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이란 말이 많은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은 친환경 인증 마크가 붙은 농산물을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어지간한 도시의 주택가마다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는 매장을 볼 수 있지만, 자주 발길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일반 농산물에 비해서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부담 없는 가격에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유통과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직거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어 있고 현재의 유통체계를 비켜갈 수 있는 길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도시지역 주변에는 예전부터 소규모의 집약적인 근교농업이 발달되어 있었고, 서울 외곽지역에도 농촌처럼 농사를 짓는 곳들이 많았다. 최근에 4대강사업과 보금자리주택 사업으로 근교농업이 점차 사라지는 가운데, 서울 강동구의 농부들이 농업회사 법인을 설립하고 예비사회적기업 인증까지 받아서 지난 15일 매장 개장식을 열었다. 19일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있는 '강동도시농부㈜'를 찾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친환경 농가, 제값 못 받고 고생만 한다"
이곳에서는 강동구 친환경 농가가 직접 재배한 친환경 인증 농산물을 비롯해, 곡류와 간식류, 양념 등 200여 가지 물품을 취급한다. 깔끔한 매장 인테리어와 진열된 친환경 농산물들은 여느 친환경 매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주체가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란 점이 이채롭다. 네 명의 농부가 사업비로 1억 원 정도를 공동 출자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날은 박덕삼(50) 대표와 문홍기(50) 이사를 만날 수 있었다.
판매와 홍보 등 매장 운영은 직원 3명이 맡아서 전담하고 농부들은 원래 하던 농사를 짓고 있다. 농부들이 직접 농업회사를 차리게 된 이유를 박덕삼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친환경 농산물은 도매시장에 가면 제대로 가격을 안 쳐줘요. 오히려 일반 농산물보다 낮은 가격을 받기도 해서 친환경 농가들이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고도 제값을 못 받고 고생만 하죠. 불합리한 중간유통단계를 줄여서 우리가 직접 생산한 것을 판매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농업회사를 설립하게 됐습니다."때마침, 강동구와 희망제작소에서 주최한 사회적기업아카데미 교육을 받으면서 창업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준비한 뒤 마침내 농업회사법인 설립과 함께 예비사회적기업 인증까지 따내는 알찬 결실을 맺었다. 사회적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일반기업과는 달리 공익적 목적을 함께 이뤄야 하는 부담도 있는데, 이에 대해 문홍기 이사는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창업 이전부터도 관공서를 통해서 농산물을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이제는 사회적기업으로서 더 많은 나눔을 할 계획입니다. 사업의 성과에 따라서 농장에서 고용하는 저소득층의 일자리는 계속해서 늘어날 거예요. 당장 내년에는 10여 명 정도는 채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현재 농부 넷이서 경작하고 있는 농지는 1만3000평 정도다. 유치원과 학교, 관공서 등에 식재료를 공급하게 되면 강동구에 있는 62개 친환경 농가도 참여할 것이며, 40여 농가는 이미 협력의사를 밝혔다. 사업이 잘돼도 공급물량이 부족하게 될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도시농부 20년... "농사 그만둘 생각 한 적 없다""1968년부터 아버지가 여기서 농사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풀과 인분으로 직접 퇴비를 만들어서 농사를 짓던 시절이라서 농사 자체가 친환경이고 유기농이었죠. 농사짓는 것을 보고 자랐지만 힘든 일이란 것을 알고 농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치이게 되면서 농사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사일이 힘들기는 해도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없는 것 같고, 많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당시에 (강동구에서 근교농업으로) 농사짓는 분들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을 보면서 농사일을 시작하게 되었죠."언제부터 농사를 시작했는지 물으니 문홍기 이사가 대답했다. 농사지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다니 요즘 농부들이 들으면 "뭔 소리여?"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두 사람은 강동구가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과 가까운 것이 물류와 농사정보 공유 등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유리한 점이 있었다 해도 화학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업에서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는 이미 관행농업이 널리 퍼져 있어서 그대로 따라 했어요. 하지만 나이 든 농부들은 새로운 농법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우리는 아직은 젊었기 때문에 유기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3년간 토양을 친환경으로 개량하고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제일 힘든 것이 판로였어요. 가락시장으로 가면 일반 농산물 값으로 쳐주는데 다른 유통망을 찾기도 어려웠거든요. 그때 조직된 단체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 직접 농업회사를 만들게 된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박덕삼 대표의 대답이다. 두 사람이 20여 년간 농사지으면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을까.
"2002년에 큰 눈이 내려서 하우스 대부분이 무너져 어려운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가 농사지으면서 가장 큰 위기였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 외에 여러가지 어려움들이야 많았지만 그 정도는 겪어나가야 할 과정이라고 보고 극복했으며 농사를 그만둘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로컬푸드와 직거래... 도시농부를 주목하는 이유
오랫동안 농사를 짓다보니 감(感)이라는 것이 있다는 두 사람은 지난 5년간의 농산물 시세등락폭을 머릿속에 다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정보들을 취합해서 농사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농산물 가격 등락폭은 3년 주기로 돌아가는데, 한 가지 작물의 경우 2년을 주기로 가격의 등락폭이 있다고 하지만 최근 들어 잦은 기후변화로 이것마저도 예측이 힘들어졌다고 한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생산농가에서 이익을 보기보다는 유통단계에서 가격거품이 생긴다면서, 유통하는 쪽의 어려움도 있고 이해는 되지만 여전히 가격거품이 많다고 한다. 최근에 근대 한 박스(4.5kg)가 1100원에 경매가격이 나왔는데 마트에서는 1근(400g)에 2000원에 판매한다며, 최상의 방법은 유통과정을 줄여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방식의 유통질서가 자리를 잡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도시농업 발전이 농촌의 경쟁력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일부의 우려도 있지만, 그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못보는 것과 같다. 도시농업은 이동거리의 단축으로 품질 높은 신선채소를 공급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로컬푸드(local food)가 정착되고, 직거래 형태의 올바른 가격유통구조가 정착되면 쌀과 특화작물을 주작물로 하는 농촌에도 유리하게 작용될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기업으로 출발한 강동도시농부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