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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연중 최고의 명절이다. 추석이 최고 명절이 된 것은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송편을 빚는 세시풍속 때문이다. 차례를 지내려면 가족이 모여야 하고 성묘를 하려면 고향에 가야 한다. 그리고 송편은 여러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빚는다. 그래서 추석이 되면 가족은 물론 친척들도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외국인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한국인은 유달리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추석 연휴가 지나면 여론이 바뀌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5년 전인 2006년 10월 3일 북한 외무성의 핵실험 예고가 있은 후 추석 연휴가 지나자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명박과 박근혜의 지지율 격차가 갑자기 크게 벌어진 일을 들 수 있다.

추석(9월 12일)은 백로(9월 8일)와 추분(9월 23일) 사이에 있다. 주지하듯이 중추(中秋), 즉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때문에 추석에 일가친척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그 해 여름에 벌어진 사건들인 경우가 많다.

올 여름에는 유달리 큰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오세훈 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검찰 수사,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일으킨 여론 돌풍 등은 가히 초대형급 사건들이었다. 게다가 이 세 초대형급 사건이 절묘하게도 모종의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중요한 사건들도 적지 않았다. 한선교 의원·KBS 도청사건, 부산저축은행사건 그리고 <피디수첩> 무죄확정사건들은 결코 범상한 사안이 아님에도 초대형급 사건들에 묻혀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 사건들은 추석 이후에라도 반드시 냉철한 환기와 명확한 진단이 내려져야 할 사안들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런 큰 사건들보다는 지난 여름 우리가 소홀히 흘려버린 사건들 중에서 나름대로 '심각한 의미'를 갖는 것,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께서도 추석 연휴에 이런 작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가족·친척들과 같이 생각해 보고 의견을 나눠보기를 권유한다.

[추석 이야깃거리 ①] 홍준표 대표 '처조카님' 특혜취업... "모른다" 정말?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안철수 돌풍'과 관련해 최고위원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홍준표 대표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안철수 돌풍'과 관련해 최고위원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홍준표 대표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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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처조카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특혜 채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9년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통합되어 출범한 LH공사는 2008년부터 구조조정을 이유로 신규채용을 전면 중단함은 물론 무려 783명이나 되는 인원을 감축했다. 그런데 이 삭막한(?) 기간에 공사 전체를 통틀어 유유히 정규직으로 채용된 단 1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처조카님'이었다.

홍준표 대표는 처조카가 정규직으로 채용될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로서 토지주택공사 통합법안을 직접 발의하고 법안 통과를 주도했었다. 홍 대표의 처조카가 정규직 전환 인사발령을 받은 것은 2009년 5월 6일인데 이것은 토지주택공사 통합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주일 뒤의 시점이었다.

홍 대표의 처조카는 2008년 주택공사의 도시개발단 택지보상판매팀 촉탁직으로 채용됐는데 1년 후인 2009년 4월에 경제활성화지원단으로 부서 이동했고 이로부터 불과 20여 일 만에 5급 정규직으로 특채전환된 것이다.

LH공사 홍보 관계자: "적법절차에 따라 된 거지, 특정인을 위한 특혜로 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홍준표 대표 측: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처조카의 취직까지 어떻게 관리하겠느냐?"

그들은 이렇게 해명하고 끝내버렸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어서 터진 오세훈 발 주민투표 소동에 묻혀 버린다.

우리는 지난해에 있었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 불법채용'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외교통상부는 시험위원 선정에서부터 심사과정까지 온갖 관련법령을 위반해 가며 '장관의 따님'을 5급 사무관에 그것도 단 1명만 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추석 이야깃거리 ②] 강호동 탈세, 1회 출연료가 연봉보다 많은 '연예공화국'

퇴근 탈세 논란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강호동, 김아중
 퇴근 탈세 논란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강호동, 김아중
ⓒ SBS,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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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C 강호동과 배우 김아중이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수억 원대 추징금을 부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그들이 공문서에 소득을 허위 기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호동과 김아중은 톱스타급 연예인이다. 그들의 연소득은 수십억 원대이고 단 1회 출연료만도 웬만한 젊은이의 1년 벌이보다 크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종사자 수가 800만 명이 넘는다. 이런 가운데 배용준은 <태왕사신기> 1회에 2억 5000만 원, 이병헌은 <아이리스>에서 1억 원, 송승헌은 <에덴의 동쪽>에서 1회 7000만 원에 추가 출연료를 받았다고 한다. 고현정이 드라마 <대물>에서 받은 1회 출연료는 5500만 원이었고 최지우는 편당 4800만 원, 권상우와 비는 1회당 500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하니 한국은 이제 연예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탈세 중에서도 특히 고소득자의 탈세는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선진국 같으면 그들은 틀림없이 형사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강호동은 2009년 세무서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돼 납세자의 날에 '세무서 1일 민원봉사실장' 역을 맡은 적이 있다. 김아중 또한 세무서 명예홍보대사로 활동한 바 있고 2009년 '저축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추석 이야깃거리 ③] '안녕'도 말하지 못한 채 떠나는 젊은이들

한강에서 뛰어내린 사고의 자리를 표해놓은 듯한 표시. 많은 이들이 한강 다리에서 투신 자살을 하고 있다. (자료 사진)
 한강에서 뛰어내린 사고의 자리를 표해놓은 듯한 표시. 많은 이들이 한강 다리에서 투신 자살을 하고 있다. (자료 사진)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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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돌풍으로 세상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지난 9월 7일, 서울 강북의 한 주택에서 20대 남성 3명이 연탄불을 피우고 동반자살을 기도했다. 방 안에는 술병과 함께 타다 남은 연탄과 화덕이 놓여 있었고, 방문 틈을 막기 위한 테이프도 발견됐다. 이 중 한 명은 사망, 두 명은 중태라고 한다.

곽노현 교육감 수사로 세상이 시끄럽던 지난 8월 29일, 서울 서초동의 한 주택 지하에서 20대 남녀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들 역시 방 안에 연탄을 피워놓은 채 나란히 숨져 있었다. 이보다 3일 전인 8월 26일, 충남 홍성군의 한 모텔에서 남녀 3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또 8월 19일, 경기도 수원시 매산로 한 모텔 객실에는 남녀 젊은이 2명이 숨져 있었다.

한 달을 거슬러 7월 5일, 한 젊은이가 경북 구미의 원룸에 들어갔고 뒤이어 서울·경기·경남 등 각지에서 온 3명의 남녀가 이 원룸에 합류한다. 그들의 시신은 2주 후에야 발견된다.

이보다 이틀 전인 7월 3일, 폭우 속에서 20, 30대 남녀 5명이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높이 15m 다리에서 함께 투신했다. 그들 중 1명은 강물에 떠내려 오다가 발견된다. 급류에 휩쓸려간 나머지 4명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전날 한 펜션에 함께 묵으며 수면제와 소주 3병을 나눠 마신 뒤 번개탄으로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5시 신청평대교 위에서 일제히 북한강에 몸을 던진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인 9월 경북 봉화에서는 20대 남녀 5명이 승합차에서 연탄가스에 질식된 채 발견되었다. 그들은 서울과 부산, 대전 등지에서 모인 젊은이들로 이 중에는 여대생 1명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전날 경기도 화성의 한 렌터카 업체에서 승합차를 빌린 뒤 낯선 땅 경북 봉화에 오후 10시께 들어왔다.

다시 해를 거슬러서 2009년 봄 강원도 양구군 국도 교차로 인근에 주차된 싼타모 승용차에서 죽어가는 남녀 4명이 발견되었다. 전날에도 강원도 인근 지역에서 동반 자살을 시도하려던 20대 남녀 5명이 펜션 업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저지당한 바 있다.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직 죽기 위해서 인터넷 카페를 기웃거린다. 2000년대 들어 지난 10년 동안 한국인의 자살률은 130%나 급증했다. 자살은 한국 젊은이의 사망원인 1위가 되었다. 2009년에는 20대 사망자 중 44.6%, 30대는 34.1%, 10대는 29.5%가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2010년에는 하루 평균 42.6명꼴로 자살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절망하는 이유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2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4차 희망버스 만민공동회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염원을 담은 '희망의 종이배'를 머리에 쓴 채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2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4차 희망버스 만민공동회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염원을 담은 '희망의 종이배'를 머리에 쓴 채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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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완벽한 고립'이다. 그들은 마지막 단계에서 누구엔가 한 번은 구조요청 신호(SOS)를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마지막 SOS마저 불통일 때 그들은 결심을 굳힌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소통 수단은 인터넷뿐이었다. 그들은 생면부지의 상대와 장소·시간·방법을 합의한다. 그들은 만나서 아무 말 없이 곧장 방으로 들어간다. 만날 때 '안녕'이라고 하지 않았듯이 헤어질 때도 결코 '안녕'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도 그들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들의 죽음은 너무 처참하고 우리의 삶은 정말 야박해졌다.

전문가들은 한국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높아진 원인으로 극심한 학벌 경쟁과 취업 압박을 꼽는다. 나에게는 대학을 마친 20대 자식이 둘 있다. 자식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나는 '옛날에 대학 가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만약 내가 요즘 젊은이라면 정상적인 취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젊었던 시절 한국인의 국민소득은 불과 1000 달러가 갓 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다지 결핍감을 느끼지 않고 살았다. 단지 아파트와 자동차만 없었을 뿐이었다. 내 부모는 가난한 편에 속하는 분들이었다. 그런데도 국산 김치는 매일 먹었고 한우고기도 가끔씩 먹으면서 살았다.

추석 때에는 소박한 대로 온가족이 모여 거리낌 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독재자 박정희가 우리를 몹시 힘들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연민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다. 이웃의 죽음에 대해 지금처럼 무심하거나 냉랭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시절이 지금보다 여러모로 누추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처럼 막막하지는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절망하는 것은 비단 경제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주범은 '기득권 편식'과 '승자 독식'의 모순된 사회구조다. 그리고 이웃의 죽음을 무조건 추문으로만 은폐하는 우리의 이기주의다.

783명이 자리를 잃을 때 유일하게 정규직으로 특채되는 저편의 젊은이와 자기 연봉보다 많은 거금을 단 1회 출연료로 거머쥐는 저편의 젊은이를 자신과 비교하게 될 때 그들은 초라해지고 또한 초라한 만큼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마저 탕진했을 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어느 쓸쓸한 날에 절망의 심연으로 몸을 던진다.  


태그:#홍준표처조카, #강호동, #인터넷자살, #연예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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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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