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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10월, 첫 번째 지역투어 현장은 대전충남충북입니다. [편집자말]
 대전광역시·충청남도·충청북도 지도
대전광역시·충청남도·충청북도 지도 ⓒ 오마이뉴스 그래픽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여 일정한 성공을 거둔 정치인이다. 흔히 김종필을 가리켜 '영원한 2인자'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 내리 2인자 역할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그는 충남 부여 출생이다.

이회창은 1997년과 200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출마해 두 번 다 차점 낙선했다. '차떼기'의 오명을 쓰고 정계 은퇴했다가 2007년에 다시 나온 그는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 3위로 떨어졌다. 그가 앞으로도 대선에 출마할 경우 3위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때쯤에는 이회창에게 '영원한 3인자'라는 칭호가 붙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황해도 서흥 출생이고 그의 부친 고향이 충남 예산이다.

이처럼 충청도 유력 정치인이 '영원한 2인자' 또는 '영원한 3인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단 두 사람의 정치역량과 관련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특유의 지역구도에서 가지는 충청도의 위상과 관련되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한국현대정치사>
<한국현대정치사> ⓒ 새로운 사람들
<한국현대정치사>라는 책의 표지는 10명의 인물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들은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최고 권력자들, 즉 김구·이승만·장면·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이다. 여기에 이명박을 추가하면 11명이 되는데, 그 중 애석하게도 충청도인은 한 명도 없다.

관점을 바꿔서 이번에는 다른 이름들을 나열해 보자. 이상설, 신규식, 김좌진, 신채호, 이동녕, 윤봉길, 한용운, 박헌영, 유관순 등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순한 독립지사들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충청도 사람이기도 하다. 이처럼 충청도에는 유달리 순도 높은 독립지사가 많았다. 이 점만으로도 충청도가 '의기와 충절의 고장'이라는 말은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지난 7월 11일 취임 1주년을 맞아 KBS1 라디오에 출연, "영호남의 지역주의적 정치의 틈바구니 내에서 충청도도 단결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지역정당을 한다면 그건 충청도에 불이익(이다). 영호남의 지역정당적 구조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충청도는 영원한 3등 지역이다. 지역주의 정당을 해체시켜 나가는 것이, 충청도가 그간 받았던 불이익이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충청도에 '멍청도' 또는 '핫바지'라는 이미지가 씌워진 것은 정치적으로 조장된 지역감정 때문이다. 그런데 충청도의 지역감정은 영·호남의 지역패권구도에서 파생되어 나온 현상일 따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충청도의 지역감정, 즉 '멍청도'와 '핫바지'를 문제 삼기 전에 그 배경이 되는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먼저 짚어야 한다.

일찍부터 '충청도 맹주'를 염두에 두었던 김종필

 지난 2007년 12월 6일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 청구동 자택 대문까지 마중나온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2월 6일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 청구동 자택 대문까지 마중나온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한국 정치에 영·호남 지역감정이 나타난 것은 1971년 대선 때부터였다. 한국 지역감정 선동의 '원조' 격인 공화당의 이효상은 "문둥이가 문둥이 안 찍으면 우짤끼고?"라며 '경상도 대통령론'에 불을 질렀다. 이렇게 영·호남이 대립하는 와중에도 당시 박정희를 돕던 김종필은 충청도 유세에서 '충청도 양반론'을 거론하며 충청인의 단결을 촉구했다. 

이후 선거다운 선거가 없어서 잠복되었던 영·호남 지역감정은 1987년 김영삼·김대중 양김씨가 분열하면서 첨예화되었다. 선거 결과는 참담했다. 당선자 노태우는 대구·경북에서, 김영삼은 부산·경남에서, 김대중은 호남에서 각각 몰표를 얻었다. 한편 김종필은 전국 8.1%의 득표에 그쳐 4위로 낙선했지만 충남에서 1위(45%)를 차지함으로써 충청도에까지 지역감정이 파생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듬해인 1988년 총선에서 노태우의 민정당이 전국구 포함 125석(과반에서 24석 미달), 김대중의 평민당이 71석, 김영삼의 민주당이 59석, 그리고 김종필의 공화당은 35석을 얻는다. 이 총선은 사상 최악의 지역선거였으며, '1노3김'으로 하여금 정국 주도권을 분할·장악하도록 만든 선거이기도 했다.

바로 이 1988년 선거에서 '멍청도'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부여 지역구의 민정당 후보 임두빈이 "멍청도라는 이름 청산에 앞장서겠다"고 발언한 유세 기록이 남아있다.

누구나 알듯 '멍청도'는 '충청도'와 발음의 유사성으로 생긴 말로 비하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1988년 이전에는 '멍청도'가 정치적 의미로 사용된 기록이 없다. 다만 1981년 소설가 김용철이 <매일경제신문>에 쓴 칼럼에 "불쾌하기는 하지만 충청도를 멍청도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 점은..."이라는 구절이 보인다(필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이 분은 충남 부여 출생이다).

1990년 대통령 노태우는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고자 김영삼과 김종필을 끌어들여 3당합당으로 민자당을 출현시킨다. 이 때 가장 황당했던 측은 물론 김대중의 평민당이었을 테고, 가장 열 받았던(?) 측은 김영삼의 민주당에 있던 이른바 '민주인사'들이었을 터이다. 그들 중에는 이기택, 노무현, 박찬종, 홍사덕 등의 낯익은 이름이 들어 있다. 그들은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여 '꼬마민주당'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우리 정당이 90년대에 맞는 사회경제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3김씨로부터 찾아야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극악스럽게 싸우니까 충청도 분들이 '우리가 멍청도인 줄 아느냐'며 김종필씨에게 표를 던져 진짜 멍청한 짓을 했다."(1990. 8.25, KBS TV 심야토론, 홍사덕 당시 민주당 부총재 발언)

홍사덕(영남 출신)은 지역감정의 발원지인 영남과 호남을 거론하는 대신 충청도민의 지역감정만을 문제 삼았다. 당연히 이런 접근법은 해당 지역민의 반발을 초래한다. 이틀 후인 8월 27일 충청도에서 올라온 청년 5백여 명이 서울 민주당 중앙당사로 몰려가 홍사덕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당사 진입을 시도했다. 개중에는 김종필의 공화당 당원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그들은 충청도를 '멍청도'라고 한 것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망언이라며 홍사덕의 공식사과와 발언 철회 등을 요구했다.

이쯤에서 잠깐 우스갯소리를 하나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충청도 사람을 '멍청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느린 점과 관련된다. 그런데 충청도인의 주장은 다르다. 충청도 말은 느린 것이 아니라 '고도로 압축된 언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느리게 해도 의사 전달력은 단연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다른 지방에서는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충청도인은 "됐슈"라고만 하면 된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는 "좀 봐유"라고 줄여서 말한다. 또한 "보신탕 먹을 줄 알아요?"는 "개 혀?"로 고농도 압축된다. 그러니 말을 빠르게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멍청도'와 '핫바지'는 정치적 의미와 무관했던 말

 1995년 8월 18일자 <동아일보>는 김윤환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이 '충청도 핫바지' 발언배경을 해명하고 이를 보도한 대전매일신문사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1995년 8월 18일자 <동아일보>는 김윤환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이 '충청도 핫바지' 발언배경을 해명하고 이를 보도한 대전매일신문사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멍청도'가 충청도를 비하하는 말이었던 데 비해, '핫바지(솜 넣은 바지)'는 충청도와 전혀 무관한 말이었다. 핫바지는 해방 후 시골 사람 또는 촌뜨기를 뜻하는 말로 '고무신', '되민증(도민증)' 등과 함께 유행했었다. 1985년에 김성한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 <임진왜란>에도 '핫바지'가 나오지만 충청도와는 무관하게 쓰였다.

한편 김영삼의 민자당에 합류하여 대표최고위원으로 있던 김종필은 정권 실세들의 냉대와 부패정치인 청산 작업 그리고 내각제 약속 파기 등에 분개한다. 그래서 그는 1995년 초 충청권 의원과 대구· 경북권 일부 의원들과 함께 당을 따로 차리기로 작심했다.

김종필의 신당설이 나돌자 당시 김영삼 정부 정무장관 김윤환은 기자간담회에서 "신당 얘기만 나오면 대구·경북을 들먹이는데 우리가 무슨 핫바지냐?"고 말한다. 그런데 <대전매일신문>이 '김윤환 정무, 충청도 핫바지 발언 물의'라는 제목으로 비틀어서 보도함으로써 충청도에서 '핫바지' 파문이 일어난다. 차후 이 신문은 사과정정보도를 냈지만 파문의 진정 효과는 거의 없었다.

민자당에서 나와 자유민주연합을 만든 김종필은 작정하고 '핫바지론'을 이용했다. 그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창당대회에서 충청도식 억양으로 "우리가 핫바지유? 우리는 핫바지가 아니란 말유"를 연발했다. 그는 '충청도 핫바지론'이 지역감정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대해 "그런 말을 감정적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보다 실제로 핫바지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충청도민들은 김종필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자민련은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강원도를 포함, 충·남북 광역자치단체장을 석권하며 4명을 당선시켰다. 다음 해인 1996년 총선에서도 김종필은 예의 '핫바지'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결과 자민련은 무려 50석을 가지는 우량정당(?)으로 거듭날 수가 있었다. 정치생명을 걸고 신당을 창당한 김종필을 살려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충청도는 핫바지가 아니다'고 하는 이른바 '충청도 핫바지론'이었던 셈이다.

1997년 다시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김종필은 한나라당 이회창과 국민회의 김대중 사이, 달리 말해서 영남과 호남의 대결구도 사이에 다시 끼게 되었다. 지역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총선은 해볼 만하지만 전국에서 한 명을 뽑는 대선은 김종필에게는 '쥐약'이었다. 그는 이념적으로는 근사하지만 아들의 석연찮은 병역 문제로 인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든 이회창 대신 '지역등권론'을 내세우는 김대중을 선택, 이른바 'DJP 연합'을 성사시켜 김대중을 당선케 함으로써 다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 올라섰다.

이후 야당인 한나라당의 인기가 오르고 충청도를 연고지로 내세우는 이회창이 한층 부각되면서 김종필의 충청도 영향력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자민련은 2000년 총선에서 17(지역구 12)석)으로 위축되었다. 그리고 2004년 총선에서는 고작 4석에 그쳐 비례대표에서 탈락한 김종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계를 떠나게 되었다.

영호남보다 유연한 충청인의 정치 성향

한편 영·호남과 달리 충청인의 정치적 선택은 일찍부터 유연성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인제가 독자출마하고 김종필이 김대중을 지지하는 상황이었던 1997년 대선에서, 충청인은 이회창과 이인제에게 30% 안팎의 비슷한 지지율을 보낸 반면, 김대중에게는 충북과 충남에서 각각 37.4%와 48.3%의 높은 지지를 나타내 김대중의 당선에 일조했다.

또한, 이인제가 이회창을 지지하고 김종필이 중립을 선언한 가운데 치러진 2002년의 대선에서, 충청인은 충남인을 자처한 이회창보다 노무현을 선택해 50%의 높은 지지를 보냄으로써 당선에 거의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당시 노무현과 이회창의 표차 57만 표 중 25만 표가 충청표였다. 물론 여기에는 노무현의 신행정수도 공약이 주효했을 것이다. 2003년 헌재가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을 내리자 당연히 충청도에서는 다시 한 차례 '멍청도', '핫바지론'이 비등했다.

2007년 대선에서 충청인들은 이명박을 선택했지만 이회창에 대한 지지도 만만치 않게 보여주었다. 이명박은 대전 36.2%, 충남 33.9%, 충북 41.9%를 득표했고, 이회창은 대전 28.8%, 충남 32.9%, 충북 23.2%를 득표했다. 그런데 이명박이 세종시 법안을 개정하려 하자 다시 '멍청도', '핫바지론'이 제기된다. 최근의 충청인들은 세종시법 개정을 무산시킨 박근혜에게 비교적 높은 지지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충청도는 영·호남과 달리 언제든지 정책과 이슈에 따라 지역주의 투표가 완화되는 정치성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핫바지론'의 생명력은 의외로 질긴 면이 있다. 대선에서 세 번이나 실패한 이회창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심대평 당시 국민중심당 대표와 함께 자유선진당을 만들었다. 그들은 김종필이 했던 그대로 '핫바지론'을 들먹였다. 급조된 자유선진당은 한나라당 대세 속에서도 충청권에서 18석(전국구 포함)이나 얻었다.

이회창은 2009년 세종시법 개정 논란이 일자, "세종시 건설계획을 축소 또는 폐기하려는 시도가 15대 총선 때의 충청도 핫바지론을 연상케 한다. 한나라당의 사기극을 막겠다. YS, DJ, 노무현에게 속고 이명박에게까지 속아 다시 곁불 쬐는 핫바지가 되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한나라당 대선후보시절에는 노무현이 신행정수도 공약을 했을 때 아무런 입장도 피력하지 않았었다.

한편 은퇴 후 한나라당 명예고문으로 위촉된 김종필은 "이회창씨는 예전에 국무총리일 때 연설부탁을 받고는 본인은 충청도 출신이 아니라고 했다. 이회창씨는 충청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예산사람도 아니다"고 말했다.

다시 뭉친 어제의 충청 인사들

 지난 8일 국회 선진당 대표실에서 열린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 무소속 이인제 의원의 통합선언식에서 국민중심연합 심대평 대표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선진당 대표실에서 열린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 무소속 이인제 의원의 통합선언식에서 국민중심연합 심대평 대표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월 8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와 국민중심연합 심대평 대표, 무소속 이인제 의원 등 충청도 정치인들이 통합을 선언했다. 그들이 다시 뭉친 것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자구책을 강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확히 짚으면 느슨해져 가는 충청도인의 결속을 도모해 봄으로써 무언가 성과를 내보려는 것일 터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충청의 지역주의는 영남과 호남의 지역패권구도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파생된 것이다. 특히 영남은 지역주의의 발원지이자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또한 영남은 쿠데타 출신 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했다. 영남 인구는 충청과 호남의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다. 따라서 지역주의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먼저 통감해야 할 당사자는 물론 영남이다.

게다가 영·호남의 정치인들은 거의 예외가 없이 지역주의를 이용해 왔다. 지역주의에 가장 과감히 맞섰다는 노무현조차 임기 중반에는 지역주의 청산을 명분으로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제안함으로써 결국은 지역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정황에서 충청도인의 지역주의만 따로 떼어 문제 삼는 것은 근시안적 사고다. 행정수도 같은 중요한 정책 이슈가 없고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완강히 버티는 한, 충청의 지역주의는 언제라도 심하게 도질 수가 있다. 지금 상황에서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영남패권주의 정서의 집요성이다. 이제는 영남인들의 건강한 정치 행위와 투표 행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앞으로 충청도의 정치적 위상은 날로 강화될 것이다. 최근 영남은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으로 분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구·경북의 인구는 호남 전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호남의 인구는 감소하는 반면 충청의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2007년 대선 충청의 유권자 수는 호남에 비해 불과 22여만 명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2012년 대선의 유권자 수는 충청이 호남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지역주의의 상징이었던 '3김'도 물러난 이후 우리는 벌써 세 번째의 총·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물론 지역감정은 지역차별이나 계층차별과 맞물려 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묻지마'식 지역투표는 논리적 설명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것은 '맹종'이거나 심하게 말해 '광기'에 가까운 것이다. 지역감정을 또다시 이용하려는 정치인이 있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유권자가 많다면 한국의 정치발전과 민족통일은 요원하다는 점에 타지역보다 유연한 충청인이 누구보다 먼저 동의하리라고 믿는다.



#충청도지역감정#멍청도#핫바지#김종필#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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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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