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여섯 번째, 이번엔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참 변덕스러운 게 자전거 여행자의 마음이다. 오르면 내려가고 싶고, 내려가면 오르고 싶다. 사진은 천마산에서 바라본 부산 앞바다(2008년 10월)
 참 변덕스러운 게 자전거 여행자의 마음이다. 오르면 내려가고 싶고, 내려가면 오르고 싶다. 사진은 천마산에서 바라본 부산 앞바다(2008년 10월)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자전거로 여기저기 다녀보니 길이 너무 곧기만 하면 지루하고, 꼬불거리기만 하면 지치더라. 경사도 없이 평평하면 편하다 느끼지만 이내 심심해지고, 너무 가파르기만 하면 고행처럼 느껴진다. 산길을 달리다보면 물이 그리워지고, 물길을 내내 달리다보면 뭍이 떠오른다. '참 변덕스러운 사람 마음'이다 싶다가도 못가진 것을 좇는 게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 변덕스러운 자전거 여행자의 마음을 만족시킨 건 '마산 바닷길' 여행이다(지금은 창원시로 통합됐으니 구 마산이다. 여기서 마산은 구 마산이다).

정확히는 마산 시내에서 남쪽에 있는 구산면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서쪽의 진동면으로 빠져나오는 'U'자형 길이다. 몇 년 전 자전거를 타고 남해안 일대를 여행하며 그 길을 처음 만났다. 오래전 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띄엄띄엄 가본 적은 있었으나 자전거를 타고 속속들이 누벼본 느낌은 달랐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우리나라에 매우 예쁜 바닷길이 있다는 것을.

전국구 해수욕장이 있던 마산, 지금은 모두 어디 갔을까

초등학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마산에서 나왔으니 마산 앞바다야 신물 나도록 봤다. 호수 같은 앞바다에 떠 있는 섬은 하나. 그게 마산의 전부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안선 길이만 151km에 섬이 무려 25개라니.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가 비로소 우물 밖을 본 순간이었다. 때로는 옛 추억을 발견하고, 때로는 옛 추억이 사라진 현재를 보면서 그 길을 달렸다.

마산 바닷길 자전거 여행 지도.(이걸 보고 대충 어디가 어딘지 아셨으면 좋겠다.)
 마산 바닷길 자전거 여행 지도.(이걸 보고 대충 어디가 어딘지 아셨으면 좋겠다.)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산동네에서 바라본 마산 앞바다. 멀리 보이는 게 돝섬이다.(2008년 2월)
 산동네에서 바라본 마산 앞바다. 멀리 보이는 게 돝섬이다.(2008년 2월)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출발지는 마산 시가지에서 남쪽 외곽에 있는 마산남부시외버스터미널이다. 여기서 남쪽 가포유원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출발부터 긴 오르막이니 마음 단단히 먹고 길을 나서는 게 좋다. 가포유원지는 한 때 해수욕장이었으나 지금은 매립돼 그때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마산에 사는 사람이나 마산을 아는 사람은 코웃음 칠 지 모르지만 마산은 오랫동안 꽤 유명한 해수욕장 도시였다. 이른바 '물 좋은' 도시였단 말씀.

한 때 '가고픈 남쪽바다'였던 곳이 어느 순간 '똥물'이 떠다니는 최악의 바다로 변했으니 참 기막힐 일이다. 지금도 최하등급인 3급수에 머물고 있으니, 한 번 나빠진 환경을 되돌리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쨌든 시내에 있던 해수욕장은 점점 밖으로 밀려나다 마침내 사라졌으니, 영욕의 역사다. 마산 해수욕장 역사를 쭉 거슬러 올라가면 월포해수욕장이 첫자리다. 해방 전 월포해수욕장은 조선 각지에서 피서객이 몰려드는 전국구 휴양지였다.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남조선지방에서도 물이 맑고 모래가 히여 풍광이 명미하기로 이름이 높아 각 여관업자들은 이때 한목을 보게 된다고 한다."- 동아일보(1934년 7월 5일)

문제는 그 놈의 사람. 사람이 몰려드니 집이 필요하고, 일자리가 있어야 하니 공장을 지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만만한 게 바다고 갯벌이다. 해서 월포해수욕장도 매립된다. 1938년 폐장되고 인근 다른 곳에 해수욕장을 만든다. 이후 해수욕장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난다.

그 뒤엔 가포해수욕장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5-6km 정도 떨어졌다. 가포해수욕장 또한 경상남도 사람들에게 꽤 인기가 높았다. 1971년 8월 첫 주말 강원 경포대에 3만1500명, 속리산에 5000명, 제주함덕에 1만5000명이 찾았을 때 가포엔 5만 명이 찾았다. 1964년 7월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나타나 해수욕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허나 환경보존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오로지 공장 가동이 최우선이던 시절이 문제였다. 1971년 마산 앞바다를 접한 곳에 마산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섰다. 1974년엔 멀지 않은 곳에 창원기계공단이 들어섰다. 내륙 깊숙이 들어와 물이 잔잔한 마산 앞바다였다. 공장에서 내뱉는 폐수는 고스란히 마산만에 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썩기 시작하고 1979년 수산청은 마산만에서 각종 어패류 채취를 금지한다는 조치를 내린다. 가포해수욕장은 이보다 훨씬 전인 1976년 4월 폐장했다. 사람은 못 들어가게 막고, 나머지 생물들은 그대로 죽은 바다에 남았다.

매립중인 가포유원지 일대. 지금은 깨끗이 매립된 상태다.(2008년 10월)
 매립중인 가포유원지 일대. 지금은 깨끗이 매립된 상태다.(2008년 10월)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뒤를 이어 가포해수욕장에서 외곽으로 15km 정도 더 가야 하는 광암해수욕장이 문을 연다. 환경과 개발이 공존하긴 어려운 시절이었고, 일 년에 한 두 번 가는 해수욕장보단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터가 훨씬 힘이 셌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나아졌을까. 더 나아졌겠지만 이젠 마산에 해수욕장은 한 곳도 없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다 보면 저 멀리 바다 한 가운데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섬이 하나 보인다. 돝섬이다. 배를 타고 소풍 가고, 주말에 가족이랑 놀러간 기억이 난다. 1982년 5월 문을 열었는데, 그땐 대단했다. 당시 국내 최대인 800평 규모 해수풀장을 설치했는데, 섬 전체를 공원으로 만든 국내 첫 사례였다. 들어가는 배, 나오는 배가 쉼없이 오고가던 기억이 난다.

가포를 지나면 남쪽 '수정' 방향이다. 덕동삼거리를 지나 우산천을 지나면 구산면 구역이다. 마산 해안선 자전거 여행은 대부분 구산면에서 이뤄진다.

수정리에선 어린 시절 이모부와 함께 홍합을 캐러 갔던 기억, 외삼촌과 함께 낚시 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땐 홍합이 얼마나 많았는지 쌀포대로 한 포대 이상 캤던 기억이 뚜렷하다. 문제는 그때는 홍합보다는 문방구에서 파는 과자에 열광하던 시절이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더듬어봐도 홍합맛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봐선 그 엄청난 홍합이 내 입으로 들어가진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맛있는 홍합을 먹지 못한 게 원통할 뿐이다.

사랑을 이루고 싶거들랑... 백령재와 '콰이강의 다리'

저도연육교 가는 오르막길.(2008년 10월)
 저도연육교 가는 오르막길.(2008년 10월)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구산면사무소를 지나면 수정삼거리다. 이제 남서쪽으로 방향이 살짝 틀어진다. 1002번 지방도를 타고 저도 방향으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다시 신발끈을 제대로 조이고 물 한 모금 마실 것. 만만치 않은 고개가 나타난다. 처녀귀신 전설이 있는 백령재다. 결혼 못하고 죽은 여인이 있어 고개에 묻었는데, 이후 행인들을 괴롭히고 신부가 탄 가마라도 나타나면 비를 뿌리는 심술을 치곤 한 모양이다. 이에 마을사람들이 영혼결혼식을 올리자 그런 일이 싹 사라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이후 남녀가 백령재에 가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하는데, 성공률은 모르겠으나 재미있는 건 역시 이런 뒷얘기들이다.

백령재엔 백령찻집(또는 백년찻집)이라는 명물이 있다. 90년대 그곳을 찾았을 때 신기했던 건 유난히 어두웠던 실내와 실내 가득했던 초다. 촛농이 흘러내린 자리에 다시 촛농이 쌓여 엄청 크게 쌓인 촛농 위에서 초들이 타고 있었다. 게다가 입구에서 흘러나오던 염불소리. 그 소리는 지금도 여전했다. 여기 백령차가 꽤 유명하다는데 오래전 마셨던 차맛은 지금 기억에 없다. 실내 분위기가 차맛을 압도한 게 아닐까 싶다.

백령찻집을 지나면 긴 내리막길. 신나는 길이지만, 꼬불꼬불하니 바짝 정신 차리고 내려갈 것. 한참 달리다 보면 바다를 낀 멋진 학교가 나오는데, 반동초등학교다. 여기서부터는 바다를 저 아래 두고 달리는 길이다. 위에서 아래로 바다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은 솟구쳤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니 출발하기 전 먹은 밥이 소화됐다 싶으면 저도연육교다.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를 잇는 다리다. 영화에 나온 그 다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이름이 '콰이강의 다리'로 불린다. 폭이 좁고 수면에서 높이 솟아있어 꽤 아찔하다. 생긴 모양새는 한국전쟁 때 격전지였을 것 같은데, 1987년생이다. 겉늙은 다리?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 불리는 저도연육교 전경.(2008년 10월)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 불리는 저도연육교 전경.(2008년 10월)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여기에도 연인이 손을 잡고 다리 끝까지 건너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일까 해석해본다. 간혹 무서워서 절대 못건너겠다는 여성들이 있는데, 이런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백령재와 '콰이강의 다리'라는 소재가 있으니 사랑을 이루고 싶은 이들이라면 구산면 바닷가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다리를 건너면 저도다. 저도에 들어가면 산허리를 도는 산책로가 있으니 거닐어보시라. 저도 주변엔 이름이 예쁜 작은 섬들이 가득하다. 자라섬, 곰섬, 작은닭섬, 북섬, 남섬, 징섬, 장구섬, 긴섬, 쇠섬, 암목섬…. 섬 이름들을 조용히 불러보면서 발걸음을 떼보시길.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길

원전항으로 가는 길은 바다와 눈높이를 맞추며 달리는 여행이다. 길은 평온하고 한가롭다.(2008년 10월)
 원전항으로 가는 길은 바다와 눈높이를 맞추며 달리는 여행이다. 길은 평온하고 한가롭다.(2008년 10월)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저도를 구경했으면 반동초등학교까지 왔던 길로 되돌아나가자. 반동초등학교를 오른편에 두고 곧장 간다. 이순신로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다. 방향은 동남쪽이다. 이 길 또한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길. 바다가 손에 잡히는 듯이 가깝다. 저도 들어가는 길이 낙차가 있어 힘든 반면, 이 길은 평평하기 때문에 거의 힘이 들지 않는다. '기력회복용 길'이라 이름 붙인다.

막다른 길에 이르면 마산 최남단인 원전항이다. 2007년 항구를 만들 때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물에 뜨는 부유식 방파제를 설치해 화제가 된 곳이다. 지금은 낚시가 잘 되는 곳으로 이름이 알려져 낚시꾼들이 꽤 많이 찾는다. 바닷물이 맑아 물 속까지 훤히 보이는데, 힘 좋은 물고기들이 펄쩍 펄쩍 뛰어올라 기운 떨어진 다리에 힘을 불어넣곤 한다. 건너편 실리도로 가는 배가 여기서 떠난다.

다시 돌아나온다. 반동초등학교까지 나온 뒤 신촌삼거리까지 직진. 여기서 좌회전이다. 이젠 서북 방향으로 'ㄱ'자 형태로 길이 꺾어진다. 긴 해양관광로가 펼쳐진다. 카페도 많고 횟집도 많다. 길게 펼쳐진 갯벌은 풍요롭게 보인다. 여기서 나온 수산물로 수많은 이들이 먹고 산다. 길가엔 즉석에서 굴을 까서 파는 아주머니들이 종종 눈에 띈다. 아주머니 옆에 '턱' 앉아서 술 한 잔 걸치고 싶지만 운전 중이니 통과.

이쪽 길엔 최근 관광객이 몰리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해양드라마세트장이다. 2010년 5월 완공된 곳으로 드라마 <김수로>를 촬영한 곳이다. <근초고왕><야차><계백> 등 드라마 촬영이 잇따랐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해양드라마세트장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 모양이다. 워낙 관광객이 몰려 주말이면 주변에 주차한 차들로 빽빽해지는데, 이곳은 최근 도마 위에 올랐다. 수산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인데, 환경오염 방지계획이나 관련 시설 없이 세트장을 세운 게 경남도 감사에서 드러났다. 환경을 고려한 개발이 충분히 가능한데, 이런 일이 지금도 이뤄지는 걸 보면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지 가끔 의문이 든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진동 방향이다. 다시 1002번 지방도다. 군령선착장을 지나면서부터 바다와 멀어진다. 바다와 몇 백미터 쯤 거리를 두고 달리던 길은 다시 바다와 가까워진다. 횟집만 듬성듬성 보이던 풍경이 바뀌어 집과 차가 많아진다. 이제 진동면 시내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여기도 해수욕장이 있었으나 2000년부터는 물이 나빠져 개장하지 않는다. 최근 다시 개장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지금은 미더덕 생산지로 유명해져 매년 미더덕 축제가 열린다.

마산 바닷길 자전거 여행은 여기서 끝이다. 여기서 고성 방향으로 달리면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래질 풍경을 만나게 된다. 한 번도 가보질 않았다면 자동차를 몰고 한 번 달려보고, 그 다음엔 자전거를 타고 한 번 가보시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게 단지 교통수단의 차이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전거가 못가는 길은 없다. 길이 사라지면 둘러메고서라도 가면 된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다니다 보면 새로운 자전거길이 생기는 것이다.
 자전거가 못가는 길은 없다. 길이 사라지면 둘러메고서라도 가면 된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다니다 보면 새로운 자전거길이 생기는 것이다.
ⓒ 김대홍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최근 몇 년 동안 다녀온 경험을 토대로 썼습니다.



태그:#마산, #자전거, #바다, #바닷길, #구산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