재수 안 할 건데...정말 안 할 거야. 아휴, 저것들 볼 때마다 징 해. 다시 볼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시험이 끝나도 치울 생각은 없는듯
▲ 수험생의 책상 시험이 끝나도 치울 생각은 없는듯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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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완성', '고득점 언어영역', '모의기출문제' 등 아이가 매일 끌어안고 지냈던 입시와 관련된 책들. 쓸 만한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은 후배들 나눠주고 나머지는 어서 재활용 수거함에 갖다 버렸으면 좋으련만. 하긴, 아이 마음은 오죽할까. 말로는 저것들을 한 번에 싹 쓸어서 갖다 버리고 싶다고 하면서도 선뜻 그리 못한다.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너무 일찍 치우기에는 이른 감이 있는 것들. 어느 대학 한군데 발표도 나기 전에 깨끗이 치워버렸다가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마저 없는 텅 빈 책상을 마주한다면 그 황망한 기분을 어떻게 달래겠나.

그래도 몸은 좀 편해졌지, 뭐

아이는 요즘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친구랑 놀다 온다고 휙 나갔다 오곤 한다. 또 수능 문제집 대신 빈센트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읽다 잠들기도 한다. 지방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에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밤이면 '슈스케', '나는 가수다' 등 지난 방송들을 찾아 다시 보고 앉아 있다. 수능점수가 나오기 이틀 전인 월요일, 딸아이는 친구와 만화책을 빌려 와 침대 위에서 자세를 바꿔가며 열독 중이다.

얼마만에 여유일까? 예전에는 만화책 자주 봤었는데.
▲ 만화책보기 얼마만에 여유일까? 예전에는 만화책 자주 봤었는데.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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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집안에, 오래된 평온함이 다시 찾아온 듯한 것을 느낀다. 안 그런 척, 고 3이 뭐 대수냐고 하며 별나지 않게 지내려 했으나, 알게 모르게 긴장 속에 살았나 보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아이 말처럼 '다 끝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일찌감치 합격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이미 몸과 마음에 날개를 달았다. 운전면허를 딴다고 벌써 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있다. 또 3년 내내 야금야금 찐 살을 작정하고 뺀다고 헬스장에서 몇 시간이고 보내는 아이도 있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친구들 눈치가 보여 마음껏 들뜬 모습을 보일 순 없지만 대학입학이라는 내년 3월까지의 시간은 이들에게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마음은 가시방석이라니까!

"요즘 네 친구들 뭐하며 지내니?"
"시험 끝나도 뭐 별거 없어. 특별나게 놀지도 않아. 그냥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몇 명은 편의점 알바 하는 친구들이 좀 있고...나도 해보고 싶어."

울타리에 갇혔던 수험생들은 제한된 생활 속에서, 도넛 가게에서 또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언니, 오빠들을 꿈꾸었나 보다. 내 아이도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 시험 끝나면 편의점 알바해 보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아이들에게는 사치로 들리는 소리다. 이들에게 알바는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해 보고 싶은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스스로 돈을 벌고 싶어서, 공부 아닌 그 어떤 다른 것에 대한 가능성이 해방으로 여겨졌던 고3들은 꿈꾸던(?) 아르바이트를 시도한다.

"근데 엄마, 우리 반 아이들 중에 반 이상은 죽을 지경이라고 해."
"이미 자기 점수를 가늠해, 대략 갈 수 있는 대학이 그려지지 않나?"
"수능점수 평소보다 안 나왔다는 친구들이 태반이야. 재수한다고 하는 친구들 정말 많아. 시험 끝나면 뭐해. 다들 가시방석이야. 다들."

누구는 수능 시험을 보는 중간에 재수를 결심했다고 한다. 또 어떤 아이는 지금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며 다시 한 번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단다. 그간 방에 책상이 없었다며 새로이 책상을 들여놓은 아이도 있다고 했다.

수능 점수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제 내일(30일)이면 수능점수 발표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등급 컷에 걸렸다며 혹시나 희망을 품었던 아이도, 가채점을 하며 의기소침했던 아이도, 이제는 숫자로 환산되는 자신의 점수와 등급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생각만 해도 가슴 어딘가가 울렁거린다. 1년 동안 아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오면서 마음이 흔들렸던 적이 없었는데, 수능점수표를 받아 든 아이를 담을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그날은 학교에 가지 말까?'

아이는 타고난 성격이 원래 그런지 한 번도 조바심을 내지 않지만, 나는 솔직히 그 순간 아이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1,2점의 점수차이로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명문대학 진학이 인생의 행복이나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줄지어 늘어선 예쁜 커피집, 옷가게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넘치는 거리에서
▲ 홍대근처 줄지어 늘어선 예쁜 커피집, 옷가게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넘치는 거리에서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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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수없이 아이에게 해 주었던 말이다. 아니 내가 나에게 던진 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점수가 나오든 나는 아이를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게 하는 일도 권하지 않을 것이다. 점수가 한 개인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며, 그렇다고 너 자신을 속일 만큼 황당한 결과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

겨울이다. 추워야 할 때는 추워야 하는데 연일 이상 기온이 계속되고 있다. 11월 30일, 이날에는 기다리던 첫눈이 왔으면 좋겠다.


태그:#고3엄마, #수능점수발표, #수능끝나고, #고3 수험생, #수능최저조건, #수능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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