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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설 연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딸들이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도 이리 와서 영화나 봐요. 명절 연휴 때는 뒹굴 거리며 영화 보는 게 제 맛이라니까."

호소다 마루타 감독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자고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때면 그곳으로 달려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 거실에 머물고 있는 시간은 저녁에서 밤으로 달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다 뜬금없이 작은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시간을 돌린다면 어느 때로 다시 가고 싶어?"
"어? 응……. 글쎄. 두 살 때쯤."
"왜? 그럼 다시 태어나고 싶은 거야?"

나이 마흔일곱 살 아줌마, 아니 해가 바뀌었으니 마흔여덟인데 두 살 때로 돌아간다는 말에 아이는 살아온 시간 모두 송두리째 돌리고 싶은 것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냥 해본 말이라며 슬며시 나의 시간을 거슬러 갔다. 돌아보니 시간의 굽이굽이마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을 때 가지 않은 길로 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았고, 발을 들여 놓은 길에서 좀 더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 미련으로 남기도 했다.

찬란한 햇빛 사이로 퍼지는 최루탄 가스

봄은 여김없이 왔다. 작년에도 그랬고 28년전에도 꽃을 앞세우고 우리들에게 왔다.
▲ 봄날 봄은 여김없이 왔다. 작년에도 그랬고 28년전에도 꽃을 앞세우고 우리들에게 왔다.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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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 생각은 뭉게뭉게 대학 교정의 아침햇살이 그 어느 날보다 찬란했던 대학교 1학년 때에 머물렀다. 꽃들이 학교 안에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는 봄날이었다.

그러나 1학년 새내기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학생회관 앞은 알 수 없는 긴장된 기운으로 가득했다. 잠시 후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어디선가 나타난 사복경찰은 그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선배가 피 흘리며 끌려가는 사람을 보고 "우리 과 선배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학생이라는 것을 실감하기도 전에, 다니던 고등학교를 수십 개 옮겨 놓은 듯한 넓디넓은 학교 내 건물들의 이름을 채 외우기도 전에 학교 안에서 맞닥뜨린 풍경은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그런 것이었다.

그날 저녁 학교 앞 '마마집'에서는 울분을 토하는 후배를 달래는 선배, 학교 안에 수많은 '짭새'들이 왜 상주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선배, 나약한 지식인이 되기보다는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막걸리를 들이키는 선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교양과목', '강의실', '독일문학의 이해', '중앙도서관'을 말하는 만큼 '독재정권,' '언더 서클' '투쟁', '집시법', '강제징집당한 선배', '최루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강의실과 최루탄 가스 언저리를  오가며 흰색도 검정색도 아닌 회색 옷을 입고 서 있었으며 그런 나를 자책했다.

나무 심을 돈을 내고 선생님이 되어야 했을까?

민족을 이야기하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이었으면서도 남녀의 문제에서 남학생들은 몸소 차별의 몸짓을 날리던 때였다. 술자리에서 담배 피우는 여학생에게 가차 없이 손찌검을 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선배들과 여성학 세미나를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한 발 더 내딛은 울타리 밖도 마찬가지였다. 졸업과 함께 찾아야 하는 일자리에서도 남학생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일자리를 찾는데 수월했다. 학점이 앞선 여학생이라도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뒤로 밀렸다.

교사가 되려는 나의 꿈은 그러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이룰 수 없었다. 교직을 이수했지만 고등학교에 독어과 선생님이 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구할 수 있는 일은 학원 강사 자리였다.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대학을 나와 부모님이 기대했던 직업을 갖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로지 대학이라는 곳에 가기 위해 입시에 매진했고 성공적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무사히 졸업을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 껍데기 같았다.

대학이 나에게 보장된 미래를 안겨줄 것이라고 믿었던 어리석은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뒤늦게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하지만 부모님 울타리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면 되는 것 아닐까?
▲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면 되는 것 아닐까?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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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 사립 고등학교 독어과 선생님이 되었다. 기간제 교사였다. 매 학기 계약을 새로이 하는 계약직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날 즈음 이사장이 조용히 만나자고 했다. 학교 운동장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찬조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두 번 돌아보지 않았다. 관행이라고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선택이었던 결혼, 그러나...

종종 결혼은 선택의 문제라고 딸들에게 이야기 하지만 나의 결혼은 그러한 선택은 아니었다.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어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나는 결혼을 선택하여 부모님 곁을 떠났다. 연습할 길 없는 것이 결혼이었다. 자발적으로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한 결혼생활은 나를 더 깊이 가두는 일이었다.

결혼하고 살림살이를 시작한 집. 작년 여름 그곳에 갔다. 녹번동 산꼭대기집. 빨래줄의 옷을 보고 '아직도 사람이 사는구나' 안심 되었다. 길 잃은 강아지 한마리가 반겨주었다.
▲ 나의 첫집 결혼하고 살림살이를 시작한 집. 작년 여름 그곳에 갔다. 녹번동 산꼭대기집. 빨래줄의 옷을 보고 '아직도 사람이 사는구나' 안심 되었다. 길 잃은 강아지 한마리가 반겨주었다.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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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딸이 태어나고 어떤 마음 하나 준비하지 못한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벗어나기 힘든 굴레였다. 내 나이는 청춘이라고 부르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하지만 내 곁에는 커다란 두 눈으로 나만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키워내야 하는 존재였다. 그때도 나는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눈이 부신 푸르른 청춘이었을까?

두려울 것 없이 세상에 마주 서 있는 것이 청춘이라면 나의 청춘은 이미 사라진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린 아이를 안고 한없이 두려웠다. 문밖을 나서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그리도 낭만적일 수 없었지만 세상에는 나와 아이 둘만 남겨진 것 같아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로웠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처럼 삶이 결연하지도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 가사처럼 낭만적이지도 않은 일상이 흘렀다. 나는 아이를 등에 업고 '엄마 돼지 꿀꿀꿀, 아기 돼지 꿀꿀꿀…'과 같은 아이를 얼러줄 노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했다.

내 동생도 결혼하여 딸을 얻었다. 오랜만에 가족 여행길에 오른 동생은 잠시도 엄마곁을 떠나지 않는 딸 옆에 있어야 했다. 아장아장 걷던 조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 엄마와 딸 내 동생도 결혼하여 딸을 얻었다. 오랜만에 가족 여행길에 오른 동생은 잠시도 엄마곁을 떠나지 않는 딸 옆에 있어야 했다. 아장아장 걷던 조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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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미래와 아픈 것이 청춘이라면...

그러나 그런 시절도 끝이났다. 큰딸은 어학공부를 한다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켰고, 작은 딸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들 등 뒤에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청춘이라 불리는데 그 어떤 어색함도 없는 스무 살, 스물세 살의 두 딸에게 나는 소망했다.

가던 길을 멈추지 말기를. 죽을 것 같이 사랑한다는 원빈보다 더 멋진 남자가 있더라도 자신보다 더 사랑하지 말기를. 그리고 청춘의 시간을 서둘러 끝내지 말고 길게 늘려 쓰라고. 꿈을 꾸라고. 현실에서 꿈이 없다면 잠 속에서라도 꿈을 꾸라고.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 만든 굴레로 자유롭지 못했고 선택한 것들이 주는 의무와 책임을 챙기느라 급급한 마음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어떤 것에서도 자유롭고 싶다.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뗀다.

마흔이 넘어 대학원에 들어 간 친구가 말했다.

"팔팔한 20대 아이들과 지내려니 힘에 달려. 머리도 예전만 못한 것 같지. 외모도 신경써야지…."


나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이는 내 친구가 과 동기들과 비교해서 열정 하나는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고 가벼운, 또 즐겁고 괴로운 삶의 여정을 걸어 이제 흰머리가 드문거리지만 새롭게 꾸는 '꿈' 무게는 묵직했다. 그녀는 지금 '청춘'이다  

제작년 가을 친구들과 여행길에서. 앞서 걸은 친구들의 발걸음이 모래사장에 차곡히 찍혀있었다.
▲ 걸음 제작년 가을 친구들과 여행길에서. 앞서 걸은 친구들의 발걸음이 모래사장에 차곡히 찍혀있었다.
ⓒ 소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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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청춘, #아줌마, #80년대 대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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