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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점령'(OccupyWallStreet) 시위가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1%'의 가진 자에 대한 '99%'의 반격이다. 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저항운동이다.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전례 없는 '미국의 가을'을 만들더니, 다시 국경을 넘어 한 달 만에 전 세계 1500여 개 도시로 확산됐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고용축소, 해고, 실업, 양극화…, '1%대 99%'의 싸움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물론, '99%'이다. 그들을 만나봤다. <편집자말>

 

지난 28일(현지시각) 저녁 뉴욕 남부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파크). 금세 눈이라도 쏟아질 듯 흐린 날씨였지만 로렌 미네스(26)는 자전거 옆에 서서 지나가는 시민들의 팔을 붙잡는다. 간단한 설명을 들은 한 시민이 자전거에 올라가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자전거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대신 회전하는 바퀴와 연결된 발전기에 전기가 모아진다. 그렇게 6시간을 달리면 노트북 4대를 4시간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 모아진다고 한다.

 

미네스가 굳이 노트북을 비유로 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유광장에 모여있는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대에게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난로보다 더 절박한 게 외부와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광장 한 켠에 모여 있는 미디어팀은 자전거로 만들어진 전기를 이용해 시위 소식을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린다. 미 주류 언론이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외면하거나 왜곡해서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팀의 역할은 다른 어떤 워킹그룹보다 비중이 높다.

 

미네스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99%'를 위한 운동이지만 그 일부만 여기에 나와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평하게 있는데, 그 이유는 미디어 때문"이라며 "미디어는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보여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뉴욕경찰이 발전기 빼앗아간 진짜 이유는?

 

사실 미디어팀에는 친환경 연료인 바이오디젤을 사용하는 발전기가 1대 있었다. 이 발전기는 시위가 시작된 지난 9월 중순부터 두 달 가까이 미디어팀에게 전력을 공급해줬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시 당국과 경찰이 딴죽을 걸기 시작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일찌감치 "추위는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데)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 조항)보다 강하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침낭과 텐트로 무장하면서 장기전 태세로 돌입하자, 훼방에 나선 것이다.

 

며칠 전에는 시위대의 병원 역할을 하고 있는 의료 텐트를 철거하려다가 서로의 팔짱을 끼고 완강하게 버틴 시위대에게 밀려났다. 이후 광장 주변에 설치된 작은 텐트를 매일같이 야금야금 철거하던 경찰은 급기야 27일 저녁 미디어팀이 사용하고 있던 발전기를 뜯어갔다. 화재 위험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그래서 시위대가 궁여지책으로 가져다놓은 것이 자전거 발전기다.

 

시위의 진원지인 뉴욕 상황은 다른 곳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미 전역으로 확산된 '월스트리트 점령' 동조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25일 오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경찰이 특공대와 헬기를 동원해 강제진압을 벌여 50여명을 연행하고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지난 2주 동안 애틀란타 시내의 우드러프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시위를 해왔던 시위대가 경찰의 해산 요구에 불응하자, 특공대와 기마요원 등이 총동원돼 진압작전이 펼쳐졌다. 시위대에 합류했다가 함께 체포된 빈센트 포트 주의회 상원의원은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고 항의했다.

 

이날 저녁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는 경찰이 시청 앞 광장에서 농성을 계속해 온 1000여 명의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총 등을 발사하면서 강제해산에 나섰다. 대열 한 가운데서 최루탄이 터지고 연기가 거리를 가득 메우자, 놀란 시위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머리에 최루탄 또는 진동형 수류탄(충격을 줘서 기절시키는 용도로 제작된 수류탄)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날 밤 경찰은 85명을 체포하면서 강제 해산에는 성공했지만 다음날 시위대는 다시 시청 앞 광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이어갔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 당국도 도심 플라자를 점거한 시위대를 와해시키기 위한 작전에 나섰다. 시 당국은 앞으로 야간에는 시위대가 설치한 텐트 하나에 2명의 불침번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자정을 기점으로 모두 내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뉴멕시코주에서도 뉴멕시코 대학 내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시위대 수십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 오클랜드 강경진압에 '점령 시위' 새 국면

 

미네스는 무엇보다 오클랜드에서 들려온 시위대의 부상 소식에 가슴을 움켜쥐며 안타까워했다. 그가 오클랜드 환경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뉴욕으로 넘어온 것은 지난 6월, 그는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클랜드 점령 시위대에는 그의 친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일부는 부상을 당했다. 특히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의식불명이 된 스캇 올센(24)은 두 차례나 이라크 전쟁에 참가됐던 전직 해군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올센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면서 고급 아파트에 사는 등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퇴역군인 단체에서 활동한다던 그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네스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싸운 사람이 우리를 보호해줘야 할 경찰의 폭력에 쓰려졌다"며 분개했다.

 

"올센은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던 사람이다. 그가 돌아왔을 때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기 때문에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로부터 그는 보호받지 못했고, 오히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 왜 경찰이 그런 방법을 썼는지, 왜 체류가스를 쓰고 고무탄환을 써서 진압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오클랜드 시내는 전쟁터로 변하지 않았나. 그게 누구의 책임인가. 표현의 자유를 막으면서 자기의 권위를 보여주려고 경찰이 폭력적인 진압을 하는 것이다."

 

올센은 두개골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후송됐고, 한 때 의식불명 상태까지 가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오클랜드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킨 것은 인정하면서도, 올센이 경찰의 최루탄 등에 의해 부상을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다소 주춤했던 미 전역의 시위 열기가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올센을 비롯한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이 발사되는 장면 등 경찰의 진압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자 26일 오클랜드와 포틀랜드에서는 각각 1000여명이 참가한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행진을 하면서 "이것이 우리가 너희들을 돼지라고 부르는 이유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트위터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응원 메시지를 올리고 있고, 오클랜드 시청 앞 광장에는 올센의 회복을 기원하는 촛불이 켜졌다.

 

오클랜드 시위대는 또 경찰의 폭력 진압에 대한 항의 표시로 내달 2일 오클랜드시 전체에 대한 총파업을 선언하며 노동자들과 학생들에게 동참을 촉구했다. 이들은 "모든 은행과 기업들이 이날 문을 닫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을 향해 행진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시위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같은 날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들도 "우리는 99%"라는 구호 대신, "뉴욕이 오클랜드다", "우리는 모두 스캇 올센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청과 유니언스퀘어 앞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또 오클랜드 시위대에 2만 달러의 성금과 텐트 100개를 보내기도 했다. 보스턴에서도 올센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렸다.

 

"올센이 쓰러진 뒤 점령 시위대들은 연대의 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틀 전에 전국적으로 모든 점거지에서 연대의 행진이 있었다. 타흐리르 광장이 있는 이집트에서도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전국적으로, 전 세계 적으로 연대를 위한 노력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미네스는 "오클랜드 사건은 우리 운동의 새로운 모멘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많은 시선이 오클랜드에 쏠리고 있다"며 "오클랜드 시위가 시위대의 앞날을 가름하는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디언>도 "오클랜드 폭력 진압 사건은 미디어의 떨어져가는 관심과 추위 속에서 싸우고 있는 월가 시위대에게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나브로 겨울이 찾아오면서 위축되어 있던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에 경찰의 과잉진압이 오히려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미네스는 "사람들이 매우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우리가 여기서 물리적으로 쫓겨나거나 이 장소가 없어진다고 해도 우리의 '점령' 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월스트리트 점령, #금융위기, #오클랜드 , #폭력진압, #자전거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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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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