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받아라. 파워레인져 정글포스."

 

요즘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나에게 덤비며 하는 말이다. 처음엔 정글포스가 뭔지 파워레인저가 뭔지도 모르다가 차츰 알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직접 시청도 해 보았다. 도무지 와 닿지 않는 구성과 내용에 흥미를 잃고 말았지만 '수박 겉핥기'로 구조는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만의 세계. 어른들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이 있다. 피터 팬이 어른이 되길 거부하고 원더랜드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동심을 잃고 어른들 세계에 강제로 편입하게 만드는 것은 잘 짜인 지금의 교육시스템이다. 죽도록 하기 싫은 공부를 강제로 하고 이를 경쟁이라는 구도로 더욱더 꽉 조여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든다. 가끔은 벗어나고 싶지 않을까?


해방구. 하나의 공고한 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저항이 필요하다. 국가나 민족 간의 전쟁이 체계를 확장하기 위한 가장 흔한 수단이었다면 혁명은 내부의 변화를 꿈꾸는 가장 극단적인 저항 방법이다. 비근한 예로 1987년 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내었던 것이 공고한 체계를 전환한 큰 사건이었다.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1968년이 이러한 전환시점이었다. 그것은 누구도 주동하지 않는 민중이 '자유'를 원해 일어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 대표적인 사건이 '전공투'였다. 학생들이 학교의 억압적인 정책에 대항해 스스로 학생운동의 투쟁수위를 높이고 들불처럼 번져 여러 학교에서 조직된 공동명칭이다. 


도쿄대, 니혼대, 쿄토대, 등 학생들은 학교 건물을 폐쇄하고 수업을 거부하는 전술로 나왔다. 목적은 대학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책상과 의자 말고도 건물 내의 집기를 총동원해 교문과 건물의 입구에 쌓아 그것을 철사나 밧줄로 둘둘 감았다. 바리케이드는 간단히 무너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학생들은 단결하여 그 안에서 농성했다. 바리케이드 안은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방구'가 되었다.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자치구역, 해방구. 폭도로 몰려 공권력이 투입되면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린 반대한다"와 "자유를 원한다"는 외침은 힘 없는 이의 가장 적절한 투쟁이 아니었을까? 수십 미터 위 공중에 올라 일 년 200일 가까이 버티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도 함부로 침해받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한 것이 아닐까?


<우리들의 7일 전쟁>은 좀 '된' 소설이다. 일본 전공투 뒤 16년이 흐른 시점에서 일본사회를 통렬하게 꾸짖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의 이야기다.


"여기는 도쿄에 있는 빈 공장. 열네살인 우리들은 어른들의 명령과 규칙에서 벗어나 우리들만의 해방구를 만들었습니다. 기상천외한 미로와 폭죽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함부로 건들지 마시라고요. 지금부터, 꼰대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전쟁을 선포합니다."


확고한 사상이나 논리 없이도 중학교 1학년 한 반 전체의 아이들이 단결해 이룩한 해방구. 도무지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은 어른들을 상대로 일주일간의 '자치'를 이루어낸다. 인권 따위는 안중에 없는 교장과 생활주임, 짜인 틀로 집에서 억압하는 부모를 향해 일침을 날리며 그들만의 세계에서 자유의 구호를 미니라디오로 전한다.


"그토록 불타올랐던 청년들은 부모가 되자 젊을 때의 정열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체제에 편입하여 고도경제성장의 파도에 몸을 실었다. 전공투운동은 잊혀갔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는 경쟁에 이기는 것밖에 없고, 아이들까지도 입시 전쟁에 내몰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정말로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저자가 밝힌 작품의 배경이다. 등록금 부담으로 자살을 택하는 명문대생. 지나치게 어려운 아르바이트로 목숨을 잃는 대학생들이 있고, 남보다 나은 대학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암투하는 386세대. 자기밖에 모르는 학생들의 세계가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한국. 저자의 비판이 제대로 들어맞는 상황이다. 소설은 아주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억압받고 있는 이들은 자유를 원한다".

 

그것도 "아무것도 모를 줄 아는" 어린 학생들의 입을 빌려 극대화한다. 여태까지 1500만 부가 팔리고 '우리들 시리즈'를 낳게 했던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은 책을 통해서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는 쾌감을 독자에게 주기 때문이리다.

덧붙이는 글 | 우리들의 7일 전쟁/ 양철북/ 다오사무지음, 고향옥옮김/ 10,000원


우리들의 7일 전쟁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양철북(2011)


태그:#우리들의7일전쟁, #소다오사무, #교육현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